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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소년

[도서] 피리부는 소년

헤르만 헤세 저/최인자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세계문학 중에서 책을 고를 때, 유일하게 작가를 보고 고르는 인물은 바로 헤르만 헤세이다. 중학교 시절에 [데미안]을 읽고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잊고 있었다가 몇 년 전에 다시 읽고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순간 헤르만 헤세에게 이끌렸다. 그래서, [데미안]을 필두로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크눌프],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잠시 헤세의 작품 읽기가 멈춘 상태이지만, 책장에는 읽어야 할 그의 작품이 다수 꽂혀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헤르만 헤세의 동화들을 엮은 [피리부는 소년]은 잠시 내려놓았던 헤세에 대한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총 12편의 동화적이면서 우화적인 이 책의 작품들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마주한 그의 성장 과정을 또 다른 형태로 엿볼 수 있으며, 꽃과 자연을 화폭에 담는 일에 매진하였던 그의 삶의 면면을 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리지어 -


 나는 죽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죽은 브로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졌다. 봄이 넘칠 듯이 찾아왔다. 봄은 헐벗은 산 위로 황색과 녹색의 깃발을 들고 날아왔다. 정원에는 어린 풀의 냄새가 풍겼다. 떡갈나무는 껍질을 뚫고 부드러운 잎사귀를 펼쳤다. 살찐 뿌리의 민들레가 밝게 웃으며 빛났다.

 - p. 24 中에서 -


 절친한 친구인 브로지가 병에 걸려 점점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엄마로부터 작은 화분을 받게 된다. 그 화분 속에는 프리지어 뿌리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엄마의 조언대로 프리지어가 꽃을 피울 때까지 잘 가꿔서 브로지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정성껏 프리지어를 돌보게 된다. 꽃이 피지 않으면 친구인 브로지가 왠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프리지어의 꽃을 피우게 되고, 그것을 브로지에게 선물하지만 끝내 브로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의 시선으로 친구의 죽음을 다룬 이 작품은 여러모로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프리지어가 꽃을 피웠지만 결국 죽게 된 친구에 대한 그의 감정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잘 드러나며 아울러 말미에 항상 봄은 찾아왔지만 친구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졌다는 부분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과 같이 친구의 죽음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연락도 안된다는 사실과 그들과 함께 한 기억들이 그 시기에 썼던 일기가 아니었다면 진작 사라졌으리라는 생각은 프리지어를 통하여 친구를 떠올리는 주인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하여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육체의 노화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즐거웠던 유년기의 추억을 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아우구스투스 -

 "네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면......." 이런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어떨까?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어머니의 소원처럼 정말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이 된다. 그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나쁜 일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아우구스투스를 좋아하게 된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입장에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분명 아우구스투스의 미래는 장미빛처럼 보여졌다. 하지만 그는 점점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이용파여 파괴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우구스투스는 허무와 좌절에 빠져서 절망하게 된다. 이 때 그의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준 노인이 아우구스투스를 찾아오게 되고, 아우구스투스는 노인에게 새로운 소원을 빈다. "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힘을 가져가 주세요. 그 대신 제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새로운 소원은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동안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던 사람들은 이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사랑을 댓가로 그가 가로챈 것들을 돌려 달라고 하면서 그를 몰아붙였다. 반대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물론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미소와 친절한 인사, 이해와 동정의 몸짓을 보여주었다. 비록 예전과는 달리 물질적으로 힘겨운 삶이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벅찬 행복을 느끼게 된다. 진정 동화에 걸맞는 이 작품은 오히려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동정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아우구스투스의 전반의 삶은 최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대중들로부터의 관심이 돈이 되는 세상이 그런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 관심이 타인에 대한 동정과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과시라든지 지나친 자극적인 행위 비롯되고 있으니 아우구스투스의 뒤늦은 깨달음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 소나기 -

 황순원의 [소나기] 덕분인지 '소나기'는 왠지 모를 풋풋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헤르만 헤세의 [소나기]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딱 맞았다. 하지만 황순원의 [소나기]와 같은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지만 '소나기'를 통하여 소년과 소녀가 좀 더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으니 정서적으로 참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버지의 지인과 함께 소년의 집에 방문한 두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은 누구라도 본격적인 사랑에 앞서 아주 어린 시절의 서툴지만 스스로 순수했다고 자평할 수 있는 사랑을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묘사된 소년의 사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예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애태웠던 그 순수한 사랑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의 말미에 소녀의 이름의 첫 글자를 둘러싼 '하트'를 '심장 모양'으로 표현(번역)한 부분에서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머물게 되는 것은 왜일까?


 한숨을 쉰 후 그는 앉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몸을돌리고 주머니 속에서 칼을 빼내어 나무 둥지에 무엇인가를 새기기 시작하였다. T자를 둘러싼 심장 모양을 새길 생각을 하면서 비록 여러 날이 걸린다 해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새길 것을 결심하였다.

 - p. 132 中에서 -


 

 - 사랑의 폭풍 -

 [소나기]가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을 다뤘다면 [사랑의 폭풍]은 현실을 마주한 상황에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순간의 폭풍으로 인하여 애써 외면했던 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그 폭풍으로 인하여 파괴된 마을의 모습을 보며 낙담해 하면서 고향을 떠나는 주인공의 행보는 동화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주인공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다라고 하였으니 그에게는 사랑마저도 하나의 극복해야 할 성장통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주인공의 그런 행보에 대해서 자신있게 사랑이 먼저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 시인 -

 헤르만 헤세가 동양의 문화와 예술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 [싯다르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시인]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동양 철학에 대한 헤세의 관심을 느껴볼 수 있는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짧은 단편인데, 시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가 가족과 애인을 뒤로 하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결국 원하던 경지에 다다랐지만 그 상황과 예전의 상황에서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주인공의 깨달음은 인생의 허무함을 보여주면서 반대로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 역시 의미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러한 동양적인 철학 분위기를 헤세의 동화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꽤나 색다른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헤세의 약력과 그의 작품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작품이겠지만.

 

 - 유럽인 -

 대홍수로 인하여 뒤늦게 노아의 방주에 탑승한 유럽인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를 차용하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은 반전주의자로 유명한 헤세의 삶과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다. 사실 이야기 면면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한다면 우선 노아가 방주에 탑승한 인물을 '유럽인'이라고 칭하는 부분은 지나친 확대 해석일 수 있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를 유럽과 선을 긋고 있는 느낌이 든다. 보통 성경의 인물을 우리는 서양의 인물로 보고 있지만, 노아의 방주의 흔적이 터키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노아 역시 소아시아 출신으로도 볼 수 있으니 헤세 역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작품에서는 '유럽인'은 사고와 합리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체의 상징이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헤세는 독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조국에 대한 비난과 함께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냈으니 방주에 올라탄 무쓸모한 유럽인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은 확실히 그의 반전의식을 다분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피리부는 소년]에 수록된 12개의 작품 중 인상적이었던 작품 위주로 리뷰를 적었지만, 다른 작품들 역시 헤르만 헤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헤세의 작품들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의 뒷면에는 이 책을 성장해가는 우리들의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있지만, 이 책을 굳이 청소년에게 국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야기 자체가 동화라면 동화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헤세가 열 살때 처음 동화를 쓴 후 여든 살 중반까지 꾸준하게 동화를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헤세의 동화는 그의 삶의 전반에 걸쳐 형성된 그의 의식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다면 이 책에 수록된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이라든지 [신비한 새]에 등장하는 새의 존재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쏟을 것이고, [프리지어], [아이리스]에서 묘사된 다양한 꽃과 자연에 대한 묘사는 헤세가 그린 그림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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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단편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깊은 의미들을 담고 있네요. 이런 생각을 가진 헤세가 조국 독일에 대해 가졌을 실망이 정말 컸을 거라 짐작이 되네요.
    저는 <데미안>보다 <싯다르타>를 더 의미있게 보았는데 서양인이 동양의 사상을 너무 잘 표현해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헤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2021.08.31 00:0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삶의미소님도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셨군요.
      [싯다르타]는 삶의미소님 말씀처럼 서양인이 불교를 소재로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죠. 그래서인지 헤세의 작품들은 폭넓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가 쓴 동화에서도 이런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코 가벼운 동화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2021.08.31 10:50
  • 스타블로거 ne518


    헤르만 헤세가 쓴 <소나기>도 있군요 정말 이 제목 보면 황순원 소설이 생각나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다니...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했지만, 그런 건 마음에서 우러나야 할 텐데 싶습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기에 아주 안 좋아지지는 않는 거겠지요 《데미안》에 나온 것 같은 것도 나오는군요

    책찾사 님 팔월 마지막 날이에요 팔월이 가면 구월이 오니 다행이네요


    희선

    2021.08.31 03:1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오랜만에 만나는 [소나기]라는 제목이 참 정겹더라구요. 이런 부분은 동서양 모두 소나기에 대한 감성이 비슷한 부분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남을 사랑하지 못한 채 오로지 사랑만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아우루스투스]라는 작품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더라구요. 사랑받기에 앞서 사랑하는 것에 익숙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요.

      오늘이 정말 8월의 마지막날이네요. 팔월 마무리 잘 하시고 다가오는 구월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희선님 ^^

      2021.08.31 11:01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헤르만 헤세의 책은 [데미안] 밖에 읽지 못 했지만, 얼마 전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헤세]를 읽어서그런지 책찾사님이 그동안 읽으신 헤세의 책들과 헤세의 사상, 삶 등이 떠오릅니다. 책 속 12개의 동화들도 헤세의 의식과 생각들이 잘 묻어나 있는 것 같구요. 올리신 책 속 동화 중 <프리지어>를 읽으며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을 쌓았다가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친구를 떠올리게 되네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늙어가면서. ^^;) 유년의 추억들이 점점 엷어지는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게 우리의 삶이니 받아들여야겠죠.ㅎ
    책찾사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저는 휴가를 내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네요. ^^

    2021.09.02 07:4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헤세의 작품을 통해서 그를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추억책방님께서 읽으셨던 [헤세]를 읽고나면 그의 작품들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된다면 그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도 이 책에 첫 작품으로 수록된 <프리지어>는 읽으면서 저 역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추억책방님의 친구분 이야기는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이제는 친구들이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는데, 통 연락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주말에 전화라도 해봐야겠습니다.
      오늘 금요일인데 휴가를 내셨군요? 오랜만에 찾아온 주말을 포함한 여유있는 시간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추억책방님 ^^

      2021.09.0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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