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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도서]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 저/최인영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작품을 의뢰한 메디치 가문의 기상에 감동한 젊은 예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을 참고하면서 독자적인 건축, 조각, 회화를 창조해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인 동시에 이탈리아가 흑사병의 폐허로부터 재생하는 것이었지요. 

 - p. 13 中에서 -


 부활 또는 재생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과 예술에 대한 부흥 운동으로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왜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저자는 그러한 물음에 대하여 흑사병을 언급하고 있다. 14세기 중반의 흑사병은 유럽에서 무려 2천만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켰으며 수많은 도시를 몰락시켰다. 전례가 없던 이러한 피해를 유럽은 힘겹게 극복을 해야 했는데, 그 재건의 과정에서 예술은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도시 곳곳을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는 것이 그 과정의 하나였기에 예술에 대한 수요는 폭발하게 된다. 이는 메디치 가문과 같은 패트런(후원자)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니 경제와 예술의 관계가 상당히 밀접함을 보여준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예술이 경제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향이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다루면서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물론 메디치 가문이 언급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저자는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를 썼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이 책이 명화에 깃든 경제사적인 의미를 다루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오히려 경제사가 예술에 끼친 영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유명 작품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분명 기존의 미술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 로마 교황이나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의뢰 요청을 받아 제작된 것이었다. 크리스티나 대성당의 벽화에 대한 의뢰가 없었다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그의 역작 중 하나인 [다비드 상] 역시 원래는 피렌체 대성당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또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 식당 벽화였으니 이들의 천재적인 재능과 업적은 수요와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 p. 91. 렘브란트 판 레인의 [플로라의 모습을 한 사스키아] )
 

 렘브란트가 자신의 아내인 사스키아를 모델로 그린 그림에서 저자는 그녀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꽃 중 하나인 튤립에 주목한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대부분 렘브란트의 아내인 사스키아에 초점을 맞추거나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더 관심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렘브란트가 활동하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네덜란드가 신흥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쌓던 시기였음을 알게 된다면 왜 저자가 이 작품에서 튤립에 주목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네덜란드는 막대한 부를 주체하지 못하여 투기 열풍이 일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튤립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열풍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지만,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부유한 시민 출신의 후원자들로 인하여 그림 역시 엄청난 수요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렘브란트는 초반에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말년에는 파산하게 된다. 그의 그림 실력이 시대에 뒤쳐져서 그랬던 것일까? 렘브란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후원자의 주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네덜란드에서는 그림이 유통되며 사고 파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즉, 주문 생산이 아니라 고객들의 수요를 미리 예측하여 그림을 생산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던 방식에 익숙했던 렘브란트는 고객의 니즈를 미리 파악하여 거기에 맞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된 것이다. 렘브란트의 이러한 삶은 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이기도 하지만, 성공과 몰락을 오갔던 그 과정은 예술이 경제 원리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를 기점으로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나라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였다. 경제적인 지원 및 후원 또는 수요에 의하여 예술의 발달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후 프랑스가 이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프랑수아 1세는 레오느라도 다 빈치를 프랑스로 초빙할 정도로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후 절대주의를 추구하게 되는 프랑스는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유럽의 예술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에 프랑스는 체계적으로 자국의 예술을 관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구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1648년 왕립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였다. 이 기구를 통하여 프랑스의 예술가를 육성하고 배출하여 예술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고, 실제로 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은 아카데미에서 푸생식의 고전주의 회화 교육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 살롱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파의 선구자이며 생전에 유명 화가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판매한 것이 단 한 건이라면 클로드 모네는 생전에 수많은 작품을 비싼 값으로 팔아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클로드 모네 역시 초반에는 프랑스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살롱에 지속적으로 참여를 하였지만, 계속 낙선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무명의 모네 입장에서는 당연히 살롱에 입선하여 이름을 알리고자 하였지만, 그의 그림은 살롱이 요구하는 고전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당선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비록 체계적으로 프랑스의 예술 수준을 관리하고 향상시켰지만, 파격적인 양식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는 새로운 기법에 대해서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후원자의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물론 프랑스의 아카데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이 나중에 미국의 부유한 계층의 수요로 인하여 유명세를 탄 것 역시 그러한 또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 189. 윌리엄 호가스의 [진 거리] )
 

 윌리엄 호가스의 [진 거리]는 직관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걸맞는 작품인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충격적이다. 한 여자는 술에 취해 아기를 떨어뜨리고, 다리에는 매독으로 생긴 상처가 가득하다. 심지어 오른쪽 끝에는 한 여자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술을 먹이기까지 한다. 이런 빈민가의 상황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나타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어두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그림은 분명 누군가의 후원이나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을 위한 교훈적인 목적으로 이런 판화를 제작하였으니 부유한 계층의 후원을 받은 여타의 예술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경제에 예속되지 않은 그림이 오히려 그 당시의 경제를 잘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원들이 식당에서 연주를 하다가 강마에에게 들켜서 욕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또는 순수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과연 현실적인 부분과 완전히 별개로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라는 제목을 내걸고 있지만, 예술가들이 애써 부정하는 돈과 예술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예술적인 해석보다는 경매에서 값이 얼마로 책정되었느냐로 그 가치를 짐작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YES24 리뷰어클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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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유럽에서 2천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킨 흑사병이 역으로 재건의 과정에서 예술의 꽃을 피우게 되었군요. 교황이나 메디치가문 같은 미술의 큰 수요와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재능(자원)이 결합되어 오늘날 우리가 그들의 명작들을 만날 수 있는거구요. 램브란트의 <플로라의 모습을 한 사스키아>는 램브란트의 초상화에 비해 제겐 생소한데 책찾사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튤립과 경제의 상관관계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예술과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느끼면서 마지막 명화를 통해 경제에 예속되지 않아야 경제의 실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 번 새기게 되구요. 꼭 미술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던지 예속되어 있으면 진실을 알 수 없는거겠죠. ^^

    2021.09.14 08:4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이 책에서 르네상스를 흑사병 이후 유럽의 재건 과정으로 보는 견해를 처음 접하였는데, 예술 작품에 대한 의뢰로 인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보다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는 점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이 책은 경제가 유럽의 미술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으며 또 동인이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지요. [플로라의 모습을 한 사스키아]는 저도 처음 접하는 작품이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머리 장식의 꽃 중 하나가 바로 그 시대에 네덜란드의 투기 대상이었던 튤립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램브란트에 대한 그림의 의뢰도 또 그림의 소재가 되는 당시 경제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경제, 즉 돈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있을까 의문이 들더라구요. '순수 예술'이 과연 '순수'할 수 있는지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

      2021.09.15 19:17
  • 짱가

    예술과 종교와 사랑까지도 밑바탕까지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경제적인 동기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점점더 그리로 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네요

    2021.09.14 12:2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솔직히 말하면 짱가님 말씀처럼 경제적인 동기에서 자유로운 것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죠. 결혼마저도 현실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현실이 그런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끼게 되구요.

      2021.09.15 19:21
  • 스타블로거 서천

    이 책이 제목과는 약간은 다르게 경제사가 예술에 끼친 영향을 다룬 글이라는 책찾사님의 견해에 찬동하며 리뷰를 읽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오래 전에 읽었던 A.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다룬 내용과 일정 부분 유사점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술(혹은 예술가)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경제 포함)와 관계를 맺고 있고,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우저의 입장이지요. 리뷰 잘 보았습니다^^

    2021.09.14 23:2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서천님께서 언급해주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현실에서 오로지 순수 예술 또는 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이 생겼거든요. ^^

      2021.09.15 19:2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