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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

[도서] 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저/남명성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개인적인 일상 생활에서 '만약 ~했다면'과 같은 가정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또한 역사의 한 장면에서도 실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흘렀더라면이라고 종종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상 과학 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정을 통한 새로운 역사를 소재로 한 필립 K.딕의 <높은 성의 사내>. 이 작품은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 일본과 같은 추축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한 역사의 가정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대로라면 우리는 이 책에서 독립을 하지 못한 아시아의 한 국가로 표현될 수 있으므로 다소 거북한 상상이긴 하지만, 거꾸로 실제 역사에서 승리자인 미국 출신의 작가가 스스로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설정이 자못 흥미롭게 느껴진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히 책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을 표지로 한 대한제국이 거꾸로 일본보다 먼저 개항을 하면서 일본을 정복하는 작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 작품은 실제 역사에서 일본으로부터 당한 내용을 되갚아주는 통쾌한 복수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기에 거꾸로 이 작품에서는 실제 승리자가 패배자로 뒤바뀐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졌다.

 

 사견이지만, 이 책은 어떠한 큰 이야기의 흐름이 시작되어 결말을 맺는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말로 독일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승리하여 전세계를 서로 양분하여 다스리고, 미국조차 패전국이 되어 태평양 연안의 지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고, 독일의 눈치를 보면서 등장인물중 하나인 프랭크 프링크와 같은 유태인을 체포하는데 협조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상황(실제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저자는 자신이 창조해낸 역사의 모습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묘사를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큰 특징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우리의 역사에서 실재하지 않은 상황을 여러가지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가상의 역사적인 큰 그림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스토리보다 몇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을 뽑아보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소개로 더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일본과 미국의 가상의 역사 속에서의 모습을 등장인물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패전국이 된 미국의 시민인 칠던은 골동품 상점을 운영하면서 일본인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 비하여 상당히 오래된 문화를 가진 일본인들이 미국의 짧은 역사(수백년)의 골동품을 선호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심지어 칠던이 확보한 골동품은 그들의 짧은 역사로 인하여 남북전쟁 당시에 쓰였던 권총이라든지 만화책 초판본, 잡지, 가구와 같은 대중적인 문화의 산물들이 주를 이룬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미국의 골동품을 소장하려고 하고, 미국식의 인테리어등을 선호하면서 미국의 문화에 호감을 표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바라본다면 이는 단순히 승자의 지위에서 패전국인 미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 짧은 역사의 미국의 문화에 대한 내면은 일본인들은 철저히 무시를 하며, 심지어 미국인인 칠던조차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는 결국 실제의 역사에서처럼 승자는 패자의 문화에 대하여 단순한 애완용 동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을 비꼬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물론 칠던은 젊은 일본인 관료의 비판을 받았던 실제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방식의 대량 생산방식에 의한 장신구를 통하여 과거와는 달리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자각하게 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소설의 흐름을 위한 장치로 활용하기도 하며, 다고미라는 일본인이 칠던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장신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현재의 미국(여기에서는 실제 역사대로 미국이 승전국인 상황)으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는 장면을 통하여 자칫 허구의 역사에서 기고만장해하는 일본인들에게 현실을 자각시키는 모습도 보여줌으로써 소설의 모든 허구로부터 실제 역사로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놓지 않음을 보여주게 된다.

 

  일본인은 물론이고 미국인조차 주역을 맹신하고 있는 장면도 상당히 흥미롭다. 승전국인 일본의 영향으로 중국의 문화이지만, 일본을 통하여 미국에 급속하게 퍼진 주역은 작품의 등장 인물들이 자신이 일을 하기전에 점을 치는 수단으로 사용을 하게 된다. 주역은 이 작품에서 미국인들이 일본의 문화(동양의 문화)를 숭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더하여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주역으로 점괘를 뽑아서 예상하는 행위는 스스로 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다. 극중에서는 가상 소설로 등장하는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라는 작품은 거꾸로 우리가 알고 있는 2차세계대전의 실제 역사를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다. 물론 <높은 성의 사내>라는 작품 안에서는 오히려 실제 역사와 동일한 내용의 이 책이 가상의 소설로서 독일과 일본은 금서로 지정을 하고 있다. 극중 등장인물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묘사한 이 책은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허구의 역사로 가득찬 이 책에서 실제의 역사와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역과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에 대한 생각을 다시해볼 수 있는 모습이 나온다. 줄리아나가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의 저자인 호손과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줄리아나는 이 작품이 실제 진실인지를 묻는 모습에서 독자들도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허구의 역사인지 아니면, 실제의 역사인지를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호손은 애매모호한 말로 재고의 여지를 남겨두지만, 줄리아나는 주역의 점괘를 통하여 이 책이 진실이라고 주장을 함으로써 결국 열린 결말로 이 작품은 마무리 된다. 결말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줄리아나는 분명 현실의 비참한 자신들의 역사를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라는 정반대의 역사로 읽으면서 희망을 갖게 되지만, 정작 본인도 이 작품의 진실을 놓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일본의 문화로 상징되는 주역(분명 주역은 중국의 문화이지만.)의 점괘에 의지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줄리아나도 일본이 승전국이라는 책속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본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를 가질만한 2차세계대전의 승자가 뒤바뀐 가상의 역사를 다룬 점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으나, 이 부분도 다소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최소한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꽤 많은 자료를 수집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히틀러, 괴링, 괴벨스는 물론이고, 일반인이라면 생소한 오토 스코르체니라는 인물까지 언급할 정도면 제3제국의 인물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수집하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심이 있던 사람에게는 책을 읽다보면 반가운 부분을 많이 접할 수 있기에 좀더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작품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정말 이 책의 세상이 가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승전국이 독일과 일본이라는 것을 미국으로 단어만 바꾸면 실제 역사가 된다는 점에서 결국 누가 승리자가 되든 힘에 의한 지배-피지배의 관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SF 소설의 대가인 필립 K.딕의 이번 작품은 공상 과학 소설보다는 허구의 역사적인 세상을 재창조하면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하려고 한 것이기에 이 작품을 읽어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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