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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도서]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저/강유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광기어린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인상적인 <샐러리맨의 죽음>(민음사).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도대체 윌리 로만이 과연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왜 그가 그러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30여년의 세일즈맨으로서의 경력을 뒤로하고 그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그가 처한 상황이 개인의 삶의 한 부분으로만 볼 수 있을지 이 책을 읽기도 전에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서 밀러의 유명세와 더불어 미국 연극계의 커다란 성공작인 <샐러리맨의 죽음>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죽 운전을 하고 있었다고. 난 괜찮았어. 심지어 경치도 바라보았어. 매주 외근 다니는 내가 새삼스럽게 그 경치를 바라보았다니 상상이나 가? 그런데 린다, 거긴 아주 아름다웠어. 나무는 무성하고 태양은 따뜻하고, 나는 앞창을 열고 따뜻한 바람에 내 온몸을 맡겼지. 그런데 갑자기 길가로 빠지고 있는 거야!"(중략)
 - p. 13 -
 2막으로 구성된 <세일즈맨의 죽음> 초반부에 교통사고를 낼 뻔한 윌리 로먼이 아내인 린다에게 건네는 대화의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30여년간 세일즈맨의 일을 하면서 이제는 지친 한 노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심지어 그의 아내인 린다 역시 그의 곁에서 오랜 시간 보아왔기 때문에 내근직 신청을 조언하기도 한다. 초반부에는 이처럼 황혼기에 접어든 한 노년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인 비프와 해피의 등장으로 인하여 이야기는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윌리는 세일즈맨으로서의 삶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대와는 한참 못미치는 두 아들과의 대면을 통하여 그가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생각한 그의 과거의 모습들이 점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희곡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순간 그의 형이 등장하는 장면을 삽입하여 현재와 과거가 하나의 공간에서 등장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윌리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은 24시간이어서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중첩된 구조는 긴박한 윌리의 사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프와 해피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이어서 윌리가 그토록 자부했던 세일즈맨의 고독과 비정한 현실이 한 꺼풀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현재에는 그가 하는 세일즈 방식이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여 결국 해고를 당하고, 친구인 찰리의 안정적인 삶과 능력, 그리고, 찰리의 아들인 버나드가 자신의 아들들에 비하여 월등한 삶(변호사)을 살고 있다는 열등감에 점점 절망적인 상태로 치닫게 된다.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가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 p. 117 -

찰리에게 건네는 윌리의 이 말은 그가 얼마나 암담한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주인공인 윌리 이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희곡의 구성 요소인 등장인물로도 언급될 수 있지만, 윌리를 둘러싼 각 인물들은 상징적인 모습이 다분하게 느껴진다. 비프와 해피는 윌리의 삶의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며, 찰리와 버나드 부자는 오히려 윌리가 꿈꾸던 성공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윌리가 짊어진 짐과 압박을 옆에서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린다는 윌리가 이루고 싶어하는 작은 소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꽃을 심을 마당을 갖고 싶어하던 린다의 작은 소망 자체가 윌리가 추구하던 궁극적인 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윌리의 삶은 그의 바램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으로 점철되고 있다. 과거의 성공적인 그의 업무 방식에 심취하여 시간이 흘러가면서 바뀐 업무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무능력한 모습도 그러한 결과의 한 원인이었지만, 어렸을 적 비프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불륜을 저지른 윌리에 의하여 오히려 자신의 삶과 비프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윌리 로먼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정심은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그가 자신의 죽음으로 보험금을 타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그의 극단적인 결정에 대하여 마냥 부성애 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미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내민 찰리의 일자리 제안조차 자존심으로 인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죽을 때까지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 개인의 가정사와 더불어 비극적인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하루라는 짧은 시간과 윌리 로먼을 둘러싼 가족과 이웃을 배경으로 하는 설정과는 달리 미국의 자본주의 시대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에서 성공을 위하여 자본 앞에서 복종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개인의 모습을 윌리 로먼을 통하여 담아내고 있기에 미국 연극계에서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것 같다.
 나 또한 샐러리맨으로서 과연 윌리 로먼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하여 나도 모르게 현재와 과거의 직장 생활을 오버랩하여 떠올려 본다. 광기어린 그의 마지막 표정이 나의 머릿속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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