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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도서]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로드 던세이니 저/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정보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내가 유럽에서 있는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하자 선장과 모든 선원들이 웃으며 꿈속에서도 그런 나라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들이 웃음을 멈추자 나는 고쳐 말했다. 내 환상이 주로 머무는 곳은 저주받은 골도트라 불리는 아름다운 푸른 도시 가까이에 있는 쿠파르-놈보라는 사막이며, 늑대 떼와 그들의 그림자가 파수를 보는 그 도시는 신들의 저주로 몇 년이나 버려져 있다고. 또한 때때로 나의 꿈은 멀리 푼가르 비스까지 나를 데리고 가는데, 분수가 있는 붉은 성벽의 그 도시는 근처의 섬들과 교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 환상이 머무는 곳을 칭송하며, (중략)

 - p. 78,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

 

 아일랜드라는 실존하는 도시에 대해서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오히려 환상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이 상황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그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18번째 작가로 소개하는 로드 던세이니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은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등장하는 상상 속의 도시들처럼 로드 던세이니는 얀 강가를 배로 이동하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도시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이러한 환상적인 묘사는 작품에 등장하는 선장과 선원에게는 현실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러한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로드 던세이니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의 모든 작품은 눈으로 본 현실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꿈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자 군인이었지만, 

 음유시인의 기질로 행복한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 왕국이 그에겐 내적 삶의 본질이었다.

 보르헤스는 로드 던세이니에 대하여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실제 영국 귀족으로 태어난 그는 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을 하였고, 승마와 체스에 능하였으며 노년에는 2차 세계대전까지 겪은 인물이다. 귀족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의 삶을 반추해보면 너무나 현실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당시 그가 살던 시대에 그는 현실에 충실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가 살던 현실과는 정반대로 보르헤스의 표현처럼 음유시인과 같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작품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꿈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작품처럼 보여진다. 사람이 죽었으나, 의식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마치 복수를 당한 것처럼 한 집단에 의하여 살해된다. 죽었지만, 의식이 있던 그는 자신이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곳에 버려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땅 속에 묻혀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려고 하지만, 복수자들은 대를 이어서 그를 땅 속에서 꺼내어서 강가에 유기한다. 그 상황에서 고독으로 상징되는 런던과 자신이 처한 진흙탕의 상황이 악몽처럼 반복되는 이 작품은 정말로 던세이니가 말한 것처럼 꿈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러한 꿈은 죽었지만,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될 것이라는 예상을 갖게 한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려 있는 그의 다른 작품들이 모두 몽환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비현실이라는 것은 거꾸로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오히려 현실을 다른 측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칼과 우상]이라는 작품을 보면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인류의 권력과 종교를 두 가문을 통해 상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연히 발견한 철기 문물로 인한 한 가문의 세력화와 반대로 그 가문에 의하여 멸시를 받다가 우상을 통한 숭배를 이끌어내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은 오늘날 인류가 걸어온 정치와 종교의 갈등과 분리를 독특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거지들> 역시 거지라는 존재를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던세이니의 독특한 관점을 잘 느끼게 해주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를 천대받는 소수의 거지들에 의하여 표현이 된다는 점이 얼마나 독창적인가?


 보르헤스는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이라는 책에서 아마도 로드 던세이니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것 같다. 나를 비롯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작 - 그것도 대부분 환상적인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을 한 그의 작품 중에서 나름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느 여인숙의 하룻밤]은 짧지만 희곡의 형식을 띄고 있어서 이 책을 통하여 던세이니가 환상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글을 써왔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오늘날 [반지의 제왕]시리즈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통하여 J.R.R 톨킨이 판타지 문학의 대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보다 15년전 먼저 태어난 로드 던세이니의 작품을 본다면 오히려 판타지 문학의 효시는 던세이니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마도 보르헤스는 던세이니를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 또한 보르헤스의 의도에 깊이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로드 던세이니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마치 후대의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몇몇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그가 평생동안 쓴 작품들의 일부만이 수록되어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로드 던세이니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 책이 유일한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로드 던세이니의 취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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