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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 거울

[도서] 도망가는 거울

조반니 파피니 저/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이승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환상과 공포의 기묘한 조합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면 애드거 앨런 포를 떠올릴 수 있다. 그가 자아내는 환상은 어쩌면 있을법한 가능성과 더불어 좀더 생동감있게 전해지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가는 바로 보르헤스가 25번째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작가로 선정한 조반니 파피니가 아닌가 생각된다. 1881년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너무나 생소하다. 아마 <도망가는 거울>이라는 그의 단편집을 읽지 않았다면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지나쳤으리라. 이 단편집에 실린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큰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리가 어쩌면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글로 쓴 것 같아서 몇몇 작품들은 마치 과거에 읽었던 기시감마저 느끼게 된다.


 <정신적인 죽음>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일어나고 있는 자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살 방법을 경멸하면서 '위대한 자살'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방법을 찾는 주인공에게 한 남자는 자신의 색다른 자살 방법을 들려준다. 제목처럼 정신적인 죽음에 다다르는 방법.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읽을수록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동조로 바뀌게 된다. 삶의 의지를 포기하고, 죽음만을 갈망하면서 정신적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그 색다른 자살 방법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자살을 저급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정신적인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파피니 자신의 고독한 상황에 대한 자조적인 생각일 수도 있으며, 삶과 죽음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파피니의 생각은 독특하기 보다는 분명 우리 역시 해봄직한 것들이기에 읽으면서 감탄과 함께 전율하게 된다. <너무나 부조리한 이야기>와 <추억을 구걸하는 거지>는 글쓰기와 관련된 것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짧은 내용 안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만든다.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평가를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읽기 시작한 내용은 바로 비평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하여 전율하는 비평가의 모습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모습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목과 같이 부조리한 이야기처럼 형편없다고 말하는 비평가의 모습과 그것에 충격을 받고 강물에 뛰어드는 작가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한 부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추억을 구걸하는 거지>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주인공이 글을 쓰기 위하여 제목과 같이 사람들의 추억을 구걸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삶이란 결국 추억의 연속이기에 추억에 대한 글은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는 작가는 타인의 추억을 얻으려고 노력을 하고 우연히 만난 한 남자로부터 드디어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그 남자는 너무나 평범한 자신의 일상을 말할 뿐이고 이를 듣는 작가는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그 공포감이란 무엇일까? 시쳇말로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이 시대에 오히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많은 추억으로 점철되어 있으리라 생각한 보통 사람의 삶이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은 삶에서 드라마틱한 요소를 기대하던 작가에게는 커다란 재앙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 작가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서 추억을 구걸했다면 아마도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쉽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가 원하는 내용들이 많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20세기를 전후로 하여 활약한 조반니 파피니의 작품들이 오히려 21세기의 현실에서 왠지 더 공감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보르헤스 역시 그를 지목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난 더 이상 지금의 나이고 싶지 않다>와 <넌 누구냐?>라는 작품은 오늘날 현대인의 심리와도 연관지어 읽어볼 수 있기에 그러한 생각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존재하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 존재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픈 절망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중략)자네는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어. 하지만 누구도 품지 않은 갈망을 품은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현재의 것에서 벗어날 가장 좋은 길 위에 서있는 거야. 자네는 자네 영혼의 문턱에 있네. 누가 아나? 밖에 있는 어둠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그 문턱을 넘어갈 수 있을지.

- p. 87 : <난 더 이상 지금의 나이고 싶지 않다.> 中에서 -


 <넌 누구냐?>는 타자를 통하여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심화된 오늘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 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관계를 통하여 자신을 인지하는 현대인을 떠올리며 그러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게 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어느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상황에서 혼란을 겪는 그의 모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파피니는 그를 통하여 그러한 혼란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는 하나 뿐인 존재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어떤 방법으로도 얻어 낼 수 없는 증거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삭제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을 재발견했고, 이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수 있었다. 더는 두려움 없이 말이다.

 - p. 103 : <넌 누구냐?> 中에서 -

 극단적으로 타인을 통한 자기 존재를 의식하는 우리에게 자신이 존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기를 권하는 그의 말이 귓가에서 쉽게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도망가는 거울>에 실린 많은 작품들은 어쩌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심리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꽤 많이 실려 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은 <돌려받지 못한 하루>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조반니 파피니의 이 단편집은 어쩌면 인간의 심리 또는 정신분석학과 연계하여 읽을 수 있는 작품들로 대부분 구성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 조반티 파피니의 작품들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도 그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예수 이야기>를 비롯하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같은 그의 해석을 거친 전기문 형식의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문득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랬던 것처럼 조반니 파피니 역시 자신만의 생각과 연관지어 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도망가는 거울>을 통하여 조반니 파피니에 대하여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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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리뷰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현대사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든 사회죠.
    모두가 서로를 거울로 삼아 대중사회 집단에 포섭되려는 욕망이 나를 잃게 하는 것 같네요.
    그래서 진정한 삶은 나를 다시 죽음에서 살려내 재발견할 때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흥미롭고 호감가는 작품이네요. ^^

    2017.06.17 10:5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그네스님이 쓰신 내용들이 바로 이 작품들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되어 환상 문학이 아닌 심리 또는 정신분석학을 떠올리면서 읽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너무나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이야기가 가볍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

      2017.06.17 14:00
  • 문학소녀

    책찾사님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는 작가네요. 조반니 파피니... <추억을 구걸하는 거지>가 인상적이네요. 글을 쓰기 위해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구걸한 추억이 너무 평범한 일상이라서 공포를 느낀다는 게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네요. 평범한 삶이 쉽지않은 현 시대에 평범한 삶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 할텐데, 작가에겐 글로 옮길 수 없으니 당연히 재앙이겠지요. 어려서는 드라마틱한 삶이 재밌고 근사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저 평범하고 별일 없이 사는 게 좋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이젠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거고, 그건 몸도 마음도 늙었다는 거죠!! ^^;;

    2017.06.19 19:1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이제는 그저 평범하게 아무런 걱정없이 책 읽으면서 사는 것을 꿈꾸고 있으니 저도 문학소녀님과 같은 입장이네요. 이 책의 저자가 들으면 역시나 공포를 느끼려나요? ^^
      이 시리즈가 맘에 드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에 대하여 그들의 짧은 단편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처음 알게 된 작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

      2017.06.21 13:48
  • 파워블로그 모나리자

    검색해 보니 쪽수가 많지 않은 책인데, 여러 단편이 실려 있군요. <넌 누구냐?>는 작품은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타인과의 비교심리로 인해 진정한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불행(?)이 떠오르네요.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쫓아가지만, 다 그렇게 살 수는 없지요. 나름대로 현재를 직시하고 만족 또는 조금씩의 성장을 통해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돼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힘들겠지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요.^^

    2017.06.20 13:1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말 그대로 짧은 분량의 단편들이 여러편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짧은 분량에서 느껴지는 부분이 너무 커서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우리 역시 일상에서 생각만으로도 가능한 것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공감을 하면서 현재 자신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이라서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

      2017.06.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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