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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단편집

[도서] 러시아 단편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등저/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연진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악어에 갇힌 남자를 둘러싼 기묘한 이야기 <악어>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그의 작품을 깊게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사실적인 표현을 떠올려본다면 설정 자체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악어>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통하여 환상 문학을 지향하고 있지만, 단순히 설정의 기괴함만을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점에서 그의 흥미를 자극하였고, 또한 왜 이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 것일까?


 도스토옙스키의 단편인 <악어>는 이반 마트베이치라는 관리가 갑자기 악어에게 먹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악어의 뱃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여전히 살아 있음을 친구와 아내에게 알린다. 악어의 뱃속에 갇혀 버린 산 사람의 이야기.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환상 문학의 느낌이 묻어나는 가운데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와 심리 상태는 개인을 넘어선 당시 사회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시선이 느껴지게 된다. 악어의 주인이 독일인이라는 점과 그가 이반 마트베이치를 구하기 위하여 악어를 죽이는 것은 손실이며, 심지어 이러한 상황이 많은 관객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탐욕에 찌든 한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 작품이 1800년대 중반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악어의 주인인 독일인은 제정 러시아에 침투하고 있는 서구 자본의 상징처럼 보여진다.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쳐지던 러시아가 이 시점에서 서구의 자본을 받아들이면서 발전을 꾀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을 통하여 비판하려고 하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또한 악어 뱃속의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부분은 러시아의 관료 체제의 무능함과 경직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느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아내와 상관이 이반 마트베이치의 생사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흑심을 품는 모습을 통하여 더욱더 그 정도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악어의 뱃속에 갇힌 이반 마트베이치는 현재 자신이 위치한 곳이 오히려 밖에 있을 때보다 더 평온하다고 말하면서 그를 구하려는 주인공을 만류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또한 비어 있던 악어의 뱃속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자신이 악어의 뱃속에 있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풍자를 가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밖에서는 힘겨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였던 그가 오히려 자신의 철학을 완성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는 결국 악어의 존재가 서구에서 유입된 자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자본에 기대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라는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려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스토옙스키가 평생 제정 러시아에 대한 비판과 불만을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본성에 빗대어 보여주었다면, <악어>는 비록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의 그러한 생각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함께 수록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와 톨스토이의 그 유명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이다. 둘다 공통적으로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이 작품들 역시 무겁게 느껴진다. 예수에 의하여 부활한 성경 속의 인물 라자로를 통하여 죽음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 지에 대하여 안드레예프가 택한 관점을 바로 허무가 아닐까 생각된다.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라자로가 부활한 이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그린 것에 반하여 안드레예프는 라자로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마저 삶에 대한 허무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메두사를 본 사람들이 돌로 굳어버린 것처럼 라자로의 눈을 보는 순간 삶의 의미를 잊고 허무에 잠겨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안드레예프가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하였으나 결국 삶에 대한 허무를 담담하게 말하는 <라자로>와는 달리 톨스토이는 그러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통의 인간들이 겪는 고통의 진행형의 모습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야기 초반에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죽음을 너무나 무심하게 바라보는 주위의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쓸쓸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반 일리치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부패한 러시아 관료 체제에서 각 지위에 걸맞는 행동을 하면서 현재에 안주하면서 살아온 그의 모습은 죽음 앞에서 나약해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곧바로 눈치채게 된다. 심지어 톨스토이가 카드놀이를 도박으로 간주하여, 사악한 행위라고 평상시에 말했던 점을 떠올린다면 친구들과 함께 각종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불행한 운명이 부여되었음을 알 수 있으리라.


 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는 일리치는 자신을 성심껏 돌봐주는 게라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비록 일리치의 하인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죽음을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게라심을 보면서 일리치 역시 조금씩 죽음에 대한 심경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심지어 그가 평소에 무심하게 대하였던 아들이 자신을 슬피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게라심이 그랬던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변화를 보여준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죽음 이후의 고통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말이다.


 안드레예프의 <라자로>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한 자와 죽음을 향하여 다가가는 자의 모습을 통하여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게끔 한다. 이반 일리치가 만약 죽음을 경험하고 라자로와 같이 부활하였더라면, 라자로 역시 부활하기 이전에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중이었다라면이라는 가정이 서로 교차하면서 이 두 작품이 서로 통하는 죽음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자로라서 이반 일리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는 우리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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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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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산바람

    러시아 단편선에 실려 있는 여러 작품에 대한 내용과 배경 그리고 친절한 해설까지 잘 읽고 갑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17.10.13 20: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러시아의 대문호라 일컬어지는 작가들이기에 그들의 장편 소설이 부담된다면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

      2017.10.14 16:03
  • 스타블로거 한스푼의 시간

    명작임을 알면서도 잘 손이 안가는 책이였는데 리뷰를 보면서 다시금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2017.10.13 21: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한스푼의 시간님에게 이 작품들을 읽기 위한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서 오히려 제가 더 뿌듯하네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

      2017.10.14 16:04
  • 파워블로그 이루

    <악어>에서 악어의 뱃속에 갇힌 이반 마트베이치가 현재 자신이 위치한 곳이 오히려 밖에 있을 때보다 더 평온하다고 말하며 그를 구하려는 주인공을 만류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놀라우면서 씁쓸해집니다. 소설의 장치에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순간 순간 생각에 잠길 듯 해요. '죽음'에 대하여 다른 시선이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라자로>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넌지시 알려주네요. 작가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가 담긴 책이이라서 '마음의 양식을 쌓는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7.10.14 11: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항상 느끼지만, 이루님의 댓글은 이 리뷰에 대한 또 하나의 축약본이라 생각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한 눈에 꿰뚫어보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악어의 내부와 외부의 상황을 통하여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왜 글을 통하여 당시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더군요. 또한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통하여 바라봄으로써 죽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루님 말씀처럼 제대로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

      2017.10.14 16:10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