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어렵게 생활고에 시달리다 기방에서 춤과 노래를 배우던 여주인공과 그녀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거기에 당시 있었던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오버랩 되면서 이야기가 굴러간다.
그야말로 한일합방시대에 힘들게 살았던 조선인들의 이야기, 그 전형적인 스토리 그대로다. 여주를 사랑하는 가난한 인력거꾼, 주먹 잘쓰고 정의로운 불량배는 여주를 사랑하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늘 여주 곁에서 도움을 주기만 하고. 잘 나가는 배우가 된 여주를 노리는 돈많은 일본인, 여주의 절친인 또 다른 배우는 돈많은 사업가의 사탕발림에 첩이 되었다 버림받아 폐인이 되고?
한국에서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전형적인 한국 신파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인지. 이것은 한국 신파의 감춰진 문학성 때문인건가 아니면 그녀의 감성코드가 뼈 속 까지 한국인이기 때문인건가.
사실, 이런 스토리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니, 좀 놀랍다. 한편으로는 와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그들에게는 과연 우리의 역사적 불행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한국인의 영적인 힘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한국사람의 입장에선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별 감흥 없을 수 있지만, 이 사실을 처음 듣는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하고 새롭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김구 선생의 비서로서 독립운동에 일조하신 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작가는 그 분을 통해서 당시의 일들을 전해듣고 감화받아 이야기를 구상했고, 이 책은 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첫 번 째 작품이다. 이 사실 역시 외국독자들에게는 작품 이면에 숨겨진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됐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 책이 외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는게 납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한국어판은 과연? 한국에서도 그만큼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어로 써진 작품이었어도 한국어에 익숙한 작가여서 그랬는지 번역이 아주 매끄럽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번역가도 공을 많이 들였겠지만 이 부분은 절대적으로 작가의 역량이 크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민진 작가는 전투적으로 그녀의 작품 [파친코]를 세계인들에게 들고나가 강연 등을 통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곤 했는데,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작품을 쓰게 될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위해서 글을 쓰게 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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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작은 땅의 야수들 | 김주혜, 박소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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