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러 가기 전에 원작을 완독하였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잠재된 본성을 직조하는 소설로 양분될 수 없는 선과 악에 대해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한다.
원작과 뮤지컬은 제법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비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여성 캐릭터의 등장
뮤지컬에 여성 배우를 세우고, 로맨스 요소를 가미해야 했기 때문일까.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원작과는 달리 뮤지컬에는 제법 여성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여성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 낸 점은 굉장히 신선한 시도이지만, 아무리 고전을 재현하였다 하더라도 굳이 여성을 성녀와 창녀 이분법적인 해석으로 들고 와야 했나 정말 의문이 들었다. 지킬의 자세한 설명 없이도 실험을 방해하지 않고 그를 온전히 이해하며 사랑을 주는 성녀 엠마. 처음으로 자신을 사람 취급하며 욕과 비난이 아닌 사과를 하는 지킬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창녀 루시. 여성 배우가 무대에 서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이런 전형적인 해석은 정말이지 지루하고 따분하다.
2. 지킬 박사 캐릭터와 그의 실험 의도
원작 소설에서는 지킬 박사가 사회 명망과 지위를 갖춘 중년 교수로 묘사된다. 그는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을 분리함으로써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을 분리해 내어 본체는 악의 유혹 없이 온전하게 선한 존재로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에서의 지킬은 결혼을 앞둔 청년이자 정신병원 의사로 등장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정신분열증을 겪는 아버지와 정신병자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신약 개발 실험을 시작한다. 병원 이사진에게 요구하였던 임상 실험이 거절당하자, 직접 시험 대상이 되어 하이드로 변신한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 선악을 분리하고자 한 시도는 동일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시작한 일인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3. 하이드의 살해 사건
뮤지컬에 등장하는 하이드가 원작의 하이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해한다. 소설에서는 길을 걷다 마주친 어린 여자아이와 고상한 기품을 풍기는 노신사가 살해당한다. 하이드는 이러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사악한 욕망이 충족되었고, 삶의 즐거움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뒤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앞에서는 고상한 척하는 고위 관직자 중 위선자를 찾아가 모두 죽인다. 피해자가 선했음을 유난히 강조하는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어린 소녀를 성매매 업소에서 돈 주고 사 강간하는 주교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어 그가 살해당할 때 어쩌면 관람객들이 시원하다고 느낄 수 있게끔 한다. 원작에서는 정말 '악' 그 자체의 날 것을 보여준다면 재현물은 하이드의 행동에 서사를 부여한다. 물론, 뮤지컬에 등장하는 하이드 역시 루시를 괴롭히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쓰레기인 것은 마찬가지..
4. 지킬과 하이드의 사망
원작에서는 악으로 점철된 하이드의 힘이 강력해지다 못해 하이드에게 지킬 박사의 몸을 빼앗겨 버리자 다시 몸을 되찾기 위해 집에 숨어 살다가 이를 들키자 스스로 자살한다. 뮤지컬은 지킬과 엠마의 결혼식에서 지킬이 하이드로 계속해서 변화하자, 잠시 지킬로 돌아온 사이에 어터슨에게 죽여달라고 사정하다가 어터슨이 들고 있는 칼에 몸을 던져 사망한다. 어찌 보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원작에서는 하이드의 몸이, 뮤지컬에서는 지킬의 몸이 시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