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런데 아빠가 토라졌다. 그리곤 밥을 먹기도 전에 집을 나가 버린다. 애매하고 황당한 아침식사, 남겨진 가족은 밥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현민'작가의 '토라지는 가족'은 가족의 의미,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가족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파스텔톤의 따뜻한 그림이 편안함을 주지만 스토리는 결코 만만치 않다. 처음엔 그림만으로 읽어보자.
부드럽고 화사한 붓터치, 화사한 그림자, 질감의 효과, 잎들과 구름을 가로지르며 스며드는 빛의 유희는 마치 르느와르를 연상시키듯 그림속으로 빠져든다.
■ 두번째는 글로만 읽어보자. 첫장은 '일요일아침'이라는 다섯글자로 시작한다. 그림의 분위기라면 일요일 아침은 여유롭고 한가롭고 평화로운 아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마치 커다란 액자안에 가족이 있는듯 하다. 독자는 빈식탁에 둘러 앉은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할머니, 아빠, 엄마,형,누나, 막내 3대가 모였다. 따스한 그림과는 달리 표정도 없고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슨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아니다 다를까, 다음장이다. 아빠가 토라져서 나가버린다. 그다음엔 엄마, 할머니, 누나, 형, 막내 순으로 온 식구가 토라져서 나간다. 심지어 개까지도 나가버린다. 이유도 모른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사태를 해결할 대화 한마디도 없다. 그런데도 그림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가족은 모두 밖으로 나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나무를 다듬고, 엄마는 거꾸리 운동기구를 타며 뒤바뀐 세상을 바라보고, 할머니는 분수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감정을 정화하기 의한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이 지나간다. 험한 말이 오가거나 위험한 행동이 일어나진 않았으니 다행인건가? 어른들의 마음은 정말 괜찮은걸까? 남겨진 세명의 아이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해결한다. 누나는 꽃속에 숨고 형은 호수에 돌을 던지고 막내는 고양이와 새들을 쫓아다닌다. 해가 저물도록 하루종일....
■가족과의 식사시간이 가시방석같았던 시간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이 싸웠다거나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때, 모래알같은 밥알을 눈치껏 삼켜야 했던 기억말이다. 그 때의 냉랭한 분위기는 어찌나 시간이 더디가는지, 누구하나 섣불리 말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밥을 먹었다. 행복한 기억은 아니다. 이처럼 가족간 갈등이 생길때 해결하는 법이 우리는 참 서툴다. 생각해 보면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다.
■가족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장 작은 사회이고 일차적 사회구성원들이 모여사는 집단이다.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서로 싸우기도 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며고 행복을 만들어간다. 토라지는 가족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마지막장엔 한가족이 모두 식탁에 모인다. 가족이 하나, 둘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막내 때문이다. 이 집의 갈등을 해결하는 초점은 막내의 배꼽시계로 부터 시작하고 식탁에서 갈등이 해결된다. 아침식탁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풍성한 음식이 차려져있고 마치 태어나서 처음 먹는 것처럼 아주 행복하게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장의 음식물 쓰레기만 남은 빈접시는 그간의 갈등조차도 모두 먹어 없애버린 느낌이다.
■마지막, 글과 그림으로 천천히 읽어보자. 따스한 그림처럼 가족도 이런 느낌이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 그랬냐는듯, 무슨 일이 있어냐는 듯... 조건없이 품어주고 안아주는 가족, 작가는 의도적으로 따스한 그림을 그렸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삶의 질 종합지수(2018)를 살펴보면 지난 10년간 다른 지수에 비해 '가족, 공동체의 삶의 질'이 가장 낮은 것을 볼 수 있다.어른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유없이 토라져 버린 어른들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다. 집은 식구들에게 안전하고 평온한 안식처여야 하고 아이들은 돌봄과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토라지는 가족을 보며 가족의 여러가지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가장 중요한 편안하고 풍성하게 밥먹을 수 있는 식탁, 대화가 풍성한 식탁, 웃음이 커지는 식탁, 이 장면이 우리 모두의 식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