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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도서]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정혜신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지인의 인스타에 올라온 책 표지, 그리고 제목에 압도되었다. 내 머릿 속에도 있던 문구였다. 이별의 종류를 생각했고 죽음이라는 이별이 주는 공허가 얼마나 깊고 막막한 것인지를 일상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문구가 저절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 책 제목으로 이고 나올지는 몰랐지만.

 

정혜신 선생님의 페북을 통해 남편 이명수 선생님의 심정지의 고비를 넘긴 소식을 본 적 있다. 두 분 모두 그 상황과 그 이후의 느낌에 대해 글을 올리셨기에 어떤 일이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 그 사건을 언급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남편이 죽음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에 평생을 죽음과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온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선생님도 충격이 컸을 것이다. 그 이후의 삶의 태도는 바뀌었다. 하루하루가 꽃다발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친정 가족 다섯 중 두 명을 잃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더니, 죽음에서 가장 멀 것 같은 사람부터 내 곁에서 사라졌다.

 

 

 

 

죽음이 주는 상처는 상상 그 이상이라는 말에 위안을 받았다. 아픈 척 하는 것 처럼 보이고, 나약해 보이는 것 같아 혼자 울거나 자다 깨서 울거나 생각하다가 울거나, 아무도 없을 땐 소리 내어 통곡하거나, 그런 울음들이 계획없이 쏟아질 땐 남이 볼까봐, 남이 알아챌까봐 얼른 울고 수습을 했다. 나에게, 너는 왜 그리 강하지 못하냐고, 니가 잘 한 게 뭐 있다고, 니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이 지경에 이르렀겠냐며 나를 나무랐다. 스스로에게 다그치고 상처를 주었다. 남들이 상처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내고 아물 듯 하면 면역력이 생겼다고, 이제 덤덤할 것이라 여겼다.

 

나는 착각했던 것이다. 내가 더 여물어가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왜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남들은 웃는데 나는 웃기지도 않고, 저런 이야기 보거나 들으면 눈물이 나야하는데 왜 눈물도 나지 않을까. 공감력 하나만큼은 자부하던 사람인데. 내가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의미일까?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설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껏 슬퍼하지 못했고 내가 정신 차려야 남은 가족들을 돌볼 수 있다는 머릿 속 계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이제 니가 해야지 어쩌겠냐 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던 탓이었다.

 

 

참, 듣기 싫은 말이었다. 엄마도 그래서 속이 곪아터졌을 것이다. 오빠의 죽음 후 아빠의 급격한 건강 악화는 엄마 스스로를 다그치게 했을 것이다. 내가 정신 차려야 해, 죽은 아들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해, 라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끊임없이 움직였을 것이다. 당신의 몸과 마음에 입은 충격과 상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겉으로 괜찮은 척, 남은 가족을 위로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무럭무럭 암세포가 자라는 지도 모르고, 나중엔 온몸에 퍼졌어도, 오직 너희 아빠 어떡하니, 였다. 나는 엄마를 위로했어야 했다. 아픈 아빠만 신경쓸 게 아니라 아들을 잃은 엄마도 같은 수준의 위로를 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했고 분출이 필요했네.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통제하는 버릇이 가져오는 감정마비는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하고 끔찍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불러옵니다.(55)

죄의식이라는 건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목숨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든 그 죽음을 막아야 했다는 무의식적인 결론을 내려놓고 자기에게 책임을 추궁합니다.(81)

감정을 닫으면 바로 그때 휙 쓸려가게 됩니다. 고통을 피하려다 그 고통에 온전하게 수몰되는 겁니다.  큰 슬픔을 당했을 때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참담한 재앙의 현장 속에서 널빤지 조각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 있다는,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며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83)

 

나는 저 모든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다. 어떻게 알고 있을까, 정혜신 선생님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알게 된 것들이겠지. 더 큰 고통, 더 슬픈 고통, 더 아픈 고통이라는 등급은 없다. 각자의 고통과 슬픔은 있는 그대로 옳고 아프다. 나는 아직도 아프고 아직도 눈물이 나고 아직도 죄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남은 가족에게 잘 해야한다는 머릿 속 뇌들이 외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산 사람에게 더 잘 해야하는 게 당연한데 그게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고, 보고 싶어하고 그리움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미안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끊임없이 생각한다. 다행히 이 책에 명쾌한 답이 있다.

 

마음 껏 슬퍼하라.

 

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픔에 직면하고 저 밑까지 가보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기에 장례식을 치를 때보다 더 아파하고 더 슬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혜신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남편의 죽음 직전까지 간 경험을 빗대어 그 다음 답도 명쾌히 제시한다.

"죽음을 위한 대비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는 것을요. 그것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119)

 

나는 의지한다. 친정 가족에서 한 가지 더 뻗은 내 이름으로 이어진 가족. 남편과 아이.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고 그들을 통해 행복의 순간들을 걷고 있다.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또 눈물이 솟는다. 앞으로의 나의 매일도 꽃다발 같은 시간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아직은 그러지 못하겠지. 조금은 더 슬픔에 직면해야할 것이다. 내 안을 보려하고 내 상처를 보듬으려 해야할 것이다. 직장으로 도피하고 일에 몰입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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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초보

    마음 껏 슬퍼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요. 그럼에도 슬플 때는 마음 껏 슬퍼하세요. 누군가는 그렇게 슬퍼하는 님을 이해해줄 수 있으니까요.

    2019.01.06 15:2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스스로에게 닥달했었던 게 컸어요. 그래야한다는, 참 사회화된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위로 감사해용^^

      2019.01.16 21:06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지금이라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의 글로 위무가 되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달리 정신과 의사일까 싶기도 하네요.

    2019.01.22 17: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네네, 울고 싶은 날이 많아요 ...

      2019.01.27 20:48
  • 은빛연어

    벼락같은 여동생의 죽음으로 무척 힘이 들었는데, 솔직하게 써주신 글 보고 위로받습니다. 우리 슬기롭게 슬퍼하며 나도 위로하고, 주위사람들도 위로하며 살아요!

    2020.04.25 08:3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그렇군요. 제 글에 위로를 받으셨다니, 되돌아 저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감사해요, 정말.

      2020.04.25 21:5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