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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거실에서 바다가 보인다. 이사한지 두 달 채웠고 석 달째다. 딱 이 방향으로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다. 카페 부럽지 않겠다는 말도 듣지만 그래도 커피는 카페에서 마셔야 맛있다. 저 바다는 여수와 남해 사이의 바다이다. 저 바다를 드나드는 배가 많아 심심하지 않은 바다이다. 배가 왔다갔다하네, 오늘 바다색이 참 곱네, 아 눈부셔~ 요런 반응만 보였다.



어느 날 이 동네 다음 동네 사시는 큰어머니께서 오셨다. 큰어머니를 모시고 온 사촌오빠가 “저기 등대가 있네.” 하였다. 나는 이제껏 등대 있다고 인지를 못한 상태였기에 깜짝 놀라며 “바다에 등대가 있었다고요?”하였고 큰어머니가 “니는 그기(거기) 등대있는지도 몰랐나. 그가(거기가) 모영아이가(아니겠니)”

나는 일어서서 창으로 다가가 다시 바다를 살폈고 왼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과연 희뿌옇게 등대가 보였다. 항상 내가 앉는 자리에선 창으로 보이는 딱 저만큼만 보였던 것이다. 의자 세 개 나란히 있는 것 중 나도 참 고집스럽게 맨 왼편 의자에만 앉았으니 사각지대에 놓인 등대는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테라스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사진 상으로 안보이는데 줌인한 사진을 보면




등대가 보인다. 더 당기니



확실히 보인다. 모영. 큰어머니가 말하는 모영.



큰어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즈기(저기) 바이(위) 시개(3개)에 물이 차모(차면) 바이가 안보이(안보여). 물이 빠지모 바이 시개가 보이는데 내가 저거만(우리 아들 가리키며) 했실때 할매들 허는 얘기가 저어는(저기는) 문둥이를 싣고 배타고 가서 바우에다 내라놓고 ‘좀 있다 데리러 오께’, 해놓고 가삔는기라. 좀 있다 물이 차모 그 문둥이는 물에 빠지 죽는기라. 한마디로 버리고 오는기제. 그래서 그으는(거기는) 배들이 지날 때 구신(귀신)이 운다고 그으(거기)를 피해서 안댕깄나.”



큰어머니의 진한 남해사투리가 좀 힘들었지만 다 알아는 듣는다. 근데 ‘모영’이 뭐지. 왜 모영이지. 큰어머니께 몇 번이고 다시 물었다. “큰어머니, 모영이라고요? 모영? 묘영이 아니고?”



“하아(그래) 모영, 모영이라대. 모영이라꼬 할매들이 부르대.”



큰어머니도 팔순 할머니인데 자꾸 당신이 열살때쯤 할매들을 언급하시며 ‘모영’이라고 하신다. 아무래도 사투리 또는 남해의 센 발음때문에 모영이라고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아무리 한자로 조합해보려해도 “모영”보단 “묘영”이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귀가 어두운 큰어머니와의 대화도 힘들었고 이미 굳어버린 발음으로 정확한 단어를 알기란 더 힘들었다. 큰어머니도 큰어머니의 할머니 세대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것이니 벌써 70년도 더 전에 들으셨을테니.



이야기 자체가 얼마나 슬픈가. 문둥이를 버리는 곳이었다니, 그곳 이름이 모영으로 불리던 묘영으로 불리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생명을 버리는 곳이었고 그것도 차별을 밑둥으로 한 이별 장소였다. 먼 시간의 이야기인데도 가슴 언저리가 저릿하게 아팠다.



지금은 그곳에 등대를 설치해두었다.




그날 저녁, 마침 친정아버지가 오셨다. 나는 모영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바로 여쭸다.

“큰어머니가 저 등대 있는 곳이 모영이라는데 모영이란 말이 맞아요?”

아버지의 표정은 뜬금없다는 표정이었다.

“저어는(저기는) 삼여도인데..”

“큰어머니가 모영이래요. 아니 같은 동네나 다름없는데 두 분이 왜 다르게 알고 계시죠?”

아버지는 여전히 모르겠단 표정으로

“모영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문둥이 버렸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아버지 특징상 자기가 모르는 것이나 대충 아는 것은 아는 척 않으신다. 대신 자기가 아는 바는 줄줄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저어는(저기는) 삼여도라 부른다. 바위삼 세 개 있다해서 삼여도아이가. 저기 쪼끄매 보여도 바다 밑으로는 큰 바위아이가. 그래서 저어(저기) 지날때는 배도 조심한다. 아마 그것때메 등대 설치했시기구마. 지금은 저어가(저기가) 여수땅이 돼삤는데 원래는 남해가 더 가깝다. 물이 빠지는 날에 저어서(저기서) 시체 하나가 바우에 걸려있더란다. 남해 사람들이 시신에 손대기 싫은께 여수쪽에 너거 땅인께 너거 알아서 처리해라, 이리 돼갖고 저어가 여수땅이 돼버렸시끼다. 저어가 물만 빠지모 바우 3개가 또렷이 보인다.”


아버지 연세는 일흔 하나. 큰어머니와 고작 열 살 차이이고 아버지가 태어난 마을과 큰어머니 태어난 마을은 고작 마을 하나 차이이다. 같은 세대이면서 같은 공간에 사시는 분이 같은 장소를 보고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어떤 게 진실일까. 이야기의 흥미도로 보면 큰어머니 이야기가 감성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척도로 따지면 아버지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어쩜 두 개의 이야기는 별개가 아닐지도 모른다. 바위삼 세 개가 어부들에겐 난코스였을테고 시체도 많이 걸렸을 것이고 사람을 갖다버리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을터이니 저 곳이 품은 사연은 얽혀있되 사람마다 별개로 전해내려올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확연히 물빠짐이 커지고 있었다. 삼여도가 뚜렷하게 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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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하루

    사시는 곳이 리조트네요. 마리나 리조트!!

    2019.02.28 11:1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네! 행복한 집입니다.^^

      2019.03.02 20:51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이사를 가려다 20년 가까이 된 집을 내부수리하느라 설 이후 정신 없이 보냈는데 이제서야 겨우 집 모양새를 하여 갑니다. 바다 위의 섬을 앞마당으로 모셔 둔 금비 님! 새집에서의 생활이 맑게 빛나길 바랍니다.

    2019.03.19 14:1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고맙습니다 선생님, 집 예쁘게 수리하셔서 반짝반짝 행복한 공간 되세용^^

      2019.03.29 21:01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