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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간장이 떨어진지 오래다. 엄마의 투병 기간 동안 친정집에서 살다시피하였으니 간장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아버지가 혼자 남겨진 것 때문에 몇 달을 더 친정집에서 살았다. 원래 살았던 곳의 월세 계약이 끝나고 마침 집도 다 짓게 되면서 이제 다시 우리 세식구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집으로 들어간지 석 달째, 자꾸만 친정집을 돌아보게 된다. 다행히 동생이 아버지 식사며 집안일을 돌봐주고 있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할 수 없으니 걱정이다.

오랜만에 내 살림을 하려니 그것도 새집에 맞는 새살림을 하려니 없는 것 투성이다. 그 중 양념의 시작인 된장과 국간장이 없다. 친정집에서도 냉장고 속에 엄마가 큰 락앤락 통에 담아 둔 집된장 아끼고 아끼며 먹다가 결국 다 먹고 말았으니 된장은 기대도 안했다.(이젠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말씀으론 장독에 된장이 있다하였다. 다만 된장을 그냥 퍼는 게 아니라 콩을 삶아 기존의 된장과 섞어 치대야한다눈 것이다. 나는 장독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장독에 든 장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않으셨고 이모가 계시니 이모한테 해달라는 말씀만 남기셨다. 나는 더 여쭐 생각도 안했다. 죽으면서까지 남은 식구들이 먹을 된장이며 장이며 참깨며 고사리며... 이런 것 걱정하시는 엄마가 안쓰럽고 고맙고 아프가만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게, 너는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냐며 역정을 내시기도 했다. 나중엔 참다참다 화가나서 “아니 이 큰 살림을 엄마가 사십년 넘게 해오셨는데 제가 어찌 알아요! 오히려 아빠가 더 잘 아셔야죠! 내 살림이 아니어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겨우 주방에 있는 것도 이제 파악했는데 왜 맨날 엄마랑 저를 비교하냐고요!”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어머니랑 비교했다. 주방 살림부터 다용도실이며 화장실 청소, 심지어 마당이나 장독대 주변, 현관 근처 청소까지 잔소리하셨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고 나중엔 얼마나 엄마의 빈자리가 크면 저러시겠냐 싶어 차츰 듣고 흘렸다. 이러다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아버지나 가족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더 폭발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1년 넘게 친정집에서 살다시피했던 두 살림을 끝내고 나는 완전히 이사를 하여 새로운 곳으로 갔다. 오히려 예전 살던 곳보다 지금 이곳이 친정집과 훨씬 가까워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떨어져 생활하니 아버지도 나도, 서로에게 좀 미안해졌나보다. 미움보다 측은지심이랄까 연민같은 감정이 더 커졌으니까. 거의 매일 얼굴을 보이려 노력하다가 석 달째쯤 접어들면서 일주일 한두번 가게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나를 반가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이다. 친정집에 들른 김에 점심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간장 생각이 났다. 집에 간장이 있냐 여쭈니 있다고 하시며 나를 장독대로 데리고 가시는 아버지. 키가 다른 장독들이 나란히 줄 서 있다. 총 6개다. 저 장독 어딘가에 간장이 들어있다하셨다. 우리는 간장을 뜨기 위한 바가지와 깔대기 찾는 데만 시간을 꽤 허비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엄마가 원래 두는 자리에 이것들이 없다며 투덜대셨다. 살림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제자리에 잘 두지 않는 동생의 습성 자체를 싸그리 모은 잔소리 폭격이 한차례 지나가고 내가 씽크대 상판을 다 뒤져 찾아내고서야 조용해졌다.

가장 큰 장독을 열었는데 텅비었고 그 다음 장독도 비어 있었다. 세 번째 장독 안에는 딱 봐도 된장인 것이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던 나는 아버지께 확인을 구했다. 된장이 맞다하셨다. 지난 날에 이모가 다녀가셨는데 그 때 콩을 삶아 된장을 만들어놓고 가셨다 하였다. 이모, 감사합니다. 그 다음 장독 세 개에 장 같은 액체류가 담겨있다. 하나는 젓국, 두 개는 간장이다. 실은 간장인줄 몰랐던 장독 두껑을 열었을 때 나는 그것이 된장인 줄 알고 아버지께 이건 된장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바가지로 슥슥 두드리며 막을 깨트리고는 이건 장이다,라고 하셨다. 그것도 오래된 간장이었던 것이다. 장 치고는 짠맛보다 단맛이 났다. 장이 담긴 두 개의 장독 중 한 개는 그냥 검은 물 같았다면 다른 하나는 맨 위쪽이 고체처럼 굳어있었고 곰팡이 같은 게 피어있었다. 오래된 간장이어서 그렇다하셨다. 그럼 저 새 간장을 떠가겠다 하였더니 아버지가 오래된 간장을 가져가라하신다. 그 귀한 걸 어떻게 가져가, 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두껑이 열린 장독안을 내려다보는데 눈물샘이 툭 터진다. 이거 담는다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손수 콩 키워서 콩알 개리고 말리고 쪄서 메주를 만들어 건조시키고, 소금에 절였을텐데, 다 먹어버리면 엄마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나, 라는 생각들이 한꺼번에 교차하는 것이다.

엄마의 손맛이랄 수 있는 마지막 음식류인데. 아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니면 내가 간장을 담아볼까, 저 엄마의 간장과 매년 섞으면 엄마의 손맛이 그대로 전수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새 병에 오래된 간장을 담고 아버지께 3천원을 드렸다. 수중에 현금이라곤 천원짜리 석장 뿐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받지 않으려 했지만 나를 위해서라고 말씀 드리니 체념하듯 받으신다. 내가 돈을 드린 이유는...

 

지난 12월에 동료에게 들은 얘기가 있어서다. 장 종류를 가져갈 때는 그 집안의 기운을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단돈 천원이라도 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의 장을 함부로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얼마나 찔렸는지 모른다. 이제까지 엄마에게 장을 받아오며 한번도 돈을 드린 적이 없었고 친정엄마니까 이렇게 자식이 된장이며 젓국이며 간장이며 참기름 등등을 받아가면 좋아하신다고만 생각했다. 나 때문이었을까, 내가 장을 가져오며 한번도 돈을 드리지 않아서 친정집의 기운을 뺏아간 것은 아닐까. 그런 얘기를 듣고도 어찌 장만 받아서 나오겠냐고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어이없다는 얼굴로 살짝 웃으신다. 3천원을 받으시는 것이다. 딸 마음 편하라고.

 

간장을 햇살에 둔다. 귀한 사람을 모시듯 예쁘게 담았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방울도 쓰지 못했다. 여전히 아까운 마음이 더 크다. 오히려 파는 집간장을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를 앞둔다. 내가 미련한 걸까,란 생각도 동시에 한다. 여전히 나는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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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양념의 시작, 그것은 필수죠. 집된장 간장이 맛이 있는데......마음에도 담고 있네요. 하온이 많이 컸지요.

    2019.03.01 02:1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맛있는 간장이라 더는 맛볼 수 없음이 슬픔을 더하게 합니다.

      2019.03.02 20:49
  • 스타블로거 눈부신햇살

    잠시 이곳에서 보이지 않으셨던 시기..힘든 시간들이셨네요..
    그러게요..또 익숙해지면서 만들어가겠지요..가족들모두..

    2019.03.01 15:5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그렇겠지요..감사합니다. 새학기 준비에 불안과 스트레스도 많으실텐데..^^

      2019.03.02 20:49
  • 파워블로그 하루

    사는게 뭘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저는 장 담그는 법 아예 몰라요. 장독대 드나드는 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화내는 거 짜증내는 거 금박샘은 분명 안 어울렸을거예요. ^^ 스스로에게 잘해주는 나날 되시어요. 그냥 토닥토닥만....

    2019.03.01 17:0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짜증금박입니다.^^ 그냥 짜증이 아닌 왕짜증!!
      속이 왜이리 좁은지 몰겠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2019.03.02 20:50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