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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방

[도서] 달의 방

최양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런 책을 읽으면 자동으로 나는 소녀 적의 느낌들이 떠오른다. 결코 밝고 명랑한 느낌이 아니다. 외롭고 불안하던 시절이다. 겉으로는 친구들에게 호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그건 주류라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 걸까. 따뜻하게 대했던 것 같긴 하다. 내가 덜 외롭기 위해서였을까. 착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래야 그나마 존재감을 보인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의 불안감과 서늘함이 엄습한다. 그래도, 꿋꿋하게 내 곁에 있어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보름 전에 만나고 왔다. 그렇게 2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곁에 있었기 때문에 달 바깥으로 떠돌지 않을 수 있었다.


 

표제작 달의 방은 시적인 이야기다. 5개의 단편 중 가장 오묘한 빛을 내는 작품이다. 달빛마저 사라진 방에서 두 소녀는 중력을 거스르며 제자리 뛰기를 하고 물구나무를 선다. 태양이 아닌 지구 주변을 맴돌면서 잠시 태양을 가리기도 하고 지구의 그림자에 사라지기도 하는 달의 존재. 그녀들의 존재같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유령 취급당하는 학급 단톡방이 싫어서 정은은 자진해서 단톡방을 나간다. 자신을 유령 취급하던 친구들에 의해 다시 소환당한다. 교묘한 괴롭힘과 따돌림이다. 이를 위로하는 방식은 고립감을 느끼는 단톡방보다 나만의 정보들을 저장해두는 나와의 채팅방이다. 세상과 연결된 최소한의 끈이다.

 

다섯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추린 단어들을 배열해본다.

 

(태양이 아닌),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는 존재. 중력도 없는 곳. 음의 기운. 월경. 여성. 비주류, 바깥으로 밀려난, ()소수자, 성폭력, 은둔자

 

고립은 다연의 생존방식이었다. 그것이 더 지질했고 조금은 멋져보이는 듯도 했다.” (일시 정지26)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건 주류들의 시선이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그래선 안된다는 다수의 시선이 다연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이 책 다섯 꼭지에 등장하는 친구들 모두 비슷하다.

 

외로움이 깊어질 때면 나는 처음부터 없는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편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중략)학교에서 말 한 마디도 못할 때면 온몸이 답답하다. 그럴 때 심장을 가쁘게 만든다. 심장을 뛰게 해서 내 감정을 헷갈리게 한다.” (달의 방55)

 

다행인 건, 이 아이들이 결국 자신과 비슷한 친구를 만났다는 것.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들도 달의 뒷면에서 살아가는 낯선 존재가 된 것처럼 단둘이어도 손을 마주 잡고 폴짝폴짝 뛰며 기뻐할 수 있는 존재 한 명을 만난 것이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달 없는 우주도 그랬다. 영진이와 우주가 겪었을 성폭력은 어찌 보면 흔한 경험이다. 그런 일을 당한들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탓도 있다며 아마도 많은 피해자들은 함구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이미 중력같은 사람이 곁에 있는 그녀들을 보니 웃음이 난다.


 

교실을 둘러보면 조용히 은둔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 산다고, 지가 특별한 줄 안다고 비난받기도 한다. 딱 한 번 여학생 반을 담임한 적이 있다. 무언가 적대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상담 같은 건 싫어했다. 자신을 그냥 두라고 했다. 규칙을 어기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별 참견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오직 책만 읽었다.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만 했다. 친구가 없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걸었다간 무안을 당하곤 했다. 이미 다 큰 아이들이었다. 3, 학교생활의 끄트머리였고 알건 다 아는 아이들이었다. 자기 방어기제일 수도 있고 자신이 터득한 나름의 학교생활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아이의 철벽방어의 벽조차 만질 수 없었다. 문고리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도 알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아이가 떠올렸다. 유명한 배우와 이름이 같았던 그 아이. 가끔 떠오른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기만의 친구를 만났을까. 그리고 미안하다. 평범함을 기준으로 그 아이를 어렵게 대하는 게 표났을 테니까. 상처받을 거란 지레짐작으로 단어 하나하나 고르고 어설프게 미소 지으며 다가갔던 나를 그 아이는 간파했을 것이다. 무심하게 대할 걸, 지금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다섯 개의 이야기에 그 아이와 비슷한 아이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매우 공감하겠지. 내가 그랬듯이. 나도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공감했듯이.

 

서툴지만 관계를 만들어가고, 어설프지만 다정함을 건네는 우리들의 연대가 뭉근한 따스함을 선사해주던 소설집으로 기억될 것 같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무상제공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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