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까지 온다.
"미안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란 말이 지겹지 않다.
20140416만 떠올리면
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하고, 절대 잊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자동으로 하게 된다.
지난 1월, 라오스 여행을 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
일부러 하루 일찍 가서 서울 구경을 하였다.
남편에게 꼭 가고 싶은 곳, 두 군데를 말했다.
그래서 숙소를 명동으로 정했었다.
그 두 군데는 교보문고와 광화문 광장이다.
가봐야지, 했던 곳.
드디어 갈 수 있었던 곳.
무척 추웠다.
광장은 썰렁했다.
이 추운 날에 조그마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
추모의 마음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고
늦은 밤에 노란 리본을 만들고 계신 분들이 보였다.
이 추운날.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돌아오세요. 꼭.
세월호 관련 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진상규명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
그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서명을 하였다.
기부금을 냈다.
봉사자분이 고마워하시며, 추모 리본고리를 주셨다.
나는 속으로 중얼댔다.
'미안해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네요.
고마워요. 이곳에서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한창 관심이 떨어질 시기였는데
많은 분들이 한파가 몰아치는 늦은 밤에 함께 하고 계셨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
우리 모두 안전한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나는 복직을 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봄이 왔지만
작년부턴 봄이라고 마냥 들뜨고 즐겁기만 하지 않다.
다행히 추모 주간을 학교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추모트리를 만들고 추모리본을 달았다.
아주 소박한 행위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도 숙연했다.
하늘나라에선, 희생자분들 모두, 제발, 잘 지내시길...
진상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과분한 바람인지도.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교생이 짧은 퍼포먼스를 했다.
나는 업무 담당자로서, 진심을 담아 현수막을 만들었다.
휴직 중이었던 작년이 떠올랐다.
아이 학교 행사로 교실에 갈 일이 있었다.
1학년 교실 벽 한켠에 걸린 게시판..
세월호 사건 관련 행사를 진행한 흔적이었다.
작년 오늘, 아이가 하교하여 집에 오자마자
오늘 특별한 영상을 보았고 영상을 보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포스트 잇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나보다.
(우리 아이가 쓴 메모 두 장)
아이 일곱살 때 뉴스를 함께 보며 내게 물었던 질문
"엄마, 형아 누나들 왜 배 속에 있어?
왜 못나와?"
내가 어떤 답을 하겠는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우리 아이는 이제 아홉살이 되었다.
토요일이다.
내 나름의 추모의식을 했다.
아이와 그림을 그려보았다.
아이는 정확하게 잘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배에 갇혀 죽은 형아 누나들을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이는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국가는 무얼 했나요?"
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나도 그림을 그렸다.
정말 오랜만에, 붓을 잡았다.
카페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이번주 내내 추천 도서로 올려놓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오늘 옆집 사장님이 자신의 친구가 쓴 책이라며 내게 선물로 주신
[광장의 교회]
책의 저자, 양민철 목사님이 광화문 광장에서 커피 봉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 분의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다.
고맙습니다. 꼭 읽겠습니다.
오늘 페북엔 온통 추모 물결이다.
추모 그림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계속 이미지 저장을 했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일도 많은데.
다른 일 제쳐두고 이 리본들을 하나로 모으고 싶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