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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가 등장했다. 작년에 이사 와서 놀란 점 중 하나가 아직도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가는 농부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다른 밭에서 다른 농부가 다른 소를 '이랴이랴'하며 밭을 갈고 있어서 또 놀랐던 기억.

 

이곳은 남해에서도 오지(澳地). 내가 사는 이곳에 뭣 모르고 처음 오시는 분들 대부분, 남해대교를 건너거나 삼천포 연륙교를 건너 남해라는 섬에 왔다라는 기쁨도 잠시. '도대체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들 정도의 꼬불꼬불한 길을 몇 십분 들어가야 한다. 하필 안개라도 자욱하게 끼인 날이라면 목숨 걸고 (거북이) 운전을 해야 한다. 등에 잔뜩 힘을 주고 핸들을 꽉 잡아야 한다. 그나마 날이라도 맑으면 당신에겐 몇 십분의 시간이 선물 같을 것이다. 푸른 바다가 주는 '안구정화'라는 보상이 기다릴테니까.

봄과 가을이 되면 논이든, 밭이든 작물이 바뀐다. 내가 사는 이곳은 경사진 산을 깎아 다듬은 황토밭이 대부분이다. 이 산능성이는  바로 바다로 이어진다. 그래서 농기계가 들어오기 쉬운 환경이 아니다. 잘해봤자 경운기 정도 들어가려나. 남해에선 사라진 줄 알았던 우경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이유다.


황토밭에서 최고 작물은 고구마. 5월말 6월 초가 되면 황토밭에 고구마 순을 심는다.

 

우리 부모님도 농사를 지었지만 주로 하우스 농사였기 때문에 밭작물에 대해선 잘 몰랐다. 고구마는 알이 큰데 종자로 남기면 그 부피가 어마어마하겠구나, 라고 상상 정도를 한 적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알게 된 고구마 심기는 이런 나의 상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뭐든 뿌리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완고한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고구마는 단단한 고구마 알을 심는 것이 아니라 그 알에서 싹이 돋고 길다랗게 순이 자라면  그 순을 따다 밭고랑에 하나하나 묻는 것이라니! 왜 이제껏 그 생각을 못했을까.(그럼 감자도 그렇게 심나?) 

 


 

고구마를 심고 있던 밭 옆에선 소가 밭을 갈고 있었다. 노부부의 힘겨운 쟁기질만큼이나 소의 걸음에서도 늙음이 느껴졌다. 저 소는 노부부와 맺은 인연이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우리집에서 길렀던 소들은 비육용이었기 때문에 길어야 2년 정도면 팔려나갔다. 저 소는 다를 것 같다. [워낭소리]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소의 긴 인연까진 못가더라도 소의 몸에 쟁기를 끼우고 밭을 갈 정도의 소라면 노부부의 가족 언저리쯤은 되지 않을까.

 

저렇게 밭을 갈아서 어떤 작물을 심을까. 마찬가지로 고구마를 심을까. 이 동네는 가을이 되면 할머니들이 자기네 집 고구마 사라고 펜션 단지 한 바퀴를 돈다.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라서 한박스씩 사라는 것을 다음 해에 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올해는 꼭 사드려야겠다.

 

 수업 내용 중 신라의 지증왕 때부터 '우경'이 시작되었다는 대목이 있었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수업 자료로 보여 주며 '이것이 우경이다, 신라시대가 아닌 올해 우리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더니 연신 "진짜예요?"라고 묻는다. 도저히 선생님 말은 못믿겠다는 눈치다. 요즘에 저런 게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는 믿기지 않았다. 같은 남해에 사는데,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소는 밭을 갈고 농부는 쟁기를 붙잡고 아낙은 퇴비를 뿌린다. 남해 바다와 여수 끝자락을 배경으로 2016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믿기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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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병통치약

    저 분들께는 실례지만 한 번 구경하고 싶네요 ^^

    2016.06.28 23:3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저도 동영상까지 찍는 게 조금 죄송했지만 워낙 귀한 장면이라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았답니다.^^

      2016.07.01 08:30
  • 스타블로거 초보

    거기 오지라는건 지가 알아요... 빛담촌 찾아가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울집도 고구마 많이 심었는디...ㅎ

    2016.06.29 07:1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올 겨울 풍성하겠는걸요. ㅎㅎ

      2016.07.01 08:31
  • 파워블로그 나날이

    경운기가 나오기 전에 너무 자주 보았던 광경인데, 지금은 참 놀랍네요. 사진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드네요. 경작지가 고르지 못하면 기계보다는 소가 더 용이할 것이란 생각은 드는데, 참 평화로운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장면을 수업에까지 활용하시니......일석이조입니다.

    2016.06.29 07:3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시골에 살았지만 저는 어릴 때도 못보던 장면이라서..
      수업에 활용하길 잘 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지증왕과 우경을 바로 연결하더라구요.^^

      2016.07.01 08:31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