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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로 쓰면 좋겠지만, 우리 학교와 관련된 책이다보니, 평점을 주고, 서평을 올린다는 게, 뭔가 맞지 않는 것 같다. 한편으론 소문도 내고 싶고 자랑도 하고 싶은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공개되는 것이라 망설이게 됐다. 바쁘다고, 시집 읽기를 미루었던 것도 한몫했다. 다 읽고 나니, 보석같은 아이들의 시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홍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신 리뷰 말고, 일반 포스팅으로.(아직 인터넷서점에서 판매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시집 판본이다. 학교 문집의 경우 교지 형태를 따르면서 작은 판형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시집은, 일반 시집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표지와 형태가 갖춰지자 아이들의 글은 몇 배로 살아나 반짝였다. 출판은 남해의 독립출판사 쓰리피플에서 맡았다. 쓰리피플에서 낸 첫 책이다. 이 분들도 아는 사람들이다. 남해는, 한다리만 건너도 알만큼 좁은 동네다.

 

 

제목만 읽었는데, 움찔했다. 한 아이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안녕'이란 말을 그렇게 써왔지만, 정작 '안녕'에게 "안녕?"하고 인사해본 적은 없었구나.

 

 

우리 학교 아이들이 쓴 시이기에, 나의 마음이 더욱 울렁인다. 어떤 녀석인지, 어떤 성격인지, 요즘에 무엇에 빠져있는지를 알고 있는 아이라서, 이 녀석이 왜 이런 시를 썼을까, 아~이래서 시를 이렇게 썼구나, 하고 아이는 모르겠지만 나의 발은 한발 더 바짝 아이 앞으로 다가간다.

 

 

 

 

총 5개의 챕터로 나뉘었다. 챕터별 제목은 아이들의 시 안에 담긴 문장에서 따 왔다. 1부 <물고기들도 하늘 위로 몸을 던졌다>는 사춘기 소년들의 한창 지나고 있는 성장통에 관한 주제로 분류된 시들, 2부 <오늘은 안녕에게 안녕합니다>는 학교와 친구에 관한 시들이다. 그 중 한 녀석이 쓴 '일진과 진따'라는 제목의 시를 읽고(시집 나오기 전에) 국어선생님과 심각하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혹시 이 녀석이 왕따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걱정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패러디한 시였으니, 그래서 일부러 시집에도 패러디했음을 표기했다. 아이들이 모든 친구와 잘 지낼 수 없고 친하지 않음을 넘어 적대적 관계도 놓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터, 이렇게 시로 슬며시 자기 마음을 드러낸다. 상대방이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3부 <이젠 꽃밭만 걸으시다>는 가족, 고향, 사랑에 관한 시들로 묶었다. 3부 제목으로 따온 시는 참으로 애살 많고 밝은 아이다. 어느 날 집안에 안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던 녀석에게 속으로 놀랐으면서 겉으로는 별 표현을 하지 않았었다. 어쭙잖은 위로로 녀석에게 동정한다는 느낌을 줄까봐여서. 나중에 녀석이 쓴 시 [그녀]를 읽고 내가 위로할 걸, 어깨라도 두드려 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엄마였다. 엄마에게 '이제 꽃밭만 걸으라'는 아들의 사랑이었다. 이 시에 사연도 있었지만 표현 방식에서도 유난히 튀는 이유는 '-시다'라는 남해 특유의 사투리를 썼기 때문이다. '걸으세요'라는 말이 표준어라면 '걸으시다'는 남해 사투리다. 어서오시다, 안녕히가시다, 하는 순 남해말이다. 우리 아이들의 숨은 문학성들이 모래밭 구슬처럼 발견되는 순간이다.

 

 

현욱이에게 온 사랑, 나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때마다 수줍어 하는 현욱이 얼굴이 떠올라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아이돌 걸 그룹에 푹 빠진 현욱이가 그대로 담겨 있는 시다. 현욱이 가슴엔 4계절의 경계 없이 오직 봄.봄.봄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렇게 자랐듯, 우리 아이들도 바다, 바람, 햇살, 자연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은연 중에 이것들은 시적 자양분으로 쌓여있다가 시어들로, 시구로 탄생한다. 시간과 공간이 섞인 '또 밤이 되면 바람과 파도가 만나겠지?'라고 물음을 던지는 중1 아이. 4부 <또 밤이 되면 바람과 파도가 만나겠지>라는 제목이 탄생한 이유다.

 

 이 시를 읽었을 땐, 툭, 머릿 속 마른 나무가지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요샛말로 라임이라고 하는, 싯구 대조와 운율이 들썩이듯 살아 있다. 개구리밥이 실제 개구리의 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개구리의 울음이 동시에 울려퍼지는 초여름의 푸른 기운이 흠뻑 느껴진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옆의 논에, 한창 모가 자라고 있었고 그 논의 자박한 물 속에서 수십마리의 개구리들이 동시에 울어대는 어둑한 가로등길을 걷던 게 떠오른다. 해마다 초여름이 되면 반복되었던 일상이었음에도 나는 개구리의 울음을 가지고 글을 써 볼 생각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울음을 볶는다는 표현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5부 <쌀쌀한 바다에 잠긴 아기 새들은 너무나 슬프구나>는 시간, 사회라는 주제로 묶였다. 중첩된 의미로 해석하는 것,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이 시를 쓴 상준이는 어떤 생각으로 이 시를 쓰게 된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쌀쌀한 바다, 그리고 아기 새. 자기 자신이나 또래들을 아기 새로 표현한걸까? 바다가 쌀쌀하다는 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바다의 닫힌 마음을 의미하는 걸까. 그 바다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여러 의미들을 추적하게 만든다. 상준이를 만나보고 싶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반 아이들도 있다. 시를 통해 어떤 아이일지 상상한다. 올해, 만나게 될 아이들이다.

 

재우가 시를 썼구나! 수줍음 많고 움츠려 있는 녀석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재우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재우의 얼굴과 '죽음'이라는 명제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재우에 대하여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치이면서도 자기 생각은 살짝 찾아와 밝히는 녀석. 재우야, 너에게 죽음이란 것이 이런 의미가 된 계기가 무엇이니? 이젠 물어볼 수 없다. 졸업을 하였다.

 

우리 아이들의 시를 읽으며 받은 감동을 뾰족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가 빛나는 보석이다. 귀한 보물이다. 따뜻한 사람이다. 한명한명, 안아주고 싶을만큼.

 

아이들의 시를 책으로 엮느라 내 옆에 앉은 동갑내기 선생님이 무척 고생을 하셨다. 업무의 중량감도 컸을테고 유난히 힘든 반을 맡아 고생하면서도 끝내 웃음을 잃지 않던 선생님이, 섬 아이들의 거친 말과 행동을 시로 다듬어 원석을 가치 있는 보석으로 세공하였다. 같은 학교에서 두번 만난 인연이고 동갑이라 유난히 마음을 주었는데 1년만에 우리 학교를 떠나서 무척 서운했다. 좀 더 계셔서 우리 아이들의 보석을 더 발굴해주시지. 그래도 이렇게 빛나는 원석을 발견하고 보석으로 엮어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시사인>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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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이수

    와아~~~관심갑니다. 읽고 싶네요. 아이들의 시...좋아해요. 저도 읽고 싶은데 예스에서는 검색이 안 되네요. ㅜㅜ

    2017.03.01 00:0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이수

      어쨌든 소년들의 시집 축하합니다. 장합니다.^^

      2017.03.01 00:04
  • 스타블로거 눈부신햇살

    순수함이 묻어나고..작가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알기에 더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셨을듯..

    작가의 상황을 모르고 읽어도 소박하면서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잠재력이 풍부한 생각주머니를 가지고 있는것 같지요..예쁜 아이들..
    만드는 과정에서 힘들기도 하셨겠지만..이렇게 작품으로 만들어지니..더 멋지네요~~짝짝짝!!

    2017.03.01 08:0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너무 예쁘고 이 아이들 얼굴보면 아이들이 쓴 시가 생각나서 더더더 사랑스럽습니다.^^

      2017.03.04 15:26
  • mira

    와우 아이들의 시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너무 높네요. 읽으면서 울컥하게 만드는 시구절도 보이고 감동적이네요

    2017.03.01 18: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금비

      저도, 감동받고, 아이들이 더 예뻐보였어요.

      2017.03.04 15:35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