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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월

 

 

[나를 위로하는 그림] 리뷰에도 독서 노트에도 다 담지 못한 문장들

 

리뷰 :  [나를 위로하는 그림] 2021_062

 

 

나를 위로하는 그림

우지현 저
책이있는풍경 | 2015년 04월

 

 

 

 

 

일반적으로 신혼의 신부가 예쁜 속옷을 쇼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녀는 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속옷을 사서 모아왔다. 언제가 "예쁜 속옷을 보고 만지고 입으며 스스로에게 위로의 감정을 선물하는 것"이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리고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그림을 본다.

그림을 보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주로 위로받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것도 아주 슬픈 그림을. 힘든 일이 있을 때 오히려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 실컷 눈물을 흘리면 속이 후련해지듯이 나는 그림 속 인물의 슬픔에 공감하며 스스로를 타이르듯 위로한다.

(13쪽)

 


 

함메르쇠이의 <침실>에서 침실이라는 공간은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휴식의 공간보다 밀폐되고 차단된 외로운 공간에 가까워 보인다.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는 회색빛의 잔잔한 담채는 내재적 슬픔을 표현한 것이며, 침묵으로 채워진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폭 위로 떠오르는 공허의 빛이 느껴진다. 그런데 침실에서 여인이 결국 바라보고 있는 것은 세상과 유일하게 통하는 창문이다. 어쩌면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누군가와의 작디작은 소통이 아니었을까.

 

그림 한 점이 주는 위로의 힘을 다시금 상기하며 나는 오늘도 침실 속 그녀를 마음에 그린다. 내 안의 깊은 숨을 후, 불어 내쉰다.

(17-18쪽)

 


 

 

웃을 수 없는 날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눈물도 나지 않으니 그저 아플 뿐이다. 사람의 슬픔이란 깊고도 혼곤하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럴 때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빨래다. 슬픔을 털어내는 행위로 빨래만한게 없는 것 같다.

(33쪽)

 


 

그녀에게 빨래는 냉혹한 현실에 치여 지치고 닳아버린 마음을 환기시키고 정화하는 매개체다. 답답하고 옥죄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옥상에서 빨래를 널며 오랫동안 뒤집어쓰고 있던 일상의 매캐한 먼지들을 탈탈 털어버린다. 조금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우울한 기분을 날려주고, 마음과 몸에 달라 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삶의 고단함과 마음속 슬픔들을 쉬이 날려버린다.

(...) 슬픔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며,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털어내는 것이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시원하게 눈물 흘리며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보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 

눈물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흘려보낼 시간이다.

(38-39쪽)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불안한 마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그윽한 커피향이 고요가 되어 혀끝에 닿는다. 기분 좋은 쓴맛이 나면서도 상큼한 신맛을 받쳐주고 여기에 단맛의 여운까지 감도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마음에서 들리는 평화로운 소리를 들으며 느긋함을 즐기는 이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48쪽)


 

커피는 작지만 단단하고 쓰지만 향기롭다. 달콤 쌉쌀한 것이 인생이듯 커피는 인간의 삶과 매우 닮았따. 커피에 시럽을 넣어 단맛과 쓴맛을 조절하듯 우리의 삶도 적절하게 조절이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

꽉 찬 하루를 보낸 나는 오늘도 여지없이 커피를 찾아 나선다. 커피를 마시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한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한 잔의 커피에 어두운 마음을 가득 실어 보낸다.

(52-53쪽) 

 


 

 


 

그렇게 미친듯이 책에 빠져 지냈던 이유는 아마 세상에 대한 답을 책속에서 구하려 했던 것 같다. 너무나도 복잡한 시간이었기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의 양은 줄이고 생각의 질은 높이는 과정이다.

(...)

소파에 앉아 밤새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든 코발트블루 색이 그윽하게 빛나고, 세상이 온통 푸른 빛깔로 물들어 있다. 턱을 괴고 오롯이 책에 집중한 여인이 독서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은은한 등불이 방 안의 온기를 가득 메운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책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여인의 눈빛이 진중하고 진지하다. 어떤 페이지는 가볍게 넘어가고 도 어떤 페이지는 아주 오랫동안 시선이 머문다.

(76-77쪽) 

 


 

 

너무 서투른 나머지 서로가 상처만 주는 이기적이고 성마른 관계가 된다. 서로의 마음을 다 알면서도 기어이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내어 생채기를 후벼 파고는, 미안해 한다. 상처를 헤집으면 서로 서로의 부재에 상처받는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닿을 수도, 뒤돌 수도 없는 허공에 뜬 섬 같다.

쇼펜하우어도 말하지 않았던가.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 인간은 상처로 연결됭 있고 세상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90쪽)


 

베일을 쓴 여인을 통해 얼굴 이면에 감춰진 내면의 상처를 담담하게 표현한 타벨의 이 그림은 상처받은 이들에게 바치는 우아한 헌사 같다.

이 그림을 보고 '상처'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인의 눈빛은 분명 상처였다. 그녀의 표정은 상흔으로 가득했고, 그녀의 몸은 흉터투성이처럼 보였다. 누군가 내게 어찌하여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녀가 나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명석한 감정보다 분명한 의미는 없으니 말이다.

(92쪽)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어른이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존재하는 어른이든, 자신의 상상 속 어른이든, 우리는 가장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어른의 모습을 따라하며 성장한다. 어른을 흉내내는 영원한 아이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 읽는 자세를 따라하면 진짜 책을 읽게 되고, 소리 내어 웃다 보면 정말 행복해지듯이 좋은 어른을 자꾸 흉내 내면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불리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살짝 빌리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에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149쪽)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가혹한 세상에서 잠깐의 휴식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고, 천혜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자연 속에 파묻혀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자체로 매순간 완성이지만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자연, 자연이 들려주는 좌절 속 희망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의 삶은 좌절을 이겨내려는 미숙한 희망으로 허덕인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즐겁고 또 버거운 일이다.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던 사실 하나, 좌절과 소나기는 곧 그칠 것이다.

(171쪽)

 


 

 


 

드레이퍼의 그림에는 드레이퍼만의 향기가 있다. 누구도 흉내 내거나 따라 할 수 없는 고유한 향기가 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향기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평소 스쳐 보내거나 보고도 아름을 알 수 없던 야생화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추운 땅 속에서 헤매고 견디며 자란 싹에 매일 물을 주고 거름을 갈고 햇볕을 쐐주어야 꽃이 피어날 수 있듯이, 드레이퍼의 끝없는 열의와 고집스러운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그림이 뒤늦게 꽃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갑자기 피는 꽃은 없다. 다만 갑자기 그 꽃을 발견할 뿐이다. 간절함으로 마침내 희망을 꽃피운 드레이퍼의 열정과 끈기에 가슴 뻐근한 감동이 전해진다.

(227-228쪽)

 


 

 


 

여인의 몸은 그늘에 숨어 있지만 그 시선은 빛을 향해 있다. 지독하게 어두운 자신만의 공간에 같힌 채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제발 나를 이곳에서 꺼내달라고 누군가에게 간절히 외치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찬란한 태양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만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멈춘 시간과 함께 그녀의 마음도 갇혀버렸다.

언제쯤 그녀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올까. 그녀의 눈빛에 삶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이기심인지도 모르겠다.

(252쪽)

 

모든 강요가 폭력적이기 마련이지만 그중 최고는 희망의 강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슬퍼할 자유마저 빼앗는 일이기에. 오스카 와일드도 "희망적인 사고의 바닥에는 끔찍한 공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듯이, 사람들이 희망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53쪽)

 


 

 

그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전화가 와 나가보니,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는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에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그가 보였다. 인기척 소리가 나도 꿈쩍하지 않아 다가가 보니,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물로 중무장한 얼굴이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세상이 주먹으로 일격을 가해 호되게 얻어맞은 표정 같았다. 나는 흔들리는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토닥일 뿐이었다. 슬프게도,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따.

괜찮으니 걱정말라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어떤 결락감 같은 게 느껴졌다. 차마 감쳐지지 않는 그림자랄까. 슬프도록 밝던 그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왠지 편하지만은 않았따. 아리고 미안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가 죽었다.

(282-283쪽)

 


 

바람 앞에 가차 없이 흔들리며 쓰러질 듯 위태로운 사이프러스 나무는 갖은 풍파에 시달리는 인간의 삶과 매우 닮았따. 그러나 흔들리기만 할 뿐 결코 부러지지 않는 모습에서 힘든 고난을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고흐가 열과 성을 다해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의 캔버스에서 쉼 없이 흔들리며 살아 꿈틀거린다. 흔들리기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진지하고 조용하게 말을 건넨다.

기어이 흔들리며 살아야 하는 것, 그래서 생은 기적이고 감동이며 슬픔이다.

(286-287쪽)

 

 


http://blog.yes24.com/document/14976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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