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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2

[도서] 영혼의 집 2

이사벨 아옌데 저/권미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021_066

 

읽은날 : 2021.08.21~2021.08.26
지은이 : 이사벨 아옌데 저/ 권미선 역
출판사 : 민음사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삶(그의 선택과 과오(업), 죄)에서 비롯된 결과를 읽어내야 하는 2권은 1권보다 좀더 흥미롭게 빠르게 전개되지만 너무나 가슴아프고 끔찍한 사건과 고통을 읽어내는 마지막은 힘들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보는 듯한 내용이 2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시대적 상황안에서 살아낸 중남미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더 많이 공감되고 아프고 아팠다.

읽으면서 중간 중간 책을 잠시 내려놓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민주화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젊음을, 생명을 내 놓고 투쟁했던 분들을 기억해 본다. 그리고 조용히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본다.

 

트루에바가 살아온 삶(정말 잘 살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으로 인해 고통받고 살아가는 자손(딸, 아들 그리고 손녀 알바까지)들의 삶을 바라봐야 하는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어떤 마음일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어떤 평가를 내릴까? 궁금해진다.

 

 

나는 개집에 있었을 때 언젠가는 가르시아 대령을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당연히 복수받아 마땅한 사람들 모두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증오심마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증오심이 많이 희석되었고 날카롭고 또렷하던 면들도 많이 무뎌지고 뭉뚱그려졌다. 그 어느 것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 그 모든 일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짜여진 운명에 상응하는 것이었으며, 에스테반 가르시아도 그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거칠고 삐뚤어진 부부니었지만, 그 어느 것도 괜히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강가의 갈대밭에서 그의 할머니인 판자 가르시아를 넘어뜨렸을 때 또 다른 업의 고리가 연결된 것이었다. 그 후 강간당한 여자의 손자는 강간한 남자의 손녀에게 똑같은 짓을 되풀이 했고, 아마도 사십 년 쯤 후에는 내 손자가 가르시아의 손녀딸을 갈대밭 사이로 넘어뜨리고, 또 다른 고통과 피와 사랑의 역사가 앞으로도 몇 세기 동안 계속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개집에 있었을 때 나는 각기 정확한 자리를 지닌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완성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조각들이 다 제자리를 찾고 나면, 각 부분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될 거라 확신했다. 조각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가르시아 대령 역식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326-327쪽 에필로그 중에서)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강간(성폭력)으로 태어난 손자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자신의 존재조차 알지못한 할아버지(=트루에바)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한평생 살명서 마침내 자신을 세상에 나게 한 할아버지인 트루에바를 무너뜨리게 된다. 트루에바를 죽이는 것이 아닌 트루에바가 사랑하는 손녀딸을 정신적, 육체적 고문과 학대, 강간에 이르는 고통으로 복수한다.

 

그러나 알바는 자신이 엄청난 고문과 학대, 성폭력을 당하고 죽음에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상황에서 복수를 다짐했지만 이내 화해와 용서를 선택한다. 자신이 끊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 그 고통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고, 내 사명은 두고두고 증오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미겔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지금 이 방에서 내 옆에 누워 있는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더 좋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내 배 안에 들어 있는 아이를 기다릴 것이다. 그토록 많은 강간을 당하면서 생긴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미겔의 아이일 수도 있지만, 내 딸인 것만은 틀림없다.

(328쪽 에필로그중에서)

 

 

1권의 리뷰 마지막에 남겼던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저자인지 책 편집자인지 모르겠으나 소설의 시작전에 인용한 파블로 네루다(칠레의 시인, 남미의 역사를 소재로한 시를 쓴 민중 시인이라 한다)의 글의 마지막 문장인  '영원히'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어떤 의도(?) 어떤 의미로 이 시를 글을 인용한것일까? 궁금해진다.

 

 

결국, 인간은 얼마나 사는 걸까?

천 년? 단 하루?

일주일? 수 세기?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죽는 걸까?

'영원히'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파블로 네루다

 

 

2권까지 다 읽고 리뷰를 쓰면서 칠레의 민중 시인이 말한 '영원히'와 저자 이사벨 아옌데가 말하고 싶었던 '영원히'가 의미하는 색깔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원히'가 말하는 의미를 책의 맨 마지막 알바의 회고록(?)과 같은 글에서 찾아냈다.

 

내가 찾아낸 '영원히'의 의미, 색깔은 여기 블로그에다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은 많은 이웃님들, 그리고 앞으로 읽게될 독자들에게 이책을 읽은 내가 던져보는 질문이다.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덧,

[영혼의 집 2]의 내용중에 맘에 담은, 그리고 각 인물들, 시대적 상황을 잘 표현한 문장을 따로 담아 보았다.

 

문장 수집 포스트 -> [영혼의 집 2] 문장수집

 

 


 


http://blog.yes24.com/document/14996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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