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책이 아니라 미술관 책이다. 음,
미술 책인가? 아니 그림책인 것 같기도 하다. 책
표지부터 예쁘다. 요즘 책을 막 대하겠다는 나의 다짐으로 띠지가 있으면 바로 벗겨서 버리는 편이다. 크게 내용이 들어가 있거나, 표지에 지장이 없으면 상관 않고 버린다. 이 책은 일단 띠지부터 버릴 수가 없다. 띠지에서 이 책의 컨셉을
전부 이야기 해준다. 다리를 동동 흔들며 책을 보고 있는 아이가 나다.
난는 ‘골목을 돌아’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차’를
한 잔 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냥 들어가도 되지만 난 왠지 기어들어갈 것 같다. 그렇게 미술관으로
산책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저자의 컨셉도 마음에 들고 시간대 별로 장을 구성해 놓은 것과
해당하는 그림과 화가도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도 깊은 내용들을 다룬다. 열다섯개의 그림 이야기라고 해서, 그림 열다섯개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양하다. 관련된 다른 화가와 작품들도 함께 이야기 해주고, 그 그림이 있는 미술관의 다른 면모도 이야기 해준다.
고흐처럼 친숙한 화가도 있고,
에곤 실레, 에드가 드가와 같이 알지만 굳이 찾아 보지 않았던 화가들도 있다. 나머지는 전부 모르는 화가와 사진사(?)들이었다. 모르는 화가들이지만 어디선가 스치듯 봤던 그림들은 당연히 최고. 그에
반해 사진 작가들이 소개되어 있다는 건 놀라웠다. 전혀 모르는 분야라 신기하면서 재밌었다. 사진 전시회는 너무 현대적이라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만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멀리 했는데, 사진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장 좋았던 건 모래 만다라.
아니 좋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인상 깊었던? 훅
들어왔던? 마음에 들었던? 어쨌건, 불교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얼마 전 읽은 불교 명상 책도
생각나고, 다시 한 번 생애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무에서 왔다가 무로 사라지는 것. 그렇게 공들여, 목과 허리 한 번 제대로 필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고, 완성되는
순간 다시 흐트러져 강에 흘려 보내지는 모래 만다라. 그 예쁜 마지막 순간은 정말 찰나가 되어 버리고
사라져야만 하는 모래. (흐드러지는 벚꽃이 생각났다.) 벽에
걸어 놓으면 더 이상 만다라일 수 없는 만다라. 만다라를 만드는 그 과정만이 예술이자 수행으로 여겨진다.
미술관 소개를 빼놓을 수 없다.
아직 유럽이나 미국 쪽은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서 미술관이 유명하다는 것만 알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랜드마크를 하나씩 저장해놓은 기분이다. 어느
미술관을 가기 위해 그 나라를 꼭 방문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마지막에 우리 나라의 여러 미술관을 소개해준
부분도 꽤나 도움이 될 듯 하다. 사실 지방러라, 먼 곳의
미술관들은 아무래도 방문하기 힘들겠지만, 내 주변 미술관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일본인들이 설계한 곳이 있어서 신기했다. 마음이 더 동했다. 일단 파주에 도서관도 가보고 싶은데 미술관도 있으니 꼭 가봐야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야기가 조금 중구난방 흐른다는 느낌이다. 에세이적인 느낌에 그림 소개와 미술관 소개. 그러다 보니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림도 소개되어 있고, 해당 미술관에서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그림도 소개한다. 미술관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긴 한데, 한 꼭지당 흐름이 매끄럽지
않게 보이기도 하고, 좀 더 그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마음만 일게 했다.
아이가 요즘 차에서 잠든다. (아이는
카시트에서 들어올리는 순간 깨고, 그 뒤로 낮잠은 없다. 그리고
하루 종일 피곤하고 졸려서 징징징~ 그래서 그냥 차에서 재운다) 여지없이
책을 꺼내든다. 이 책도 그럴 줄 알고, 미리 챙겨두었던
책이었다. 차에 앉아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책을 읽는 건 사실 곤욕이다. 게다가 요즘 너무 더워 시동도 못 끄고 에어컨을 켜놓고 있어서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 이 책은 아주 적절했다. 미술 책은 아직도 모시는 책
중에 하나라 일절 필기도 하지 않으니 연필을 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림 보는 재미가 너무 행복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예쁜 책이, 예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혜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