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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도서]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저/유수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아니, 작가양반. 우리 애는 좀 내버려 둡시다. ㅠ 페이지 넘길 때마다 어찌나 간이 떨리는지 ㅠ

<두 도시 이야기>로 한 번 만난 적 있는 찰스 디킨스의 책이라 무척 기대했다. 탄탄한 전개와 흥미 진진한 스토리, 거기에 매력적인 인물들까지. 고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재밌는 책이어서 신나게 읽었다. 그래서 <올리버 트위스트>도 무척 기대했다. 어떤 이야기를 펼칠까, 어떤 묘사가 있을까, 저자의 풍자적 기술도 기대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을 워낙 천천히 읽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도 이틀만에 시간을 들여 다 읽었다. 이 책은 고전이 아니다. 이렇게 재밌다니. 역시 요즘 나오는 소설보다 훨씬 더 재밌다.

  제목만 보고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낸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읽다 보니 올리버 트위스트는 그저 사건이 일어 나게 해주는 중심 인물일 뿐이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권선징악을 이야기 한다.

-       우리의 보편적 본성에는 최상과 최악의 색조들이 뒤섞여 있다. 상당 부분이 추악한 색조를 띠지만, 가장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이자, 변칙이며, 일견 불가능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16)

저자의 인간에 대한 통찰엔 감탄이 나온다. 인물 하나 하나가 다 각기 다르고, 그 다름을 미묘하고 세밀하게 관찰되도록 묘사한다. 그런 모습들을 하나씩 보며 나를 돌아보고, 타인에 대한 묘사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관찰과 묘사들에서도 저자는 한결같이 인간 본연에 대한 성찰에 부디 긍정적인 면이 빛을 발하기를, 좋은 사람들이 많고,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보인다. 권선징악, 결국 좋은 마음으로 끝까지 올 곧게 살았던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까진 않더라도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게 된다. 그래서 저자의 책이 언제나 더 끌린다.

올리버가 끊임없이 범죄 행위에 연루 될 때마다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봤다.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 되 얘야 ㅠ 착하게 살아야지 하다가도 범죄 연루되었다가 잘못되어 더 안 좋은 일이 있을까봐 걱정하기도 하는 등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       무릎을 꿇고 이런 짓은 절대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만약 이토록 무섭고 경악스러운 범죄를 저지를 운명이라면 차라리 당장 죽게 해달라고 말이다. 올리버는 차츰차츰 안정을 되찾으면서 나지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 처한 위험으로부터도 구해주실 것을 빌었다. (231)

-       올리버는 처음으로 살인은 아닐지라도 도둑질이 이 원정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픔과 두려움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올리버는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자기도 모르게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눈에는 안개가 낀 듯 눈물이 차올랐고, 잿빛 얼굴에는 차가운 땀이 맺혔으며, 팔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251)

-       올리버는 그 짧은 순간에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계단을 올라가 저택 사람들을 깨워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이런 생각에 가득 차서 즉시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253)

올리버는 전체적으로 순수 그 자체이다. 언제나 올곧게 살고, 범죄에 연루될 바에는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마음마저 보여준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범죄에 연루되는 순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커져 더 고생하기도 하고, 전화위복으로 잘 풀리기도 한다. 올리버가 순수함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잘 살고자 노력했기에 좋은 일이 생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가장 밑바닥 이야기를 그려, 그 곳에서도 좋은 점을, 아름다운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10)

-       현실에서 실재하면서 거짓 광채로 둘러싸인 무언가에 대해, 그것의 추하고 역겨운 모습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15)

결국 올리버도 높은 가문의 아이였다. 처음에는 길거리 아이라도 선한 아이로 잘 자라서, 잘 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선함을 지닌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올리버는 엄마도, 아빠도 귀족 가문이었고, 환경이 그러하였다 하더라도 올곧은 그 훌륭한 성품이 어디 가지 않는다를 보여준 것 같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게 몹시 아쉬운 느낌.. 처음에는 어떻게 그런 밑바닥의 삶을 살면서 저런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 저게 될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저자는 그것이 모두 부모의 성품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       아이가 엄마의 따뜻한 마음씨와 고귀한 성품을 닮을 것이라고 확신했지. (575)

어떻게든 자신을 더럽히려고 노력하는 페이긴과 멍크스의 악마적 괴롭힘에도 자신을 지켜낸다. 이는 인간 본성일까? 아니면 그저 좋은 기질을 물려 받았던 순수한 올리버였기 때문일까?

이런 빛 같은 순수성에 끌리는 인물이 있다. 그만큼 타락하지 않았겠지. 혹은 순수성의 싹은 남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 아이를 보기만 하면 나 자신과 당신들 모두에게 억한 심정이 든단 말이에요.” (290)

-       이렇게 타락한 존재조차도 자존심 때문에 여성스러운 감정을 미미하게나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낸시는 이런 감정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이야말로 낸시에게도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닳고 닳아서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 인간성이었다. (448)

-       하물며 나처럼 관뚜껑 말고는 확실한 지붕도 없고, 병들고 아플 때 의지할 친구도 없는 여자들이 어떤 남자에게 타락한 마음을 내준 경우라면 어떻겠어요? 그 남자가 비참한 삶의 텅 빈 자리를 메워주고 있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말릴 수 있겠어요? 아가씨, 우리를 가엾게 생각해줘요. 가엾게도 우리에게는 여자로서의 감정 중에 단 하나만이 남아서, 위안과 행복이 아니라 폭력과 고통의 원천이 되어버렸거든요. (455)

이 책을 읽는 많은 엄마들이 낸시에게 끌리지 않을까 한다.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 어떻게든 살아 남게라도 해주고 싶었던 낸시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을 보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올리버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 어쩌면 여기서 가장 순수하면서도 안타까운 인물이 낸시가 아닐까. 순수성을 지켜주고 싶어 하면서, 자신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스톡홀름 증후군일지도 모르지만, 사익스에게 품은 정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거다. 가장 슬픈 인물이어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다.

  하나 거슬리는 표현은 교활한 유대인 노인페이긴이다.

-       한 마디로, 이 교활한 유대인 노인이 올리버를 올가미에 얽어맨 셈이다. 맨 처음에 올리버를 고독하고 우울한 상태로 내버려 둠으로써, 이제 황량한 곳에서 혼자 슬픈 생각에 잠겨 있으니,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다는 간절함을 갖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페이긴은 서서히 올리버의 영혼에 암울한 독을 주입하면서 순수한 영혼을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 (214)

읽는 내도록 이 사악의 결정체인 페이긴을 지속적으로 유대인 노인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며 저자의 인식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다. 유대인에 대해서 정말 악감정을 갖고 있었던 걸까? 페이긴은 한결같이 나쁜 사람이다. 이 이야기에서 악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겨도 될 정도인 그를 지속적으로 유대인 노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역자 해설에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당시에는 인종 차별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그들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금이야 많이 바뀌었다지만, 이 때 당시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들만의 생각을 안고 산다. 그 어떤 누구도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

-       이제 누렇게 변색된 낡은 무명옷을 입게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순간에 계급이 결정되어 낙인 찍혀 버렸다. (22)

-       주교에게서 비단 앞자락을, 말단 교구관에게 삼각모자와 레이스를 벗겨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한낱 인간이 남을 뿐이다. 때때로 위엄과 거룩함조차도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외투와 조끼에 달려 있다. (399)

그런 다른 생각과 기준이기에 타인을 대할 때도 행동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니라 그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그 기준 자체가 삐뚤어져 있어 남을 대할 때 배려나 인정과 같은 부분을 찾아 볼 수 없다. 처음에는 범블씨가 나올 때마다 짜증이 났다. 인간이 어떻게 이따구로 생겨 먹었는가? 꼭 그래야만 하는 건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딴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 등과 같은 욕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화살표를 돌려 나를 생각해보니, 나 또한 분명히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항상 옳다고 어떻게 자부할 수 있겠는가? 타산지석이라, 그를 보며 나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도 저자 특유의 블랙 코미디 곳곳에 숨어 있다. 종종 내가 이해를 못해서 비꼬는 건지 아닌지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도 있으리라. 그래서 당시의 시대상과 저자의 특징을 잘 알아야 좋다. 작품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테니.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조금은 그의 생각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중간 중간 삽화가 인상적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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