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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저/유수아 역
현대지성 | 2020년 01월

 

 

1. 


찰스 디킨스는 언제나 그 당시 사회 상황을 반영하여 비판과 풍자를 잘 버무려 이야기를 꾸립니다. 이 책 또한 그 당시의 빈민가의 풍경을 묘사하며, 만연한 문제적 상황을 그립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서는 그 당시 아이들이 겪고 있던 문제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사실 아동 인권은 1950년 중반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에 아이들은 그저 소모품 같은 역할이었죠. 

올리버 트위스트도 극빈원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올리버 트위스트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에 대한 결정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지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떠했을까요?

 


올리버 트위스트보다는 오히려 찰리나 미꾸라지 같은 인물들이 현실감이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선택할 것도 많이 없으며 할 수도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선택하게 될 것이며,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모색할 것이다. 그것이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렇기에 비록 그 당시에는 나쁜 짓만 하며 살았다 하더라도, 찰리처럼 후에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손을 털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내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나만의 신념을 확고히 지키면서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바로 대답할 수 있다. 물론 답은 아니. 그것이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고귀한 귀족 가문이 아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내가 살아 남기 위해 그게 무슨 일일지 몰라도 일단은 하지 않을까 싶다. 크게 위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끔찍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해자와 피해자들 사이에서 뭐가 맞고 틀렸는지를 구분할 수 없다. 그들이 저지르는 불법은 이미 불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장 내가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어쩌면 그렇기에 독보적인 올리버 트위스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환경과 입장, 거기에 자신들의 기질에 따라 어떻게든 변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2. 

-       이제 누렇게 변색된 낡은 무명옷을 입게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순간에 계급이 결정되어 낙인 찍혀 버렸다. (22)

-       주교에게서 비단 앞자락을말단 교구관에게 삼각모자와 레이스를 벗겨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한낱 인간이 남을 뿐이다때때로 위엄과 거룩함조차도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외투와 조끼에 달려 있다. (399)

 

말단 교구 관리인 범블씨는 한결같이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특히 극빈자들을 약한 이들을 비난하면서 함부러 대합니다. 심지어 상황이 바뀐 올리버를 보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바꾸기도 하지요. 약자에게 몹시도 강했던 이 사람을 보면서 욕이 절로 나오지 않았나요? 하지만 그는 그가 인생을 살면서 쌓아온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과 평가 자체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지요. 그러니 우리의  기준과 평가는 어떤가요? 범블씨를 무작정 욕할 수 있을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고 순수한가요? 자신의 기준과 평가들을 한 번 돌아봅시다.

 

 

모든 사람들이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다른 이들이나 상황을 판단한다. 처음 범블씨를 보면서 계속 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범블씨는 욕하기에 좋은 인물이다. 평면적인 인물로 그 당시에 인정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이러했을 거라 그려진다. 그렇기에 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저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입장에서 쉽게 말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죗값을 치뤄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나 또한 그 누군가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기준점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선하게, 혹은 최선을 다해서 산다고 생각했지만 틀린 점은 없었을까? 

  혹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점이 융통성 없이 너무 빡빡한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굳이 비난하지 않아도 되거나 문제로 삼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거나 하진 않았을까? 다시 한 번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님을, 우리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타인과 함께 어울리는 이 곳에서 서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추구하는 기준이 내가 가진 기준과 맞는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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