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인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고 하니, 바로 천자문! 부제가 바로 ‘인문학의 첫걸음 <천자문>을 읽는다’이다. 사실 이 책을 받으면서도 인문학을 다시 시작한다는 걸 보니 뭔가 기초부터 하나보다 하며 크게 목차를 훑어보지 않고 그저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다. 그 시작점이 천자문인가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천자문은 신세계였다.
저자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천자문을 배운다고 하지만, 난 배운 적이 없다. 학습 만화 같은 책으로 명심보감이나 채근담 같은 책들을 본 적은 있지만 천자문 자체를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몰랐다. 천자문에 이렇게 어마 무시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천자문은 그저 한자 천 개가 단순히 나열되어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쉬운 단어들부터 시작한다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충격이었다. 천자문이 단순 한자 나열이 아니라 이런 어마 무시한 내용들이 가득 가득한, 반드시 잘 훑고 지나가야 하는, 저자가 말하는 대로 인문학의 시작점이었다. 천자에 한 사람이 살면서 알아야 할 지식과 지혜가 이렇게나 담겨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고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걸 나열만 해놓고 아이들에게 무작정 외우게 시키는 것만큼 무식한 것도 없다. 그러니 천자문에 의미 있는 내용들이 들어가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며 그 의미를 파악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삶에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천자문은 여러 중국 고전들에서 따온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익숙한 <논어>, <맹자>부터 시작해 처음 들어보는 <효경> 같은 책들에서 왔다. 여기 언급된 책들 중에서 읽은 책이라고는 <논어> 밖에 없어서 생소하고 낯선 이야기들이 많아 어려웠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낯선 고유명사나 한자들로 이루어진 단어가 많아 어려웠다. 반대로 여기에 나온 내용들을 잘 숙지한다면 나중에 중국 고전을 직접 읽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다. 난 사실 그런 기대로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대략적인 설명을 통해 나중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 동안 율곡 이이가 생각났다. 천재라서 어릴 때부터 한자 끊어 읽기(?)를 참 잘했다던. 부록으로 첨부된 천자문만 쓰여진 책자를 보니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자를 의미상으로만 알아서 잘 끊어 읽는 게 참 대단하다. 저자가 임의로 끊어 내용상 연결하여 설명해주는 걸 보면서도 감탄이 나오는데, 그 어린 나이에 더 어려운 책도 그리 끊어냈다는 건. 와우..
그리고 학창 시절 한문 공부했던 흔적들도 떠올랐다. 사실 한자를 잘 알진 못해서 아는 한자들이 극히 드물지만 그 때 그나마 했던 것들이 영어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우리 나라 영어 문법은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문법 용어가 다 한자로 되어있다. 그래서 종종 문법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이 단어가 지칭하는 한자가 뭔지를 알면 더 쉽게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영어 문법도 영어로 공부하면 더 쉽지만 말이다. 어쨌든, 배워서 헛되는 건 없다는 걸 영어 문법 공부할 때 깨달았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우주와 천상계에서 인간계까지를 그린다. 그리고 하은주 시대와 그 이후의 문명 발전을 역사 순으로 다루고 있다. 누구나 아는 하늘 천 땅 지가 우주를 먼저 그려야 하기 때문에 나온 거라니! 그냥 쉽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단어라 제일 먼저 나온 줄 알았는데. 사실 이때부터 이미 충격이었다. 그리고 2부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닦도록 하는 부분을 언급하고, 3부에 넘어가면 중국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 마지막 4부는 자연과 그걸 즐길 줄 알아 행복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외 중국의 일상 생활과 도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각 부는 한자와 음가, 한자에 대한 풀이, 한자 설명 그리고 내용 풀이로 이어진다. 한자 설명은 저자가 연구하여 기록한 것이 기반이 되었고, 내용 풀이에서는 실제 사용되었던 인용책과 구절들이 나와 흥미롭게 보았다. 천자문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렇게 다 갖다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큰 맥락으로 다 잡아서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신기했다.
천자문을 읽으면서 비유 표현에 대한 설명이 있다.
- 천자문을 읽다 보면 비유를 사용한 문장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봉황과 흰 망아지는 태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나타내며, 드리운 옷자락과 팔짱을 낀 모습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리는 군주를 나타내고, 난초와 소나무는 청결하고 곧은 절개를 비유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89)
- 물은 또한 문장에서 여러 가지 비유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흐르는 물’은 주로 ‘세월의 덧없음’, ‘시간의 빠름’ 등을 의미하고, ‘맑은 물’은 성품이 정결하고 심성이 고아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였습니다. (89)
클리셰 같은 표현들이라도, 뭔가 잘 활용하면 있어 보일 것 같아서 기록해두었다. 지금까지도 쓰이는 표현들도 있지만 뭔가 멋있는 느낌이다. (사대주의 사상인가 이 시국에-_-)
한자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한자 시험도 많이 치던데, 무작정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면서 외울 수 있을 것 같아 유용할 것 같다. (마법 천자문 같은..?) 게다가 인생에 대한 지혜도 주지만 중국 문화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으니 추후 궁금하면 생각을 넓히기 위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리라. 아쉬운 건 이야기를 풀어 쓸 때 좀 더 재밌게 썼다면 좋았을 텐데. 같은 이야기라도 좀 더 흥미를 자극하는 방식이었다면 좋지 않을까 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