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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민음사 | 2011년 03월

 

 

1.     실제로 알베르 카뮈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 <페스트>를 썼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페스트는 그저 전염병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페스트에 대한 의미를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 뿐이죠.” (399)

여러분이 생각하는 페스트는 무엇입니까? 질병, 재난, 재앙, 전쟁, 혹은 인생, 무엇일까요?

책을 읽을 때는 페스트라는 질병, 읽기 전에 얻은 정보로는 2차세계대전 중이라 전쟁을 의미한다는 정도였다. 단지 구체적인 질병인 페스트나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더 포괄적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재앙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될 모든 재앙들로 인해 겪게 될 많은 문제가 상징적으로 페스트로 나타난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책이나 작품 해설을 보니 카뮈의 상징 단어 반항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페스트는 단지 우리를 억압하는 무언가가 아닌, ‘부조리라 설명한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에서 카뮈나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이 말하는 부조리는 세계와 그 안에서의 삶이 가진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       자신과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 보아도 그런 것 자체를 아예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카뮈는 단 하나의 의미조차찾지 못했다고 탄식합니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190)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 카뮈에겐 반항이었다.

-       투쟁하는 사람의 행동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증언 행위이기 때문이다. (433)

투쟁은 사람의 존엄을 위해 반드시 직결된 행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부조리에서 살아 있음을 알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행위가 바로 반항이었다.

  이런 부분들을 알고 나면 감탄한다. 멋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하지만 사실 내게 페스트는 마지막 노인의 말처럼 그저 인생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한 부분일 뿐 우리가 그저 경험해야 할 역경들일 뿐이다. 이런 인생의 굴곡들은 도처에 산재해있고, 당연히 피하거나 외면할 수만 있는 건 아니다. 이를 어떻게 알아보고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리라.

2.     혹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떤 인물과 가장 비슷할 것 같은가요? 그리고 자신의 이상향이 될 것 같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할 수 있다면 리유처럼 행동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성실히, 거기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물론 서술자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글을 쓰고 있었기에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길 바란다. 불평하고 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그러지 않는 건 인간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모습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아마 나라면 그 안에서 아마 페스트에 걸려 이미 죽어버린 일반 사람이 아닐까 ㅋㅋㅋ 너무 안타깝지만 고통스러워하며 아파하면서 리유와 타루에게 도움 받고 시체 1이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나마 그랑과 가깝지 않을까? 나서서 뭔가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생각도 못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할 때 작은 일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서 돕고자 할 것이다. 괴로워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을 하거나. 일 중독자니 아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편을 선택할 것 같다. 그랑처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3.     수많은 죽음을 만나게 되는 책입니다. 그 중 두 죽음에 대해 논하고 싶습니다.

-       리유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285)

-       지금 그의 친구를 에워싸고 있는 침묵으로 말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진하고 페스트에서 해방된 도시와 거리의 침묵과 너무나도 긴밀하게 일치하는 침묵이었기 때문에, 리유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결정적인 패배, 전쟁을 종식시키면서 평화 그 자체를 치유할 길 없는 고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패배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376-377)

혈청 실험자로 오통 판사의 어린 아들이 선택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그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페스트로부터 해방의 순간에 헌신적이었던 타루가 페스트로 죽고 맙니다. 이 두 가지 죽음에 대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아이의 죽음은 이 책의 절정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겨우 만든 혈청도 아직 듣지 않고, 그 와중에 그 고통을 아이가 온전히 느끼며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그 모습을많은 이들은 눈물 짓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스트라는 것이 재앙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짓을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은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파늘루 신부에게 큰 영향을 주는데, 정말 시급한 건 지금 당장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페스트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다. 고통 그 자체인 페스트.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타루의 죽음 또한 마음이 저린다. 보건대를 조직하고 리유를 도와주는 데 헌신했던 타루가 페스트에 지고 마는 상황. 게다가 뭔지 다 알기에 담담이 받아들이고 있는 그 모습이 더 마음 아프다. 여러 해설에서 타루가 페스트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시점에서 페스트로 죽은 것에 큰 의미를 둔다. 페스트라는 것은, 우리가 재앙이라고 여기는 것은 언제나 우리 옆에 있을 것이며, 언제든지 다시 창궐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필요하다 여겨지면, 혹은 자신이 나서야 할 틈이 보이면 언제든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그러니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됨을.

하지만 타루의 죽음은 타루의 삶에서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죽음이 이상적이라는 말은 맞지 않지만, 타루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윤리관에 따라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다.

-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고, 우리들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략)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평화가 아니라면 적어도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328)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소신대로 삶을 살았고 마감했다. 페스트를 막을 수 없고, 죽는 걸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떳떳하게 죽을 수 있게 살았고, 죽게 만들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 했다. 그 윤리관대로 살았으니 부디 행복한 사람임을, 죽음 뒤에 부디 평화를 찾았기를 바란다.

4.     역경을 겪고 나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습니다. 페스트가 지나간 그들은 뭘 봤고, 코로나를 겪고 나면 우리는 뭘 볼 수 있게 될까요?

-       우리들의 생활을 이루고 있던 감정, 더구나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 (97)

-       파늘루 신부 이 도시가 여러분과 재앙을 벽으로 둘러싸고 가두어 버린 그날부터, 여러분은 그네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새로운 눈으로 모든 존재와 사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야, 마침내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132)

우리는 어떤 가치를 알게 되고, 무엇을 볼 줄 알게 될까요?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사랑과 행복이다.

-       사실 이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고통스러운 투쟁은 바로 랑베르가 갈구해 마지않는 구체적인 행복사랑을 위한 것이다. (438)

장기화된 칩거는 우리에게 뭐가 중요한지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특히 나의 경우 아이와 24시간을 한달 넘게 복작 복작하고 있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이 아이임을, 우리 가족임을,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임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랑베르는 오랑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닌 오랑에 남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돕기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랑베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꼭 곁에 있는 것만이 아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해야 하는 일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게 아닐까? 페스트는 오랑 시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일임을 알았던 게 아닐까?

페스트든 코로나든 반드시 지나간다. 언제일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꼭 끝난다.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결국 행복과 건강과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면 또 그 가치를 깨닫게 만들어줄 시간을 만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면하는 진리를 놓치지 말고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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