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대학·중용

[도서] 대학·중용

증자,자사 저/김원중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고전을 놓지 않고는 있으니 언젠가는 [사서]도 보겠거니 막연히 생각만했다. [사서] <논어>를 읽은 적 있다. 어줍짢게 읽어야 하는 책이니 읽는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큰 코 아니, 작은 코 다쳤다. 고전은 함부로 도전하는 게 아니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한동안 동양 고전을 멀리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그 때 기억을 잊고 또 겁 없이 <대학>, <중용>도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신청했다. 후우.. <논어>만큼 힘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가장 어렵다는 <중용>은 역시 골머리 좀 썩긴 했다. 이제 <맹자>만 남았으니, 집에 있는 조만간 <맹자>도 만나봐야겠다. 그리고 다시 <대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       <대학>을 통해 학문의 규모를 정하고, <논어>에서는 근본을 배우며, <맹자>에서는 발현된 부분을 관철하고, <중용>에서는 옛사람의 미묘한 부분을 구하라. (33)

주희가 [사서] 읽는 순서를 <대학>-<논어>-<맹자>-<중용> 순으로 읽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된 건 처음이다. <중용>이 맨 마지막에 있어서 가장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그나마 <대학>은 이해라도 되지. 역시 차례대로 읽어야 하는 건가? [사서]는 여러 번 반복독 해야 하는 책들이니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게다가 <논어>를 읽을 때만큼 답답하거나 힘들지 않아서 예전보다는 나아져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 싶은 생각이

중간 중간 한자 단어가 어렵고, 그 맥락을 잡기가 어려워 계속 이런 저런 정보를 찾으며 읽었다. 그래서 흐름이 많이 끊기는 바람에 더 이해하는데 힘들었다. 동양 철학을 자주 접하고 익숙해지면 아마 해결 될 문제인 듯하여 시간과 공을 더 들여야겠다.

  보통 <대학><중용>이 묶여 있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짧아서 그런 모양이다. 둘 다 원래 한 권으로 나온 게 아니라 <예기>에 수록되어 있던 내용을 주희가 따로 독립시켰다. 그의 노력으로 [사서]라는 묶음으로 <논어><맹자>와 나란히 설 수 있게 되었다. 각각은 무슨 내용이길래 주희가 그렇게 열심히 [사서]로 묶어서 적극 장려했을까?

-       <중용>이 도덕적 보편성과 필연성을 이론적으로 제공한다면 <대학>은 도덕과 지성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놓은 책. (25)

<대학>은 도덕과 지성을 하나의 영역, 그러니 정말 큰 공부를 해야 하는 우리가 상아탑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대학교에서 배우는 깊은 학문의 요점을 드러내는 책처럼 보인다. 그리고 <중용>은 좀 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에 다가가는 부분이라 앞에 세 권을 이해하지 않으면, 혹은 동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책만 봤을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먼저 대학을 살펴보며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봤다.

-       사람으로 태어나 큰 공부를 하는 일을 세 가지 강령과 그에 따른 여덟 가지 조목을 중심으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등 공부의 목적과 그 기본 자세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에게 강력한 지침이 된다는 것이다. (33)

-       이치가 궁구하지 않으므로 그 앎이 다하지 않은 것이다. (중략)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과 부딪쳐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통해 더욱 그것을 끝까지 파고 듦으로써 지극한 곳에 도달할 것을 추구한다. (63)

강력한 지침이 된다니, 왜 주희가 [사서]중 처음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책을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읽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방향성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집착하듯이 읽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듯 하다. ‘앎에 다한다는 말이 좋았다. 읽고 알게 된다는 표현을 알에 다한다는, 닿는다는 것. 앎이 내 안에 없던 것이 생기는 게 아니라, 안에 있던 무언가에 도달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극한 곳에 도달하기. 진정한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할 문구다.

-       인간은 이해관계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기 때문에 <대학>의 문장에 이러한 이상적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인지하여 우리는 늘 이성과 현실을 융합하여 공부하고 습득해야 한다. (94)

  그렇다고 아는 것에서, 머릿속에서 끝나는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지까지 고민하는 기회가 된다. 책을 읽고 생각에서 그치는 것은 독서가 아니다. 유희를 위해서라면 이 전과는 다른 기분과 감정을 온전히 누려야 하고, 읽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느낀 점을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학>은 이 모든 것을 위한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고, 지속적으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중용>은 많은 사람들이 얻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극단적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의 중심을 지키며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힘 키우기. 나의 경우 종종 감정적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타인이나 환경에 몹시 휘둘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중심점이 있어 차분히 지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중용>이라는 책에 더 관심이 갔다.

-       <중용>에서 은 균형 잡힌 마음가짐이고, ‘은 진실하여 중도를 잃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여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 (110-111)

-       답답해 보일지라도 묵묵히 내면을 곱씹으며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이 길고 긴 인생의 호흡을 음미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일 수도 있기에 말이다. (117)

-       구증징 : 마음속, 즉 중심에서 영원하다는 것은 흔들림이 없다는 뜻으로, 똑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26 2, 235)

구증징. 중심에서 영원하다는, 흔들림이 없는 그 상태를 얻고 싶다. 책을 보니 더더욱 자주 접하면서 나의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 균형 잡힌 마음가짐을 잡아야 할 테니 <대학>에서 <논어>, <맹자>까지 읽으며 그 힘을 키우고, <중용>을 읽으며 중도를 잃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져야겠다. 편역자의 말대로 [사서]를 읽고 익히는 것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을 긴 호흡으로 보며 차분히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할 듯 하다. 똑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크으, 흔들림이 없는 사람. 현명함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현재 위치에서 자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만족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171)

-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변별하며, 독실하게 행한다. (2019, 213-214)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폭발하는 멋짐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 책은 딱 봐도 아, 고전책이다! 싶게 생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고전책임에도 불구하고(?) 몹시도 멋짐이라는 게 폭발한다. 갖고 다니면 내가 고전을 읽는 사람입니다’(?)를 보여주면서도 책이 몹시도 예쁘다. 크으, 그 와중에 띠지 뒷부분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       <대학>은 큰 공부의 방향을 정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지침을 담은 책, <중용>은 수양을 통해 균형 잡힌 마음으로 도에 이르는 방법을 담은 책으로 자리 잡으며 동양적 사유의 근간을 이루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 이런 저런 사유를 거닐기 좋아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특히 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민족이기에 더더욱 관심 있게 읽어야 한다. 그 심오한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겠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reviewers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