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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도서] 백남준

남정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내가 아는 백남준 선생님은 엄청 유명한, TV로 작품 활동하신 한국 사람 정도이다. 정말 부끄럽게도 그게 다였다. <다다익선>이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티비를 쌓아 만든 작품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그래도 대표 작품 하나 정도는 알고 있으니 다행일까? 이런 특별한 기회가 아니라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알게 되고, 궁금해할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이번 책이 얼마나 감사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책 표지에 부제로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스칸이라는 말을 보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스케일이 더 큰데 하며 놀랐다. 표지의 사진은 도대체 뭘까 궁금했다. ‘레이저 아트라니! 이 분은 정말 뭐 하는 분이지?!

-       칭기스칸과 그의 몽골군은 유럽을 휩쓸고 다니면서 수레바퀴 높이보다 작은 어린 아이를 제외하고는 점령지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워낙 잔인하게 도륙했기에 유럽인들은 노란 얼굴을 한 몽골군을 황색 재앙이라고 부르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여기에서 착안한 백남준은 자신을 유럽 점령에 나선 몽골군과 같은 테러리스트라며 황색 재앙을 자처했다. (80)

스스로를 칭기스칸이라고 자청했다니! 부제를 읽고 한껏 가졌던 물음표가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풀렸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 같지 않은, 동양 사람이지만 동양적이지 않은, 하지만 한 없이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사람. 그 놀라운 면모를 서양에서 한껏 드러낼 수 있었던 예술인. , 그는 예술의 칭기스칸이라 불릴 만 했다.

 

저자는 백남준이 머물렀던 4개국을 기준으로 나누어 이야기 한다. 태어나고 자란 한국, 한국전쟁으로 도피하면서 자리 잡게 된 일본, 쇤베르크에게 흠뻑 빠지고 공부한 뒤 자신의 예술을 더 완성하기 위해 갔던 독일, 그리고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한 미국. 각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작품 활동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이라고는 <다다익선> 일부분 찍은 사진이 본 게 다였는데, 이 책을 통해 여러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그 나라를 간다고 해도 그저 스쳐 지나갈지도 모를 배경들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한국에서의 자취를 따라가는 데 씁쓸함이 남았다.

-       그곳에서 누가 태어나고, 어떤 사연이 깃들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새 건물을 올리는 데에만 급급한 세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위대한 인물의 자취 하나 제대로 찾을 수 없는, 역사와 스토리라고는 모조리 증발해버린, 삭막하기 짝이 없는 무미건조한 이 땅의 도시들을 보고 있는지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30-32)

저자의 말대로 셰익스피어이나 베토벤과 같은 거장들은 그들이 살았던 곳을 잘 보존해서 아무것도 없는 그 도시에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더 홍보하고 그들의 위상을 올린다. 물론 백남준은 우리 나라에서 엄청 비싼 동네에 살았고 모든 걸 팔고 일본으로 건너갔었기에 남겨두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다만 백남준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이상한 사람들의 생가 근처에 살고 있는 입장이라, 부디 다른 정말 존경 받을 만한 이들의 거취도 흔적을 쫓을 수 있게 나라에서 잘 돌보았으면 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백남준의 작품의 의미는 통찰이다.

-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남겨진 통찰의 유산이다. 백남준은 1960-1970년대에 첨단 기술이 바꿀 미래 사회를 내다보았고, 이를 예술적 언어로 그려냈다. 그가 말한 첨단화된 미래 사회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다. (13)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제대로 활성화되기 전에 이미 미래의 예술을 했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을 활용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급변하는 시기에 시류에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앞서나가 그 미래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기도, 어떻게 변화하며, 변화를 하나의 예술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오히려 저런 작품을 생각해낸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남준은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은 독재 혹은 창작자 혼자만의 예술이라고 간주한다. 관람객들 저마다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즐김으로써 예술이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이 추구하는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140)

어쩌면 시류만 잘 읽었기에 가능했던 건 아닐 수도 있다. 백남준은 많은 작품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오로지 창작자 혼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창작자는 자신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주제를 만들어 던지고, 관람객들이 어떻게 그 주제를 받아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창작자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그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양성이 예술의 핵심이다. 획일화된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있지만, 지금 시대는 각각의 다양함이 필요하니 역시 그는 시류를 따랐으리라.

 

이리 생각하다 보니 연결하여 예술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 작가와 시대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예술 작품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 그리고 체험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작품에 담긴 참된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 작가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략) 현장에 직접 가서 백남준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그의 삶 속에 한 발짝씩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작업이었다. (15)

-       작품에 대한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자 특권이니,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수용자가 자신만의 프리즘을 통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54)

배경을 알아야 좀 더 그 작품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긴다. 이는 온전히 창작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지를 고민하는 입장이다. 이와 반대로 작품의 배경이나 상황보다는 오히려 온전히 작품을 통해서만 이야기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그 작품 하나에 여러가지를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작품만의 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맞다 아니다는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종종 작품만을 보고 어려워하다가 뒷 배경을 알고 나면 뭔가 정리 되기도 한다. 관객은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정도의 뒷배경이라면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백남준이라는 예술가의 인생과 시대 배경을 알게 되면서 그의 작품이 어떤 점과 연결될 수 있는지 보며 좀 더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질 수도, 나의 생활에 응용할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작품 활동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놀랐다. 행위 예술은 나에게 너무 낯선 분야이며 관심이 가는 분야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일들이 예술계와 자신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상상이 된다.

-       그는 실패를 겁내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의 말과 글 그리고 때로는 괴팍한 기행 등을 살펴볼 때 이러한 삶의 태도는 삼라만상의 무상함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204)

-       백남준은 수많은 인간이 추구해온, 영원이라는 가치에 집착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204)

-       나는 세상에 나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예술을 한 것이다. 왜 무엇을 남기려 하느냐. (백남준, 205)

이런 사상이 몹시 멋있다. 먼저 실패를 겁내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덤벼드는 용기. 그런 담대함.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이제껏 만들어 놓은 것들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테니. 역시 바꾸고자 하면 움직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을 보며 끊임없이 움직여 시도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자 했던 것에 감탄한다.

저자는 이를 동양 철학을 공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백남준은 일본에서 사상에서 크게 영향을 받기도 했고, 관련해서 여러 책을 읽기도 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흔히 가지는 가치와는 다르게 삼라만상의 무상함처럼, 영원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바람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그의 인생에서 보여주었다. 남기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영원한 것임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영원이라는 이름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태도였기에 그의 작품들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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