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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도서] 피츠제럴드

최민석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일고십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선정하면서 반드시 읽어야겠다 싶었다. 사실 피츠제럴드란 이름도 책을 사서 읽으면서 익숙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개츠비는 알아도 피츠제럴드는 모르는 무지랭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나오면서 자각하게 된 피츠제럴드. 그만큼 잘 모르는 인물이라 일고십 발제를 하기 전에 읽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내 수준에서 발제하는 게 모토라 소설만 읽고 발제한 게 몹시 아쉬웠다. 많은 걸 놓쳤다는 느낌. 역시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해서 봤던 <위대한 개츠비> 영화. 내가 아는 개츠비는 그게 다이고, 그 뒤로 한동안 모 연예인 때문에 종종 회자 되어 종종 떠올렸다. 문득 이렇게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회자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길지 않은 이 작품 속에서 얼마나 많은 걸 담아내길래, 다른 작품이 많지 않은데도 이렇게 사람들이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클래식 클라우드를 읽으면 언제나 만족하는데 이번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뭔가 유색 인종 한국인이 피츠제럴드를 찾은 여행기. 미국 안에서 인종 차별을 뚫고, 여러 우여 곡절을 겪으며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해내는 쾌감도 느끼고. 다른 편들보다 더 생생한 느낌이라 작가가 어느 지역에서 뭘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저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며 단순히 그 순간만 깨닫게 되는데, 이 편에서는 온전히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말 흥미진진! 특히 피츠제럴드의 자필로 수정된 초판본이라니. 그 사진을 볼 때는 그 순간 함께 있는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       이렇게 한 인생을 되짚어보면 적어도 그가 왜 그 길을 택했는지 주제넘지 않는 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주제넘지 않는 선이란, ‘그는 반드시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 그가 그 선택을 한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298)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우리가 그의 흔적들을 따라다니면서 주제 넘지 않는 선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며 글을 마무리 한다. 그 결론에 감탄했다. 그래,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렵다. 나 자신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우리가 그를 찾아 나선 건 완전히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그저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 보는 것 뿐. 저자의 이런 생각이 좋다.

-       변한 것은 종이뿐이었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시대에 빛바래지 않았다. (202)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만 보면서 눈 먼 사랑의 노예의 이야기라고만 여겼다. 여전히 술잔을 내밀며 인사하는 디카프리오의 모습과 다양한 색상의 셔츠를 날리면 밑에서 데이지가 빙글 빙글 돌면서 좋아하는 장면, 마지막에 거대한 수영장으로 총 맞고 뒤로 빠지는 장면만 기억 난다. 일단 위대한 개츠비를 보며 흥청망청하던 즐기는 장면들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그 당시의 파티 문화만이 아니었다.

-       피츠제럴드만이, 세상의 불편한 문제를 대담하게 문학적으로 대면했다. 그가 다룬 문학적 주제는 계급이다. 우리 모두가 계급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14)

-       인종을 초월한 계급 문제에 대해,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미래에도 존재할 계급성에 대해, 현대 사회의 변형된 계급성에 대해 언급한 작가는 피츠제럴드가 거의 유일하다. (16)

소설을 읽으니 계급이 보였다. 데이지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자신의 신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던 개츠비. 그리고 계급 상승을 위한 욕망으로 동부로 왔던 닉.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계급차이를 온전히 보여준다. 결국 데이지도 계급적 사치를 유지할 수 있는 곳에 머물길 바랐고, 그걸 알고 있었던 개츠비는 발버둥친 거다. 그런 계급 장벽을 몹시도 잘 알고 있었던 피츠제럴드는 온전히 작품 속에 녹여 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던 것이 의 의미다. 그저 수영장이 있구나, 비가 오는 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그 물이 어떤 의미를 지닐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피츠제럴드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상징한 ’, 즉 비만 죽은 개츠비를 맞이하기 위해 내린다. (42)

-       <위대한 개츠비>에는 이 물에 관한 은유가 흘러넘친다. 물을 빼놓고, 젖는다는 것의 의미를 빼놓고 이 소설을 제대로 읽기란 어렵다. (68)

-       개츠비에게 이란 어떤 의미인가. (중략) 물은 뛰어넘어야 할 것’, ‘헤엄쳐서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서는 능숙하게 헤엄칠 수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71)

-       내면적으로는 그가 아래에서 발버둥 치다 마침내 수면으로 떠올랐지만(요트를 탄 순간), 그 수면 위에서 영원히 떠 있게 될 순간은 바로 죽었을 때라는 것이다. 떠 있지만, 몸은 이미 죽어 있는 아이러니. 그토록 원하던 물 위에 떠 있는 삶이, 죽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허망하다. 피츠제럴드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애초부터 떠 있는 삶’,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72-73)

너무 짜릿하다. 몰랐던 것을, 그것도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짜릿함. 그래서 아마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은 하나의 장벽이 되어 개츠비에게 하나같이 거슬리는 장애물이었다. 심지어 전쟁 때문에 물 건너 해외에 가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물을 결국 건너지 못하고 죽음으로 갇히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물 위에 떠 있는, 부유하고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안타까운 운명을 말할 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놀라웠던 점은 데이지가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성 운전자에게 크게 위화감이 생기진 않는다. 그저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에 격분했고, 그 죄를 개츠비가 다 뒤집어 쓰는 것에 격분 했을 뿐이다.

-       연인과 남편, 심지어 운전기사에게도 운전대를 맡기지 않고, 직접 운전하는 여성이,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진숙, <롤리타는 없다>에서 요약 발췌 인용> (중략) 같은 해, 부가티의 운전대를 잡은 여성 화가의 자화상이 나왔고, 직접 운전대를 잡고 비극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여주인공과, 그로 인해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하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바로 <위대한 개츠비>가 나왔다. (286)

여성 운전자가 흔하지 않았다는 시대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1920년대인데,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성장하던 시기이니, 그들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운전대를 잡은 데이지는 혁명적일지도. 단순히 두 남자의 소유욕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길을 자신이 운전하겠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누가 대신 데려다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런 상황들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직접 운전하여, 진정한 독립적인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상징이라니.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피츠제럴드의 자전 소설이라는 점이다. 물론 소설가들이 100퍼센트 완전히 자신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자전적인 요소를 가득 넣어놨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       <위대한 개츠비>에는 성공하고픈 피츠제럴드의 욕망이 투영된 개츠비와, 성공한 인물들을 지켜보며 글을 썼던 피츠제럴드의 경험이 투영된 닉이 공존한다. 이들 모두 피츠제럴드인 셈이다. (239)

특히 피츠제럴드 자신은 개츠비이기도 하고 닉이기도 했다. 대박난 첫 작품 덕분에 그 비싼 호텔 생활을 하기도 하고, 각종 파티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개츠비를 그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런 생활을 지속적으로 영위하고 싶은 열망을 그린 닉이기도 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닉이기만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해주는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시대와 전체적인 사회를 읽고 나면, <위대한 개츠비>는 결코 단순한 소설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아메리칸 드림이 빚어낸 다분히 미국적인 욕망에 젖어, 사랑마저도 물질로 회복하고자 했던 한 인물의 실패담이다. 동시에 그 시대가 겪은 사회적 병폐 현상들(향락, 소비주의, 허영)을 병풍처럼 펼쳐놓고 진행되는 사회적 거울이다. (287)

 왜 이 책이 미국 소설 중 걸작으로 불리게 되는지를 분명히 알았다. 피츠제럴드의 자전 소설이며 1920년대의 모습을 정확히 그리며, 많은 이들의 욕망을 들추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츠제럴드는 작가였다. 중간에 아주 살짝 어리석은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를 작가로 남겨두기 위한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할리우드에서 그저 그런 글쟁이로 취급당하면서도 자신을 진정한 작가로 여기게 한 생생각 뿌리일 테다. 작가는 안다. 자기가 원고에 얼마나 충실하고, 얼마나 매달렸는지. 그리고 자신의 원고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미진한 점이 있다면, 더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면,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펜을 다시 잡고 단어와 문장을 고쳐나갈 것이라는 것을. 그 충동에 저항하고, 그 충동을 외면하는 것보다, 그 충동에 굴복하여 조금이라도 고치는 것이 훨씬 더 스스로 편하다는 것을. (208)

-       피츠제럴드는 글쓰기는 노동이라 했을 것이다. 나처럼 쉽게 포기하는 작가에게도 노동이니, 그에게 글쓰기는 영혼과 몸을 온전히 쏟아 붓는 노동이었을 것이다. (209)

천성이 작가였던 피츠제럴드. 살기 위해 글을 썼지만, 자신이 뼛속까지 진정한 작가임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피츠제럴드. 말년에 자신이 그 유명한 피츠제럴드임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자신의 책을 사서 선물해야만 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자신이 작가임을 전혀 놓지 않았던 그. 알코올 중독으로 일찍 운명을 달리 하지만 않았다면 <위대한 개츠비>가 서서히 명성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었을까? 피츠제럴드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소명은 다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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