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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서] 노자

최재목 역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노자가 쓴 책의 판본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도덕경><노자>라는 책이 어찌 다른지도 처음 알았다. 을유문화사 판본이 좋다는 소문만 듣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해뒀는데, 다른 판본들과 달리 고본인 초간본 <노자>를 풀어낸 책이었다. 더 정확히는 <곽점초묘죽간본>)여러 출판사의 책을 본 건 아니지만 고본을 풀어내 고전을 보는 맛을 살릴 수 있는 것 같아 일고십에 더 적절했던 것 같다. 물론 더 수월하게 풀어낸 타 출판사의 책들을 보고 다른 점들을 느낄 수도 있을테지만, 이 책으로 고전의 어려움, 한자 하나 하나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그 의미를 좀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혹은 <도덕경>)일반적으로 유통되는 판본(통행본)’으로 틀이 잡힌 뒤,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 작업이 가해져서 완비된 형태의 현재의 판본(현행본)이 이루어진 것이다. (34)

-       결국 초간본 <노자>는 공자의 선배였던 노담의 원본 <노자>를 개작한 것이라 보이고, 이 책은 늦어도 전국 초에는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고, 100여년 뒤 태사담이 이 노담의 <노자>를 근거로 당시 상황에 부합하는 학설을 첨가해서 개증하였다. (→1차 개작본> 아마 이것은 <덕도경>이라 할 수 있는 백서본 <노자> 성립전의 <노자>로 백서본 <노자>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45)

   노자와 도덕경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었고, 왜 같은 노자인데 책이 다른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초간본, 왕필본, 백서본 등이 정확히 어떤 의미이고 이해는 안 되지만, 다른 버전이라는 건 알았다. 아마 여러 권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노자. 막연히 무위자연을 노래하는 자연 속에 살아가는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려나 싶었다. 반전사상과 자연을 만끽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

-       인간도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온몸의 감각을 전적으로 가동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제 그런 능력들을 거의 잃어버렸다. 자연과 함께했던 감각의 기억, 자연과 하나 되던 듣지도 말할 수도 없는 감각의 언어, 즉 언어가 아닌 언어의 말이다. (중략) 그것은 스스로, 저절로 그러한, 자연이다. (22)

머리말에서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밖으로 보이는 부분,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외부의 상황과 물건에 집중해서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고 자꾸만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하거나, 되게 하고자 하는 상황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요점인 듯 하다. 특히 코로나가 이렇게 번지면서 세계 환경을 못살게 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고 훼손했고, 거슬렀기 때문에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던가.

-       천지인의 숨쉼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가 살아 있음의 환희이자, 교향악이며, 전생명의 교감이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천지인이 하나가 되어 숨쉬는 조화로운 원리는 도이며, 도는 바로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119)

-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은 만물들이 자신의 내재한 힘에 따라서 스스로 그러하게 생성, 변화, 완성, 소멸 되어 간다는 말이다. 이 만물의 자연을 잘 도와주는 것이 통치자의 역할이며, 작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실패할 뿐이라고 노자는 충고한다. (120)

-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으로 모든 사물과 그 호칭 개념, 가치판단 들이 모두 인간의 작위적 규정에 의해 생겨난 것을 말하고 나서, 인위를 버리고 사물의 자연에 맡겨두라는 말을 하고 있다. (중략) 만물에 대해 자기 방식으로 판단하지 마라!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한다. (중략) 인간세상의 모든 개념과 가치는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그 사이에는 결국 주관적 집착과 독단적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139)

노자는 심지어 학문도 무익하다고 한다. 학문이라는 작위적인 지식을 늘리는 것, 이름을 지어주며 부르는 인위적인 모든 행위들이 결국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평가하고, 판단하여 자연을 거스르게 된다고 한다. 굳이 안 먹어도 될 박쥐를 잡아 먹고, 굳이 안 해도 될 집회를 하고, 굳이 안 해도 될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 단 몇몇의 누구의 탓이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자연 그대로 두고 있는가? 저절로 완전한 자연에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플라스틱, 일회용품, 매연 등 단순히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만을 놓고 이야기 해선 안 된다. 노자의 사상을 너무 현 상황에 빗대어 살짝 벗어난 이야기 하고 있긴 하지만, 자꾸 그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

-       노자가 바라는 통치자는 성실하고 믿음을 갖춘 소양이 있어야 하고, 정부는 단지 백성을 위해서 일하며 서비스하는 기구이며, 정치권력이 조금도 백성들을 핍박하지 않는 것이다. 덕치주의, 법치주의, 엄한 형벌과 준엄한 법에 따라 백성들을 진압하는 것은 통치자의 진실함과 성실함이 부족한 것. 통치자의 진실과 성실이 부족하면 백성들에게서 자연히 불신하는행위가 생겨난다. 이처럼 통치자가 강압적, 고압적 정책을 쓰면 정치적 운명이 말로에 서게 된다. (279)

-       무력은 재앙을 가져오는 물건이라고 하여, 전쟁의 해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반전사상을 드러낸다. (중략) 무력을 숭상하고 미화하는 자들의 심리상태와 행태를 꼬집는다. (296)

어쨌든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는 통치자라면 그게 덕이든, 법이든 상관없이 백성들에서 불신이 생기고, 망하는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이런 작위성이 강화되면 결국 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모든 이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존중하면 무력을 쓸 일이 없을 터인데 탐욕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전쟁을 일으킨다고 강조한다. 책 곳곳에서 반전사상과 무력을 쓰는 일이 얼마나 해악이 많은지 구구절절 설명한다. 일단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누군가의 사리사욕이 문제가 아닐까? 현대에 일어나는 전쟁들도 그 수가 더러운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남의 몸 또한 소중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통치자는, 자신의 몸(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모두가 안심하고 천하의 중책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242)

내가 귀한 줄 알면 타인이 귀한 줄도 안다. 내가 귀한 것이 나의 잘남과 이기적인 면모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측면도 자기 몸에, 생명에 해를 끼칠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노자를 이야기하며 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가 가장 어려웠다. 쉬운 듯 하면서도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내가 아직 를 알거나 경험할 만큼이 아니라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       도를 체득했다는 말은 도를 내 몸에 얻어 도와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도를 실현, 구현하는 것이 덕이다. 덕은 도를 몸에 얻은 것으로, 도에 따라 마음이 곧게 나아가는 것이다. (111)

-       도는 미묘하고 심오하여서 알아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도를 체득한 사람도 그 내면의 움직임과 그것이 드러나는 행동이 무위자연에 합치된 것이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111)

-       도를 터득하지 못한 세간의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몸(생명)보다도 총애와 욕됨과 훼방과 칭찬에 대해서 지나치게 중시하여 마치 큰 환난이 있는 것처럼 한다. (242)

노자는 도는 미묘하고 심오하여 알아낼 수 없다고 한다. 그 말은 자신도 표현하기에 힘들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풀어놓은 부분들을 읽으며 우리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하지만 한 가지 큰 기준은 있다. 도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귀한 줄 모르고 총애나 욕망, 타인의 칭찬이나 괴롭힘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 대부분이 어쩌면 정말 말 그대로 도를 닦아야하는 게 아닐까 싶은 대목이다. 많은 이들이 바라는 측면이기도 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듣는 것에 관한 이야기.

-       중국 한자의 자도 기본적으로 일반인들보다 특별히 잘 듣는, 즉 귀가 발달한 자를 말한다. (중략) ‘도를 듣는 것은 육신의 삶을 넘어서 있는 것 ? 부편적인 것 ? 영원한 것과 통하는 방법이다. (중략) 공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말귀가 어두우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 (중략)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물 존재를 알아간다. (중략) 우파니샤드란 좀 더 가까이 내려앉다제자가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스승 가까이 앉는다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받는 일종의 비밀스럽고 신비한 가르침듣는것이다. (246)

인간관계에서,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청 아니겠는가? 경청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생각을 주고받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자신의 세상도 넓힐 수 있다 생각한다. 예전에는 막연히 그래,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지 라고 생각했다면 점점 더 깊은 의미로 느껴진다. 듣는 다는 것은 단순히 그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의 기반이 되는 생각과 그 사람만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것과 같다. 동서양의 철학에서 모두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난 얼마나 듣고 있는가? 하는 말에 비해 잘 듣고 있는 게 확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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