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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도서]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출간 소식을 듣고 <기억>이 나온지 1년도 안 되서 벌써 신간을! 하고 놀랐는데 2015년 작품이었다. 책을 받고는 두께에 놀랐다. 왠일로 이렇게 얇은?! 책을 펴서 제일 먼저 몇 쇄인지 확인하는 내 버릇으로 또 놀랐다. ? 7?! 역시 식지 않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기이다.

  <기억>에서는 간만에 안 날아다니고 지하로 내려가서 낯설다 싶었는데 저자의 원래 특징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날아 가는 장면은 안 나왔지만 어쨌든 천상계의 이야기. <타나타노트>에서 나오는 과정 중에 한 부분을 세밀히 펼쳐놓은 것 같다는 옮긴이의 말에 적극 동의.

  희곡 형식의 글이다. 하지만 소설만큼 잘 읽히게 쓰여져 있고 내용도 의미심장했다. 먼저 주인공 피숑은 판사이다. 이야기는 피숑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내용에서 놀랐다. 진짜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이런단 말인가? 옮긴이의 말을 보니 현재 프랑스에서의 의사들의 근무 시간이 35시간으로 규제되어 있지만 맞추지 못할 만큼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 사회 문제를 짚는 걸 보고 더더욱 희곡이기에 세태 풍자로만 그려진 것이길 바랐다. 어쨌든 피숑은 결국 죽고 만다. 영혼으로 천상(?)에서 깨어나 계속 다시 망가진 육신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심판을 받는다.

  인생이란, 삶이란 무엇일까? 저자의 책 전체에서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 책의 주요 질문이기도 하다. 삶은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바는 무엇인가? 출입구로 들어왔다가 출입구로 나가는 것을 인생으로 표현한 건 무척 삭막하다.

-       가브리엘 :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 카롤린 :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예요. (54)

-       카롤린 : 당신한테는 이제 아무 쓸모가 없어요.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 같은 건 없어요. (94)

하지만 그건 저자의 생각이 아니다. 존재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고, 똑같아 보여도 아주 미세한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 하나 하나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리라. 우리의 삶은 다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우리가 달라진다.

  그런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슬픈 문장.

-       베르트랑 :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보다 불행을 줄이려고 애쓰죠. (142)

불행을 피하려고 살고 있는 인간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 불행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건 아닐까?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지금 당장 힘들지 않기 위해서, 혹시 모를 불행을 예방하기에 급급해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적지는 행복인데, 불행만 없애면 행복할 줄 아는 걸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느낌. 불행을 피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길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내가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읽고 쓰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살짝 드러낸다. 검사 측인 베르트랑의 논리가 납득이 되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 잡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어쩌면 속세에 물들어 있어서 그런가?

-       베르트랑 :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128)

-       베르트랑 :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그걸 여기서는 아주 좋지 않게 보죠. (중략)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132-133)

한 영혼에 대해 생각할 때 하나의 생만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권리와 의무를 고려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불변의 영혼은 없다고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구성하는 이 생과 생은 어떤 관점에서 성숙해지는 지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속세에 물들어 불행을 피하기 위해 순간 순간의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카르마라는 운명에 따라야 한다. 우리가 잘 산다는 건 어쩌면 본연의 모습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까? 나에게는 어떤 운명이 있을까? 그리고 그 운명대로 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잘못이자 죄악이 되는 걸까? 그럴 거면 자유의지는 왜 있는 거지? 이래 저래 내용상 혼돈이 많았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놀란 부분이 바로 부모의 모습과 육아 방식의 대물림이다.

-       카롤린 :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기 전에 자기 부모를 선택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정말로 원망 할 수는 없어요. (177)

-       아나톨 : 출발할 때 우리에게 카르마 25퍼센트, 유전 25퍼센트, 자유 의지 50퍼센트가 주어져요. / 베르트랑 : 그런데 자유 의지를 가지고 그 각 요소의 비중을 늘릴지 줄일지 결정하게 되는 거죠. (206)

아무리 싫어도 부모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그 비율을 25%로 설정했지만, 어릴수록 그 영향력은 엄청나기에 거의 80% 이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이야기 한다. 누구나 태어나기 전에 부모를 선택한다고. 그저 소설 속 한 구절이지만 실제 부모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좋은 양육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주 좋겠지만, 사소한 흠 하나 없는 부모는 없다. 그렇기에 원망하고, 미워하고, 속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는 편이 낫다.

 이번 생에서 난 뭘 배우고 뭘 공부하고 싶어서 현재의 부모를 택했는가?’

내가 중요시 여기는 내용을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이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나는 나의 부모님 밑에서 뭘 배울 수 있는가? 자유 의지를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아쉬운 건 마지막 부분. 뜬금없이 피숑은 가브리엘에게 추파를 던진다. 심지어 끌고 가서 뭐할라고?!! 그건 범죄 아닌가? 읽으며 많이 불편했다. 저런 영혼이 재판을 맡아도 되나 싶은.. 그리고 갑자기 가브리엘이 환생하다니. 이 무슨 맥락 없는.. 개연성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뒷 쪽 몇 장만에 급하게 그것도 이상하게 마무리 되는 것 같아서 몹시찝찝하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환생해버리고, 급 판사가 될 수 있는 피숑.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게 된다고? 극적 요소를 과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아쉽다 아쉬워.

저자가 언제나 관점을 열어두는 절대자에 관한 이야기. 천사들이고, 인간의 영혼을 재판하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 위에 무언가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판사인 가브리엘은 무언가가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절대자는 존재할 수 밖에 없는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여러 가지 측면 중 역시 이 부분이 가장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부분 아닐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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