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데리고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코로나 블루스라도 생긴 듯 자꾸 짜증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52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이에게 “야!”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더 심해지면 아이를 때리기라도 할까봐 무서웠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육아서를 너무 안 읽은 듯 하여 부랴 부랴 꺼냈다. 주변에서 극찬하는 이들이 많았고, 나 또한 ‘기질육아’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저자인 그로잉맘은 기질에 따라 육아를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에 이 책에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반전 넘치게 이 책에는 기질에 관해서는 아주 일부분만 나온다.)
대략 180권 정도 육아서를 읽고 글을 썼다. 아마 글을 안 쓴 책까지 합친다면 대략 200권. 육아서 읽어도 의미 없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무척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물론 이 정도 읽고 나니 왠만한 육아서가 눈에 차지도 않고(?), 도움 받는 책들이 적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내가 잘 아는 내용과 모르는 내용이 거의 반반 섞여 있다. 배울 점도 있고, 알던 내용을 다시 정리해주니 상기 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 육아서에서 이렇게 하라고 했지?! 아, 이 때는 이렇게 하면 되는 구나!’를 연발하며 읽었다.
게다가 육아서를 읽으면 괴롭다는 사람들이 많다. 책에 나오는 대로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육아서 읽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나는 반대로 느낀다. 그나마 내가 책을 읽어서 이 정도라도 하고 있구나.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다 육아서를 열심히 읽어서 그렇구나 하며 감탄한다. 언제나 책을 읽고 특정 상황에 쓰는 말투 하나라도 바꾸려는 실천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그래서 육아서를 읽으면 언제나 50점은 맞는다. 60점이면 더 좋고, 90점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목표치가 높지 않으므로 당장 읽은 책의 내용에서 반 정도만 하고 있어도 나 자신에게 이미 차고 넘친다고 칭찬해준다. 그러지 않으면 육아를 이어갈 자신이 없을 테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오, 이건 잘 하고 있었구나, 아 이 부분이 조금 아쉽네’하며 구분해준다. 채찍과 당근을 스스로 주는 상황. 잘하고 있으면 칭찬으로 여기고, 잘못 했던 부분에서는 좋은 조언을 구했다고 여긴다.
육아와 심리학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육아서를 읽으면서 점점 더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의 성장과정이 눈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깊이 알고자 한다면 심리학을 필수로 공부하게 된다.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육아서를 왠만큼 읽으면 알게 되는 부분들도 많다. 이 책은 육아와 심리학을 핵심만 간단히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흡사 육아+심리학의 입문서 느낌. 책이 두껍긴 하지만 페이지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글자가 빼곡한 것도 아니며 귀여운 그림도 잔뜩 있어 읽기에 무척 수월하다. 그럼에도 내용은 한 장 한 장 흡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육아 관련 심리 이론은 익숙하지만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고, 실제 상황에 관해서는 이제껏 본 육아서 중에 가장 당장의 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 무척 유용했다. 몇 몇 부분은 사진 찍어 신랑에게도 읽게 했다.
먼저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 아이의 현재 마음 속 상태를 부모가 ‘이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에 대한 부모의 감정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변화돼요. (9)
- 부모 스스로 아이를 해석하는 도구를 갖고 수많은 정보를 구분하는 힘이 있으면 아이를 이해하고 키우는 데 매우 큰 자원이 됩니다. 아이를 이해하게 되니 불필요한 감정 소모, 갈등도 줄지요. 또한 나의 육아관이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으니 훨씬 안정감을 가질 수 있어요. (36)
물론 심리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진 않지만, 아이에 관한 여러 이론이 있고, 이 이론들을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다면 유용할 것이라고 part 1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 한다. 실제로 심리학도 여러 과정을 거쳐서 발달하고 있기에 어떤 상황에서 보는 이론이냐에 따라 당장 아이를 대하는 방식과 행동에 차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 비교를 저자가 아주 잘 해주어서 부모들이 읽으며 이해하기에 수월했으리라. 육아서를 읽고도 책 대로 안 되서 속상한 이들이 참 많은데, 그 이유를 명확히 짚어주는 부분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아이를 볼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이제껏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 대책이 효용 없는 이유를 찾게 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싶은 부분은 ‘발달’이다. 아이는 머리카락 한 올에서부터 발톱과 발꿈치까지 어디 한 군데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 중이다. 주목할 만한 거나, 갑자기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혹은 안 보이는 곳에서 발달하고 있다.
- 아이는 당연히 미숙하고, 지금 순간에도 계속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해요. (중략) 발달은 수정체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전 생애 모든 과정에서 일어나는 거니까요. (중략) 대부분의 발달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연속적인 과정이라고 봐야 해요. (45)
- 부모인 우리도 지금 이 순간 계속 자라는 중이에요. 그러니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라는 역할을 막 시작한 우리도 부족하고 미숙할 수 있는 거죠. (45)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 바로 이 발달이다. 매 순간 함께 부대끼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그 사실을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신체가 아니더라도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사고 측면에서도 발달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가 성장하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발달하고 있음을 명심하는 것은 육아에 큰 차이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은 우리 아이가 무엇이 발달하고 있기에 겪고 있는 걸까?’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조금은 너그러워 질 수 있으리라.
나는 ‘엄마 나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이런 단어를 쓸 수 밖에 없는 근거가 이 책에서도 제시된다. 부모가 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아이와 함께 발달한다. 이전에는 그저 한 인간, 객체로서 존재하며 존재 자체의 발달이었다면, 부모가 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객체가 추가되어 다른 각도로 발달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미숙하고 실수하고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발달하고 있다는 걸 염두해야 한다. 부모만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아이도 부모를 키우고 있다. 이를 명심해야 서로 상호작용하며 올바른 성장으로 이끈다.
상호작용의 기반은 당연히 애착이다. 애착이 생기기 위해 상호작용을 잘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 애착이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 애착이 중요한 이유 ? 내적작동모델 :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이후 다른 사람들과도 두터운 신뢰로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데 유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긍정적인 자아 모델을 갖게 됩니다. 반면 애착이 불안정하면,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불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가치가 없어, 다들 나를 싫어해’라는 부정적인 모델을 가질 수 있어요. (164)
육아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이라면 이 ‘애착’에 대해 정말 ‘미친듯이’ 신경 쓸 것이다. 조금만 아이가 다르게 느껴져도, 애착이 문제인가 싶어 돌 전에 자신이 잘못 했던 일들만 떠올린다. 하지만 애착에 대해서 그렇게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애착은 당장의 상황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인격체를 결정하는 큰 요소이다. 그래서 막연히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연구해서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애착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돌 전 1년이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후라도 저자의 말대로 노력과 시간이 더 걸릴 뿐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아이가 자신을 사랑 받는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부모의 사랑에 흠뻑 젖게 해주자.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았던 부분은 아이가 갑자기 어린이집을 가지 않으려고 할 때, 무조건 부모 탓을 하는 상황과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너무 찰떡 같은 상황이라 큰 도움이 되었다.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이렇게 운명적인 책이 있다. 내게 필요한 걸 알려주려고 나타난 귀인 같은 책들.
육아서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육아관이다.
- 육아에 있어서도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해요. 즉 자신만의 육아관을 똑바로 세워야 선택의 순간마다 흔들리지 않고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24)
- ‘나는 부모로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기대하는지, 아이의 성장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27)
좋은 질문들을 던져준다. 엄마인 나도, 아이도, 아빠도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떠해야 하는가? 제대로 된 기준이 없으면 매 순간 흔들리고 결정을 하고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 영향으로 당연히 제대로 된 결정을 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중구난방인 이야기들에 더 괴롭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를 연구하고 아이를 연구해 그것들을 잘 조합해 기둥을 세워야 한다. 흔들리지 않을 아주 듬직한 기둥을 말이다.
이 때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단연코 최고의 부모, 혹은 완벽한 부모가 되고자 하는 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 위니콧은 양육자에게 느낀 이 실망감으로 인해 아이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지하기 시작한다고 보았어요. 적절하게 실망을 주는 엄마가 오히려 아이를 성장시키는 셈이지요.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의존기에서 상대적 의존기 그리고 독립에 이르는 과정이에요. (315) /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317)
내가 참 좋아하는 good enough mother라는 단어. 충분히 좋은 엄마이면 된다. 완벽한 엄마는 아이를 답답하고 숨막히게 할 수 있다. 적당히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자. 어차피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마귀를 떠올리게 하는 엄마가 아닌 아이에게 충분히 좋은, 우리 아이가 적당히 의지하고 있다가 완전히 독립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그런 엄마가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