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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도서] 루터

이길용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만족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이번에도 역시 감탄하며 읽었다. 루터라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인물을 이리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다니.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 크게 관심도 없고, 이름을 자주 들었어도 누구인지 헷갈렸던 인물이었다. 그런 이를 이렇게 한 큐에 정리해주고 관심 갖게 해준 책이다. 무척 쉽게 쓰여진 입문서. 클래식 클라우드는 언제나 그렇듯 그 인물에 대해서 깊으면서도 흥미롭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입문서다. 글을 참 쉽게 쓰신다. 루터 책을 쓰셔서 그런가 루터가 지향하신 바, 아녀자와 아이 등 모두가 잘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쓰는 걸 참 잘 수행하시는 듯 하다.

 

루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이야기 하겠지만, 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점은 한 개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알아야만 한다는 점이다.

  • 지금의 우리가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려면 ‘루터’라는 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그가 어떤 시대, 어떤 문화,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런 일을 했는지를 반복적으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은 역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235)

루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어떠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었는지. 저자의 책을 쉽게 느꼈던 건 아마 당연히 루터 책을 읽는다면 이런 건 알겠지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전혀 없이, 세심하게 풀어서 하나로 연결되게 써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교라는 부분이 애초에 그 분야만 선 그어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더더욱 역사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게다가 서양사에서는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인지를 알기에 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자잘한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더 재밌다.

 

  이 책을 읽고 루터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말 온 우주가 도왔던 사람이구나 싶었다. 무엇 하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달까. 물론 그가 엄청난 노력을 했고,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 루터는 바로 그 ‘때’를 제대로 타고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 교수 신분에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능력을 통해 성서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는 점 등이 루터의 발언에 힘이 실리게 했다. 마침 독일 지역에 퍼지기 시작한 활자 인쇄술은 그가 펼친 개혁 운동에 실질적 날개를 달아 주었다. 아울러 백년전쟁, 장미전쟁 같은 여러 전쟁과 페스트의 대유행, 가톨릭교회의 분열과 인문주의의 득세 등이 루터의 지원군이 되었다. (232)

어른이 되어서까지 떨치기 쉽지 않았던 불안함, 그 불안감을 조성했던 사회상은 루터가 신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루터라는 인물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잘 이용하려 한 정치적인 상황은 교회와 황제의 위협에서 지켜주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전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인쇄술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소통구가 되어 주었다. 수녀였기에 더 루터의 말을 절감하고 함께 하기로 했던 현모양처(내가 칭하고 싶은 표현이지만) 카트리나, 본격적으로 루터에게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든 면벌부까지. 절묘하게 모든 게 맞아 떨어져서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루터. 영웅은 난세가 만든다고, 이 책을 읽으며 루터는 정말 난세가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 루터의 종교개혁을 추동한 또 다른 힘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다. 이것이야말로 루터의 개혁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19)
  •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보이는 루터의 종교적 불안감의 연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가 남긴 여러 글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종교적 구원을 갈구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죽음이 무서워 떨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하라 수 있는데, 그 모든 두려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중략) 당시 유럽인은 전쟁과 페스트, 사회적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32)

 

  종교가 없는 나는 (외국 사람들이 몹시 신기하게 여기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흔한) 종교개혁이든, 루터의 이야기든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만 보인다.

  • 종교개혁의 모토. 루터가 그토록 힘주어 외쳤던 ‘오직 성서(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의 정신이 바로 이 한 문장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루터는 신앙을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 보았다. 이때 인간은 집단이 아닌 ‘단독다’다. / 루터는 이른바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나 직제 같은,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적 존재’가 필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12)
  • 결국 루터가 갈구한 구원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것이었다. 전통적 신앙 방식이 주는 편안한 형식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양심의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신과 담판을 지어야 했다. (중략) 그리고 그는 매우 극적인 몇몇 장면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희구를 위해 (그의 가문으로 대표되는) 집단의 족쇄에서 벗어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루터(자유인)’이지 가족의 일원으로 생활에 구속되는 ‘루더(사냥꾼)’가 아니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중세 말기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는 ‘근세적 개인주의’를 부르고 있었고, 루터는 그 부름에 ‘개인’으로 반응했다. (52)

오늘날 내가 아는 개신교(라는 용어도 쉽게 쓰면 안 될 수도 있지만)의 문을 만든 분이라고 해야 할까. 종교적인 부분은 워낙 조심스러워서 잘 모르고 함부로 이야기 하기가 무섭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특히 판단하는 존재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직접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 보았다. 이 편이 종교를 믿지 않아도 훨씬 더 매력적이다. 폐단이 있단,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교회보다는 이런 주장이 훨씬 더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 근거를 자신들도 성스럽게 여기는 성서에서 찾고 있으니 분명 더 큰 의미로 다가왔으리라.

  • 루터에게 성서란 전혀 어렵지 않으며 신의 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책일 뿐이다. 만약 본문이 난해하여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부분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제대로 읽어 낼 준비와 역량이 갖추지 못해서일 뿐이다. 좀 더 노력하여 기록된 문자와 그것의 문법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성서의 메시지는 분명히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 루터는 확신했다. (117)

아는 사람이 볼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루터는 볼 수 있었기에 성서의 위대함을 알았고, 성서를 볼 수 있었기에 진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만큼 공부했기에 또 가능한 일이었다. 원한다면, 얻기를 원한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종교개혁으로 이끄는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300여 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고 문화적 환경과 기반도 다르기는 하지만 루터와 주희는 많은 점에서 닮았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식의 확장을 역시 독서 운동을 통해 이어 갔으며, 초기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공통적으로 외쳤고, 결국 그것을 통해 당시 유럽과 중국에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책 읽기가 가져온 혁명. (중략) 이렇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쓰는’이가 세상을 바꾼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달리 표현해 독서 혁명이라 할 수 있다. (149)

저자는 동양의 주희의 이야기를 가져와 그들이 보여 주었던 책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실 갑자기 주희…? 라는 생각에 조금 안 어울린다 싶기는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책을 읽었기에 가능했던 두 사람. 위대한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어떤 영향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두 예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간을 바꾸었고, 사회를 바꾸었다. 가장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의 사상 자체를 바꿨다는 점이다. 특히 루터는 언어를 발전시킨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 독일어 성서, 독일어 회중 찬송, 독일어 설교, 독일어 성례전 등 ‘독일다운’ 많은 것들이 루터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략) 이 같은 루터의 작업은 그때까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던 독일어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와 문자화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구심 역할을 제대로 해내도록 했다. (16)
  • 아녀자나 아이, 시장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성서를 번역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역사를 바꾸는 초석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이전에 나와 있던 18종의 성서 번역본과 구분 짓게 하는 것이다. (181)

  언어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최대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특히 ‘아녀자나 아이, 시장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성서를 번역했다는 그 마음이 중요한 듯 하다. 신과 개인이 직접 만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여겼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건 올바른 수순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시스템이 아니라 직접 성스러운 말씀을 읽고 직접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성서 번역이 제대로 먹혔던 게 아닐까? 게다가 독일어라는 언어 자체를 발전시킨 역할까지 할 수 있었다니.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체감했다. 특히 유럽은 워낙 땅따먹기 전쟁도 많고 하니 뚜렷한 구분이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한 언어를 쓰는 민족이 뭉치는 기반이 되어 주었으리라.

 

  몹시 흥미롭게 읽고, 기분 좋게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에필로그가 충격적이었다.

  • 그는 여전히 중세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그가 신앙적으로는 주체적 개인을 찾고 또한 개혁의 기치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와 계급에 대한 그의 이해는 여전히 중세인에 머물러 있었다. 압제당하는 계급의 고통보다는 그들의 분노로 흔들리는 사회의 안정이 그에게는 더 중한 일이었다. (234)

본문에서 중간 중간 루터가 한 일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루터가 지니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마냥 찬양하는 글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더 궁금하고 알고 싶다면 평전을 찾아 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완벽한 입문서로 느껴졌다. 모든 측면에서 긍정적인 사람이나 사건은 있을 수 없다. 놓치지 않고 짧게나마 에필로그에서 짚어 준 점이 호기심을 확 불러 일으켰다. 아마 이 에필로그가 아니었다면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책을 덮고 쉽사리 잊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루터 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무척 커져 관련해서 더 찾아보고 싶어졌다. 역시 이번 책도 만족인 클클시리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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