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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화는 내리고, 아이의 자존감은 올리고

[도서] 엄마의 화는 내리고, 아이의 자존감은 올리고

이자벨 피이오자 저/김은혜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스크롤 주의 워드 파일로 5페이지, 띄워쓰기 미포함 1770자. 육아서 왜 안, 못쓰고 있지…)

육아서라고 할 때 ‘아’의 한자를 아이 아 ‘兒’를 쓰지만 종종 나 아 한자‘我’를 쓰는 게 아닐까 싶은 책들을 만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알려주는 비법을 알려주마, 하는 육아서가 아니라 육아를 잘 하고 싶으면 나 자신을 일단 먼저 키워라, 전하는 책이 있다. 나는 자꾸 이런 책에 손이 간다. 혹시 이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저건요? 혹시 이렇게도 생각해봤어요? 초보엄마인 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대인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여기는 나라서 더더욱 이런 책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서 드나들었지만, 우리 아이는 들어는 와도 나갈 수는 없다. 아무리 타인과 관계를 잘못하고 있어도, 어떻게 해서든 우리 아이와 잘 지내야 하고, 엄마로서의 책임도 다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도 좋지만, 생각 자체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이런 책도 좋다.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으면 좋고 그 안에서도 마음이 동하는 문장들을 건지면 더 좋고.

 

  프랑스에서 꽤나 유명한 저자의 다양한 책들이 한국에서 번역되었다. 누가 지은 제목인지, 참 혹하게 잘 지은 듯 하다. 많은 엄마들이 자꾸 아이에게 화를 내서 걱정하고, 아이의 자존감은 부모들에게 가장 큰 화두니까. 육아서 핵심 키워드가 다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꼭 그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좀 더 큰 범위를 보고 있으며, 오히려 부모의 마음 공부에 관한 내용이 더 큰 것 같다. 물론 화를 잘 다루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아이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데 도움이 될 건 분명하다. 하지만 제목만 보면 흡사 엄마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의 마법 같이 해결 가능한 명령어가 탑재되어 있을 듯 하지만, 생각보다 심오하다.

책 전체로 보면 부모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심리 전문가이기에 부모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들을 찾아보게 하고,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갖고 있었지만 몰랐던 부분들을 살피게 만든다. 잘못된 양육 태도 대물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에게 혹여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걸 아이에게 주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피고 어떻게 애쓰면 되는지 설명한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고, 5장부터는 질문 세례다. 질문들을 통해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제나 질문은 환영이다.

 

초반에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한다.

  • 부모로서 잘못했을 때 자신에 대해 관대할 수도 있고,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잘못된 행동에 대해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자신의 인격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대함보다는 자기 존중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이 책을 읽는 동안 부모로서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될 것이고, 애정 어린 눈으로 현실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23)

저자가 책을 쓰는 목적은 자기 존중 하도록 돕는 것이고, 그 존중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책 전체에서 돌아봐야 하는 사건, 그래서 어떻게 풀어갈지를 고민하여 해야 할 일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던져 생각하게 한다. 육아서를 읽으며 많은 부모들이 마음이 불편해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책에서 이야기 하는 대로 난 못해줬고,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 때문이라 한다. 나도 종종 말하지만, 현실 육아는 시궁창이다. 엉망진창. 그래서 저자도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 같다. 그런 죄책감이 아니라 자신을 관대하게 대해 정신승리를 하라는 게 아니라, 나의 면모를 살펴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 스스로를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가 잘못해서 화가 난다. 이 말은 아이가 하는 행동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만큼 통제할 수 없어서 화가 날지도 모른다. 이 때 나를 살피는 것이 중요함을 책 전체에서 다룬다.

  • 아이들이 지독히도 말을 안 듣거나 한심한 행동을 할 때, 혹은 아이들의 욕구와 감정이 날것으로 드러날 때 부모인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20)

이는 생각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왜 나는 유독 한 가지 분야에서 화가 날까?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내 아이가 하는 행동들 중 이 부분만이 유독 거슬리는 게 있다. 이는 사람이 프로그래밍 되는 과정에 따라 개개인의 특징적인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더 무게를 두는 부분에 있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항목을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한다.

난 먹는 걸로 유독 아이에게 제재를 많이 가하는 편이다. 이것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에 대한 원인 또한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유달리 먹는 것에 많이 신경 쓰고 (그렇다고 밥을 잘 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재가 많아 아이와의 투닥거림에 상당 부분이 먹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걸.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는 아이를 대함에 있어 천지차이다. 상황 개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인내심을 시험 받는 일이었다. (19)

알고 나면 그 때부터 인내심을 시험 받는다. 내 인생에서 나만 신경 쓰면 되던 내가 온전히 타인의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의 생존만 생각하던 시기가 지나고, 아이의 생존과 번영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내심이 아닐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전혀 알 수 없는 이 다른 개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 인내심으로 정해지니까. 내가 그냥 싫은건지, 아니면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건지, 아니면 책에 따르면 과거의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내가 이런 제재를 가한다는 걸 모르거나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엄마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그 때 그 때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이 아닐까?

 

내가 무척 공감했던 부분은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 이런 책들을 보면 엄마의 육아 스트레스는 현대 사회에서 만국 공통인 모양이다. 프랑스 이야기인데도 한국 엄마들의 상황과 거의 동일한 게 많아 신기하다.

  • 엄마가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 같은 일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가 많다 / 아이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여서 엄마가 계획한 대로 하루 일정이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 무슨 일이든 보상이 따르게 마련인데, 엄마의 일은 그렇지가 않다 / 엄마는 실수해서도 안 된다 / 엄마의 기분을 북돋워주는 사람이 없다. (134)

이유의 큰 제목들이 있고 부가 설명이 있는데, 부가 설명에서는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큰 요소들에서는 다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더 아기였을 때 나를 미치게 했던 것도 ‘통제불가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아이를 통제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해서도 안 된다. 아이는 차치하고 내 시간이고 내 에너지고 나 자신인데 전혀 내가 아닌 삶을 살았다.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볼 때 해야 하는 반복적인 일은 잘 하지도 못하고 무의미한 느낌이라 (물론 잘 하진 않았지만..) 그것도 괴롭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 무력감이 느껴졌으며(망할 중이염 때문에 애 붙들고 울고, 야밤에 응급실도 가고), 내 시간이지만 내가 통제가 전혀 안 되고, (잠깐 볼일을 보러 가고 싶어도, 아이를 맡길 곳이 전혀 없으니 온전히 신랑 스케쥴에 맞춰야 하고) 단기적인 보상이 거의 없었고(혹은 내가 못 보았고), 실수하면 애한테 큰일 나는 줄 알았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뭐, 이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는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살아간다면 그녀는 자신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폭력적인 엄마가 되는 것이다. 아니면 두 경우 다 해당될 수도 있다. (163)

  나도 그렇게 미쳐 있던 시기에 육아스트레스로 아이를 창문 밖으로 던진 엄마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무섭도록 이해했다. 무섭도록 그 엄마의 마음이 이해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죽하면 애를 던졌을까? 혹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엄마를 비난하기보다 엄마의 정신상태를 ‘걱정’했다. 아이를 던질 만큼 제 정신일 수 없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그러면서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이성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위안했다. 그래, 내가 비록 아이에게 잘 해주진 못해도, 이리 힘들어도 아이를 창문 밖으로 던지는 미친 행위는 안 하잖아.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나도 죽지 않고, 애를 던질만큼 미치진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번아웃은 여성이 나약해서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다. 또 다른 사람보다 힘든 환경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므로 약을 처방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주위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137)

하지만 또한 무섭도록 그 엄마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주위 환경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래, 온전히 내 탓이 아니야,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이렇게 궁지로 몰아간 환경이 문제야. 흡사 범죄자들의 마음가짐 같지만,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단지 차이점은 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타인이 어떻게 해주길 무작정 바라거나, 모든 걸 비난하고만 있다면 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살려면 내가 살 구멍을 찾아야 한다. (엄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번아웃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심리적 해결책과 환경 변화가 필요하다. 즉, ‘엄마’만의 이유가 아니다.) 난 그게 독서였고, 최대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통제할 수 있는, 단기적 보상이 나오는 유일한 사치였다. 이제야 그 독서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전체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발췌하여 내 것으로 하고 싶은 대목들이 많았고, 공감 받는 기분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화를 내렸냐고 묻는다면, 그게 책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었으면 이 세상 사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왜 화를 내는지에 대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은 되지 않았을까? 특히 완벽한 부모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 아이는 완벽한 부모를 원하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혹시라도 상처를 주었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부모를 원한다. 부모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아닌, 인간으로서 감정이나 욕구, 능력, 가치관 등 한계를 지닌 진짜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49)
  • 아이가 부모를 믿어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흔히 부모는 아이에게 믿음을 주려면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이는 일관성 있는 모습의 부모도 좋아하지만, 좋은 영향을 주는 부모를 더 믿고 좋아한다. (226)

‘완벽한’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언제나 <완벽한 아이> 그림책이 생각난다. 아이 마트에서 완벽한 아이를 산 완벽하지 않은 부모. 완벽한 아이는 완벽하기에 어떠한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대처한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아이마저도 폭발하게 만드는 완벽하지 않은 부모란… 이야기는 완벽한 부모란 게 어딨냐는 말로 끝나는데, 그게 비꼼일 수도 있지만, 현실 직시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좋은 것을 주려고, 좋은 부모가 되려고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부모라면 이미 충분히 완벽하다.

그래, 인정하자. 난 그냥 그 말이 좋은 거다.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거,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 우리 아이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한 가지 더 짚자면, 이 책은 부모의 부모를 돌아보며 나의 양육과정에서의 문제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프로이드처럼. 과거의 이런 사건 때문에 이런 문제가 있군요. 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보다 우리가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우리의 부모도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거다. 그들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테고, 나만큼 몰랐을테고, 어쨌든 날 창문 밖으로 던지지 않을 이성적 판단을 내리며 살아오신 것이다. 문제가 없었을 수는 없지만, 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게 아니라, 뻥, 하고 차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저자는 그 돌부리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노고도 인정하는 시간도 가졌다.

 

맺음말에서 뭉클하다. 이제야 이런 말이 뭉클해진다. 나름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 아이가 언제까지 다섯 살이겠는가. 항상 여섯 살, 열 살, 열네 살일 수도 없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정말로 짧다. 우리가 90 평생을 산다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2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19)

한창 힘들 때 한 육아서에서 자신이 엄마라는 걸 잊지 말라며, 아이를 낳기 전과 똑같이 살 수 없고 미련을 버리고 정신 차려라는 뉘앙스로 혼내는(?) 대목을 봤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안 그래도 힘든데 그런 말을 보고 있으니 더 침울해졌다. 이제 시간이 지나고 지나 그런가, 나 혼자 고군분투하고 살아내고 있는 동안 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그런가, 이런 내용을 보니 뭉클하다. 언제까지 다섯 살도, 여섯 살도 아니다. 부모 나이도 다섯 살도, 여섯 살이면 안 된다. 많은 이들이 너무 예쁘다는, 더 안 컸으면 좋겠다는 그 나이대로만 아이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길어야 20년이다. 아니 20년이어야만 한다. 그 뒤로는 엄마도 아이도 서로를 독립해야 하니까. 그 동안 행복하게 지내기. 결혼 전에 내가 항상 하던 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그 말을 잊지 말자. 우리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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