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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9757947


희작삼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이소영 역
봄고양이 | 2017년 07월



 

아래에 실은 것은 최근에 내가 혼다本多 자작(가명)에게 빌려서 본, 고故 기타바타케 기이치로北畠義一朗 박사(가명)의 유서이다. 기타바타케 박사는 가령 실명을 밝힌다고 해도 이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혼다 자작을 직접 만나 메이지 초기의 자질구레한 일화를 들으면서 비로소 그 이름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그의 인물 됨됨이는 아래 유서에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겠지만 풍문으로 들은 바를 두세 가지 더하자면, 박사는 당시 내과 전문의로 유명했으며 연극 개량에 관해서도 급진적 의견을 가진 일종의 연극통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후자에 관해서는 박사가 직접 쓴 희곡도 있으며 그것은 볼테르의 〈캉디드Candide〉의 일부를 도쿠가와 시대의 사건으로 각색한 2막극의 작품이다.


기타니와 쓰쿠바가 찍은 사진을 보면 기타바타케 박사는 영국풍 구렛나룻을 기른 장대하고 훤칠한 신사이다. 혼다 자작에 따르면 체격이 서양인을 능가할 정도라서 소년 시절부터 매사에 에너지가 넘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서의 글자마저 정판교 풍의 자유분방한 모양으로, 기세 넘치는 묵흔 속에서도 그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유서를 공개하면서 몇 군데를 고쳤다. 예를 들면 당시 아직 수작授爵 제도가 없었음에도 후일의 칭호에 따라 혼다 자작 및 부인이라 칭한 점과 같은 것이다. 그 외의 부분은 원문의 표현을 거의 그대로 베껴 썼다고 봐도 지장이 없다.




*  *  *


혼다 자작 각하, 그리고 부인


나는 나의 마지막을 앞두고 지난 3년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저주받아 마땅한 비밀을 고백함으로써 그대들 앞에 나의 추악한 심사를 폭로하려고 하네. 그대들이 이 유서를 읽은 후, 이미 고인이 되었을 나에 대한 기억에 한 조각 연민의 정이 인다면, 그것은 나에게 뜻밖의 커다란 행운이리라. 하지만 또 나를 목숨을 내던지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 시체에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전혀 유감스럽지 않다네. 다만 고백 내용이 너무 뜻밖이더라도 나를 함부로 신경병 환자로 칭하지 말게나. 최근 몇 달간 불면증으로 괴로워하긴 했으나 나의 의식은 선명하고 지극히 민감하다네. 내가 그대들과 20년이나 알고 지낸 것을 생각해보겠는가? (나는 굳이 친구라 칭하지 않겠네) 바라건대 나의 정신 건강을 의심하지 말게나. 그렇지 않으면 평생의 오욕을 털어놓으려는 이 유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는가?


각하, 그리고 부인. 나는 과거에 살인죄를 저질렀으며 동시에 장래에도 동일한 죄를 범하려 하기에 멸시받아 마땅한 위험인물이네. 게다가 그 범죄가 그대들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을 향해 기획되었고, 또 기획하려 했다는 것이 의외 중 의외이겠지. 나는 여기서 다시 힘주어 말하고 싶으이. 나는 완전히 제정신이며 내 고백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실이라네. 부디 믿어주기를. 내 생애 유일하게 기념할 만한, 이 몇 장의 유서를 광인의 헛소리로 여기지 말아주게나. 


나는 더 이상 내 건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여유가 없어. 내게 남은 약간의 시간은 즉각 나를 몰아세워 살인의 동기와 실행에 대해 서술하고, 나아가 살인 후의 기이한 심경을 밝히도록 재촉하는군. 그러나, 아아, 그러나 나는 벼루와 종이를 앞에 두고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네. 과거를 점검하며 기록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과거의 일을 다시 겪게 하는 것과 다름없겠지. 나는 다시 살인 계획을 세우고 다시 실행하고 게다가 최근 1년간의 엄청난 고뇌를 다시 겪어야 한다네. 과연 이것을 잘 감내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내가 수년간 잃어버렸던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네. 바라건대, 내게 힘을 주소서.


나는 소년 시절부터 나의 사촌 동생인 지금의 혼다 자작부인(삼인칭으로 부르는 것을 용서하게), 왕년의 간로지 아키코甘露寺明子를 사랑했어. 기억을 거슬러 올라 아키코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나열해도 될까? 그대들은 끝까지 읽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증거로서 아직 가슴 깊숙이 생생히 남아 있는 한 광경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 나는 당시 16살 소년이었고, 아키코는 아직 10살 소녀였지. 5월 모일, 우리는 아키코의 집 잔디밭의 등나무 덩굴 시렁 밑에서 즐거이 놀고 있었고. 아키코는 나에게 한 발로 오래 설 수 있냐고 물었어. 내가 못 한다고 하자 그녀는 왼손을 늘어뜨려 왼발가락을 잡고 오른손을 들고 균형을 잡아가며 한참이나 한 발로 서 있었다네. 머리 위에 늘어진 보라색 등나무 꽃은 봄 햇살을 받으며 흔들리고, 그 아래 아키코는 조각상처럼 서 있었어. 그림 같은 몇 분간의 그녀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네. 가만히 되새겨보며 내가 이미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에 놀란 것도 바로 그 등나무 아래였어.


그 후로 아키코에 대한 내 사랑은 한층 강렬해져 갔고, 그녀 생각을 멈추지 못해 거의 학문에 손을 놓았음에도 내 소심함 탓에 끝내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다네. 맑음과 흐림이 정해지지 않은 슬픈 감정의 하늘 아래, 때론 울고 때론 웃으며 아득한 수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내가 21살이 되자마자 아버지는 오랜 가업인 의학 공부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유학 갈 것을 명했지. 나는 기약 없는 작별의 순간 아키코에게, 내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엄숙한 가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유교 교육을 받은 나 또한 불순한 남녀 간의 일에 대한 비방이 두려워 한없는 이별의 슬픔을 안고 표연히 영국으로 떠난다고 했지.


영국 유학 3년간, 하이드 공원 잔디밭에 서서 고향의 보랏빛 등나무 아래 있던 아키코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또 펠맬가街를 걸으며 천애의 유랑자인 나 자신을 얼마나 불쌍히 여겼는지 여기에 쓸 필요는 없어. 단지 런던에서의 어느 날, 소위 장밋빛 미래 속에 우리의 결혼 생활을 몽상하며 간신히 애타는 마음을 달랬다고 하면 족하겠지.


그런데 영국에서 돌아와서 나는 아키코가 이미 혼인하여 제×은행장인 미쓰무라 교헤이満村恭平의 아내가 된 것을 알았네. 바로 자살을 결심했지만 타고난 나약함과 유학 중에 귀의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불행히도 내 손을 마비시켜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그때의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귀국 후 며칠 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려다 아버지의 격노를 불러일으켰던 일을 떠올려주게나.


아키코 없는 일본, 고국 같지 않은 고국에 머물며 헛되이 정신적 패잔병의 생애를 보내느니 차라리 차일드 헤럴드의 책 한 권을 안고 이역만리의 고독한 객이 되어 그곳에 뼈를 묻는 것이 훨씬 위안이 되리라 믿었다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사정으로 인해 결국 영국 도항 계획을 포기했고 아버지 병원의 일개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의 진료에 쫓기며 따분한 의자를 떠나지 못했지.


그래서 나는 실연의 위로를 신에게 구했어. 당시 쓰키지에 살던 영국인 선교사 헨리 타운젠트 씨는 그동안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되어 주었고, 아키코에 대한 내 사랑이 악전고투 끝에 차차 열렬하고도 평온한 육친의 감정으로 변화한 것은 전적으로 그가 나를 위해 설교해 준 몇 장의 성서 덕분이야. 종종 그와 신을 논하고 신의 사랑을 논하고 나아가 인간의 사랑을 논한 후, 행인이 드문 한밤중의 쓰키지 거류지를 걸어 혼자 집으로 돌아갔던 것을 기억하네. 만약 그대들이 나를 계집애 같다 비웃지 않는다면 거류지 하늘의 반달을 올려다보며 사촌 동생 아키코의 행복을 신께 빌고, 복받치는 감정에 흐느껴 울었음을 말할 수도 있어.


나의 사랑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던 것을 체념이라고 봐야 할지 소상히 설명할 용기와 여유는 없지만 육친의 애정으로써 비로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네. 귀국 후 아키코 부부의 소식을 몹시 듣기 꺼렸던 나는 그제야 육친의 애정으로 부부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했어. 만약 그들에게서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본다면 내 마음의 위안이 점차 커져서 작은 번민마저 사라지리라 경솔히 믿었던 게지.


이런 믿음으로 나는 결국 1878년 8월 3일 료코쿠바시両国橋의 불꽃놀이에 지인의 소개를 기회로, 때마침 기녀 10여 명과 함께 야나기바시柳橋 만파치万八의 수루에 있던 아키코의 남편, 미쓰무라 교헤이와 하룻밤의 즐거움을 함께했다네. 즐거움? 즐거움이라? 나는 고통이 훨씬 낫게 느껴진 이유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어.


나는 일기에 쓰기를,

‘아키코가 저런 마쓰무라 어쩌고 하는, 막되고 음탕하며 비천한 속물의 아내라고 생각하니 한가득 차오르는 분노를 어디에 토해내야 할지 모르겠다. 신은 내게 아키코를 동생으로 보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동생을 저런 짐승의 손에 맡겨버리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잔혹하고 간사한 신의 장난을 참을 수 없다. 아내나 여동생이 그런 자에게 능욕당하는데도 흔쾌히 하늘의 우러르며 신을 부를 자가 어디 있으랴? 이제부터 나는 결단코 신에게 기대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누이동생 아키코를 색마의 손에서 구하겠다.’



유서를 쓰는 지금도 당시의 저주스러운 광경이 생생히 눈앞에 펼쳐지는군. 푸르른 물안개와 수많은 홍등, 그리고 겹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화려한 놀잇배……. 아아, 나는 평생 그날 밤하늘에 펼쳐지던 불꽃의 명멸을 기억하고, 양쪽에 기녀들을 끼고 듣기 거북한 외설을 고래고래 노래하며 흠뻑 취한 돼지처럼 거만하게 늘어져 있던 미쓰무라를 잊지 못해. 검은 비단 윗도리의 다키묘가 무늬까지도 잊을 수 없어. 나는 믿네. 그를 살해하려는 내 의지의 시작이 바로 수루의 불꽃을 본 그 밤임을. 또한 믿네. 내 살인의 동기는 발생 당시부터 결코 단순한 질투에 의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불의를 벌하고 부정을 제거하려는 도덕적 분노에 있었음을.


그로부터 나는 마음을 감추고 미쓰무라 교헤이의 품행에 주목하며 과연 그날 밤 내가 본 것에 어긋나지 않는 치한인가 아닌가를 검사했어. 다행히 지인 중 신문기자를 업으로 하는 자가 꽤 많았기에 그의 음학무도한 행적이 내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네. 선배인 나루시마 류호쿠 선생에게서 그가 교토 기온祇園의 기루에서 채 꽃 피지 않은 어린 기녀를 능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풍문을 들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야. 게다가 이 무뢰한이 일찍이 온량하고 정숙한 부인, 아키코를 대할 때 노비와 다름없이 한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잘 봐준다고 해도 인간 역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존재가 세상을 어지럽고 문란하게 하며, 그를 제거하는 것이 노인을 살리고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방법임을 알았다네. 이렇게 나의 살해 의지는 서서히 살해 계획으로 바뀌어 갔어.

만일 여기서 그쳤다면 나는 아마 살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을지 몰라. 다행인지 혹은 불행인지, 이 위험한 운명의 시기에 나는 어릴 적 친구인 혼다 자작과 스미다가와隅田川 강변의 요릿집 가시와柏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바탕 비화悲話를 들었지. 이때 비로소 혼다 자작과 아키코가 먼저 결혼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쓰무라 교헤이의 돈의 위세에 억눌려 파혼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요릿집의 한줄기 등불이 비추는 포렴 뒤 어둑한 자리에서 혼다 자작과 술을 마시며 미쓰무라를 통렬히 비난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살이 떨린다네. 그와 동시에 그날 인력거를 타고 가시와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다 자작과 아키코의 옛 언약을 떠올리며 일종의 비애를 느낀 것도 분명한 사실이야. 재차 일기를 인용하는 것을 허락해주게.



‘나는 오늘 혼다 자작과 만나고 나서 조만간 미쓰무라 교헤이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자작의 말투에서 짐작건대, 그 혼자 결혼을 꿈꾸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품은 듯하다. (나는 오늘에야 자작이 독신인 이유를 알았다) 만약 내가 미쓰무라를 죽인다면 자작과 아키코가 맺어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미쓰무라에게 시집가서도 아직 아이가 없는 것은 혹시 내 계획을 돕기 위한 하늘의 뜻이 아닐까? 나는 이런 짐승 같은 벼슬아치를 죽여, 친애하는 자작과 아키코가 하루빨리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이때부터 나는 살인의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려 했네. 몇 번이나 주도면밀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후, 겨우 미쓰무라를 살해하기 적당한 장소와 방법을 골랐어. 어디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굳이 상세한 설명이 필요 없겠지. 그대들은 1879년 6월 12일, 독일의 황손 전하가 신토미자 극장에서 일본극을 보신 날 밤, 미쓰무라 교헤이가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마차 안에서 돌연 병사한 사실을 기억하는가?


신토미자에서 미쓰무라의 혈색이 좋지 않다며 갖고 있던 환약을 먹도록 권유한 장년의 의사가 나였음을 말하면 충분하겠지. 아아, 의사의 얼굴을 상상해보게나. 겹겹의 홍등빛을 받으며 신토미자의 나무문 앞에 서서 장맛비 속을 분주히 달려가는 미쓰무라의 마차를 떠나보내며 어제의 분노, 오늘의 환희가 동시에 가슴속에 차올랐어. 웃음과 오열이 함께 입술 끝에 흘러넘치고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지 망각했다네. 게다가 그가 울며, 또 웃으며 쓸쓸한 빗속에 진창을 밟고 미친 듯이 돌아왔을 때, 그가 끊임없이 중얼거린 것은 아키코의 이름임을 잊지 말게나.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서재를 배회했다. 환희인가 비애인가. 분명하지 않다.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전신을 지배하고 나를 잠시도 편안히 두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샴페인이 있었다. 장미꽃이 있었다. 그리고 환약 상자가 있었다. 나는 천사와 악마를 좌우에 두고 기괴한 향연을 연 것만 같다…….’


지난 몇 달만큼 행복한 나날을 보낸 적이 없어. 내 예상대로 부검의는 미쓰무라의 사인을 뇌출혈이라 결론지었고 그는 지하 여섯 자의 암흑에서 썩은 고기, 구더기의 먹이가 된 거야. 누가 나에게 살인의 혐의를 두겠는가? 게다가 소문에 따르면 아키코는 남편의 죽고 나서 비로소 얼굴빛이 돌아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기쁨 가득한 얼굴로 환자를 진찰하고 틈나는 대로 혼다 자작과 함께 신토미자로 연극을 보러 갔지. 정말이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영광스러운 전쟁터였던 그곳의 화려한 가스등과 양탄자를 바라보고 싶은, 기이한 욕망뿐이었던 거야.


그렇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않았어. 행복한 몇 달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내 생애 가장 증오할 만한 유혹과 싸울 운명에 처했다네. 그 싸움이 얼마나 혹독했던가? 한 발 한 발 나를 어떻게 사지로 몰아넣었던가? 도저히 여기에 쓸 용기가 없다네. 아니, 유서를 쓰는 지금도 나는 히드라 같은 유혹과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어. 그대들이 만약 고뇌의 흔적을 보고 싶다면 아래에 옮겨 놓은 일기를 훑어보게나.


‘10월 ×일, 아키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미쓰무라 가를 떠난다고 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혼다 자작과 함께 6년 만에 그녀를 만나려 한다. 귀국 이래 그녀를 만나는 일을 처음에는 나를 위해 참았고 나중에는 그녀를 위해 참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키코의 맑고 고운 눈동자는 6년 전과 같을 것인가?’


‘10월 ×일, 오늘 혼다 자작을 찾아가 함께 아키코의 집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자작은 나에 앞서 이미 그녀를 두세 번 만났다는 게 아닌가? 자작은 어째서 나를 소외했을까? 몹시 불쾌하여 환자 진찰 핑계를 대며 허둥지둥 자작의 집을 나왔다. 자작은 아마 내가 떠난 뒤 혼자 아키코를 방문하지 않았을까?’


‘12월 ×일, 혼다 자작과 함께 아키코를 방문했다. 아키코의 고운 얼굴은 예전만 못했지만 등나무꽃 아래 서 있던 소녀를 생생히 떠올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아아, 아키코를 보았다. 그런데 도리어 끊임없는 비애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유를 몰라 괴롭다.’

‘12월 ×일, 자작은 아키코와 결혼할 의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아키코의 남편을 살해한 목적이 비로소 완성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다시 아키코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이상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3월 ×일, 자작과 아키코의 결혼식은 올해 연말을 기하여 거행된다고 한다. 그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6월 12일, 혼자서 신토미자로 갔다. 작년 오늘, 내 손에 쓰러진 희생을 생각하면 연극 관람 중에도 회심의 미소가 절로 나오는 것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 문득 살인의 동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그 취지를 잃은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아, 누구를 위해 미쓰무라 교헤이를 죽였는가? 혼다 자작을 위해서? 아키코를 위해서?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답변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7월 ×일, 자작, 아키코와 함께 오늘 저녁 마차를 달려 스미다 강의 유등회를 보러 갔다. 마차 창으로 새어드는 등불에 아키코의 눈동자가 한층 아름답게 보여 옆에 있는 자작의 존재를 잊을 뻔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마차 안에서 자작이 위통을 호소하자 나는 주머니를 더듬어 환약 상자를 꺼냈다. 그런데 그것이 ‘그 환약’인 것에 깜짝 놀랐다. 나는 왜 오늘 밤 환약을 갖고 있었는가? 우연인가? 절실하게 우연이길 빌었다. 하지만 꼭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8월×일, 자작, 아키코와 함께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시종일관 주머니 속에 있는 환약을 잊을 수 없었다. 내 마음에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 있다.’


‘11월×일, 자작은 결국 아키코와 결혼식을 올렸다. 나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는 흡사 한번 도주한 병사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 느끼는 수치심과 같은 것이었다.’


‘12월×일, 자작의 청으로 병상을 찾아갔다. 아키코가 옆에서 말하길, 밤새 발열이 심했다고 한다. 진료 후 감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곧장 집에 돌아와 자작을 위해 직접 조제했다. 그 두 시간 동안 ‘환약 상자’가 줄곧 무서운 유혹을 해 왔다.’


‘12월×일, 어젯밤 자작을 살해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종일 가슴 속 불쾌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2월×일, 아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자작을 죽이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아키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작 각하, 그리고 부인. 이것은 내 일기의 대략적인 내용이네. 대략이라 해도 매일 밤낮으로 이어진 나의 고뇌를 쉽게 이해하긴 어려울 걸세. 혼다 자작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어. 만약 나를 구하기 위해 혼다 자작을 죽인다면, 내가 미쓰무라 교헤이를 도살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나? 또 만일 그를 독살한 이유가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이기주의에서 기인했다면 나의 인격, 나의 양심, 나의 도덕, 나의 주장은 완전히 소멸해 버리겠지. 이것은 애당초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이네. 차라리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 이런 정신적 파산보다 낫다는 것을 믿어. 이런 연유로 나 자신의 인격을 바로 세우기 위해 오늘 밤 ‘환약 상자’로 일찍이 내 손에 쓰러진 희생자와 동일한 운명을 짊어지려 하네.


혼다 자작 각하, 그리고 부인. 그대들이 이 유서를 손에 넣었을 때 나는 이미 사체가 되어 침대에 누워있겠지. 다만 죽음에 이르러 누누이 저주받을 반생의 비밀을 고백한 것은 그대들을 위해, 조금의 미련도 없이 깨끗하게 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야. 나를 미워하려거든 미워하고 동정하려거든 동정하게. 나는, 스스로 미워하고 스스로 동정한 나는 기꺼이 그대들의 증오와 연민을 받겠어.


이제 나는 붓을 놓고 마차에 명하여 곧장 신토미자에 갈 거야. 한나절의 연극 관람이 끝난 후 나는 환약 몇 알을 입에 물고 다시 마차에 오르겠지. 계절에 어울리지 않지만, 산산이 흩어지는 가랑비는 마침 장마 진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군.


이리하여 나는 살찐 돼지를 닮은 미쓰무라 교헤이처럼, 차창 밖을 오가는 등불을 바라보며 마차 지붕 위의 쓸쓸한 밤비 소리를 들으며 신토미자를 떠나고 오래지 않아 숨을 거두겠지. 유서를 받아들기에 앞서 그대들이 내일 아침 신문을 펼쳤을 때 기타바타케 기이치로 박사가 극장에서 돌아가는 길, 마차 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했다는 한 대목을 읽을지도 모르겠군. 마지막으로 그대들의 행복과 건재를 간절히 비네.


언제나 그대들의 충실한 종이었던 기타바타케 기이치로 배상拜上

1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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