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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9758044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것

아키야마 미쓰코 저/손지상 역
네오픽션 | 2017년 06월



Story 2. 겐지 × 메르(믹스) 이야기




마지막까지, 곁에 있을 테니까 — 할아버지와 늙은 개가 있던 공원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겐지(源治)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을 굵은 침으로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
곁에 엎드려 있던 개가 일어나 불안함에 코를 킁킁대며 겐지 곁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다.

“……괜찮다, 메르(メル)야. 걱정하지 마. ……조금 쉬면 금방 나아.”
얼굴에는 진땀이 흐른다.

정말이지 신은 늙은이를 이렇게까지 고생시키다니 심술궂다니까. 너무도 하시지.
겐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다미 위에 드러누웠다. 누워서 가만히 있으면 통증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다.
메르는 누워 있는 겐지에게 자기 몸을 딱 붙이고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마치 겐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자기 몸으로 흡수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 메르 네 녀석 몸은 따뜻하구나. 네 찜질 덕분에 아픈 게 다 날아가는 것 같다.”
하고, 겐지가 팔을 뻗자 메르는 손 위로 자기 턱을 살짝 얹었다.
“암인지 종양인지 어디 사는 말뼈다귀인지 모를 것한테 질 수야 없지…….”
아픔으로 정신이 몽롱해지면서도 중얼거렸다. 이대로 자버리자. 눈 뜨면 아픈 것도 다 날아가 있겠지—.
그리하여 겐지는 깊은 어둠 속으로 둘러싸여갔다.


겐지가 눈을 뜬 것은 잠든 지 네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방에는 완연히 오후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넘겼다. 어물어물 몸을 일으키니 온몸의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메르는 비틀비틀 균형을 잃으면서도 겐지의 얼굴을 핥아주려고 했다. 네 다리가 서 있기만 해도 약하게 떨리고 있다. 열네 살이라는 고령견 메르에게 있어서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일흔여섯 겐지와 열넷 메르.
두말할 필요 없이 노인과 노견 콤비다.
일흔여섯 살이라고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아직 노쇠해진 몸에 저항해야 할 정도까지 먹은 연령이 아닐지도 모르나, 악성종양 다시 말해 암세포가 겐지의 온 몸으로 전이된 상태였기에 상황이 다르다.
그래도 항암제 치료를 받아 체력이 떨어져 병원에서 누워 지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겐지는 현재 생활을 선택했다.

“안녕하세요. 방문간호원(ヘルパー) 오노(大野)예요. 어르신 들어갈게요!”
밝은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살집 좋은 중년 여성이 이미 거실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메르가 꼬리를 흔들며 환영한다.
“안녕, 메르야. 너는 어쩜 이렇게 볼 때마다 미인이니. 안녕하세요, 어르신. 몸은 좀 어떠세요?”
“뭐 대충 잘 지내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어디 보자, 약은 제대로 드시고 계신가…….”
오노는 부엌 식탁에 놓인 상자를 확인한다. 작게 구역이 나뉜 상자 안에는 각각 하루 치 약이 들어 있었다.

매주 세 번 방문간호원이 겐지의 집을 찾아와 방 청소나 세탁, 장보기 등을 도와주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진 겐지에게 있어서는 고마운 존재였다.
4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두 아들도 훌륭히 자립해서 각자 가정을 이루었다. 같이 살자고 하는 장남의 부탁을 겐지는 고집스레 거절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 살아서 익숙한 이 집에서 메르랑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편이 편해. 이제 와서 같이 살면 피곤하기만 하고. 그러니 됐다.”
완고해도 너무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니 두 아들도 두 손을 들어버렸다. 몸 상태가 걱정되어 집요하게 귀찮게 굴면 겐지가 역정을 내기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방문간호원에게 부탁해 몰래 겐지의 모습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겐지도 이 사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눈감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자 그럼 어르신 또 올게요. 뭐 필요하신 거 있으면 다음에 제가 올 때까지 메모해두시고요.”
“매번 미안해서 어쩌나. 다음 주도 잘 부탁함세.”
현관 앞에서 오노를 배웅한 겐지는 메르에게 말을 걸었다.
“자 그럼 메르야 슬슬 산책 가볼까?”
메르는 겐지를 올려다보며 신이 나 꼬리를 흔들었다.


겐지가 사는 집 바로 앞에 보이는 인공 연못과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
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언제나 같은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겐지와 메르의 하루 일과였다. 공원에서 노는 어린아이 여럿이 지르는 환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서 술래잡기를 하는 모양이다.
그때 술래잡기를 하던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겐지와 메르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근방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유토(勇人)였다.

“겐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 오늘도 왔구나.”
“네! 메르가 보고 싶어서요!”

메르는 유토가 오자 평소에는 들어보지 못할 콧소리를 큥큥 내며 애교를 부렸다. 겐지는 “뭐야, 메르 이 녀석도 역시 여자는 여자구나. 젊은 남자가 더 좋다 이거지!” 하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겐지가 유토와 처음 만난 곳도 이 벤치였다.
메르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아이 쓰다듬어도 되나요?” 하고 유토가 물어왔다. 유토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를 너무 좋아하는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키우지 못한다고 했다. 겐지와 메르가 항상 이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을 본 유토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던 것이다.
“그럼 메르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니?”
하고, 겐지가 말하자 유토는 눈을 반짝이며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이렇게 공원에서 자주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토! 우리 간다!”
멀찍이서 유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친구들이 불러요. 저도 따라가야 해요.”
“그래, 다음에 보자. 집에 갈 때 조심하고.”
“네. 담에 뵈어요. 메르야 안녕!”
유토가 달려간다. 저녁놀이 비추는 그 뒷모습을 겐지도 멜도 눈이 부신 듯 바라보았다.
겐지가 자택에서 쓰러진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발견자는 방문간호원으로, 거실에 쓰러져 있던 겐지에게 메르가 딱 붙어 있었다고 한다.
다급히 구급차를 부르려고 하던 여성에게 몽롱한 상태로 겐지는 “괜찮아요.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니까” 하고 제지하며 장남에게 연락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입원은 하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집에서 인생을 마무리했으면 한다.
이것이 겐지가 두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뜻이다.
아들들은 갈등 끝에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하고 오랫동안 돌봐주었던 동네 의사에게 왕진을 의뢰했다. 방문간호원이나 동네 주민들에게도 부탁해서, 다들 번갈아가며 병문안을 왔으나 누가 보아도 겐지가 많이 쇠약해졌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방문간호원 오노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오늘은 일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겐지의 지인으로서 온 것이었다.
“메르야 밥 잘 챙겨 먹어야지. 겐지 할아버지가 걱정하시잖아.”
오노가 메르에게 사료를 주어도 메르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겐지가 보이는 장소에서 그저 슬퍼하며 상태를 살펴볼 뿐이었다.

“……불쌍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네. 지금 어떤 상황인지 메르가 알고 있는 것 같잖아.”
오노 곁에서 근처 사는 여성이 속삭인다.
“겐지 할아버지, 메르가 먼저 죽기 전까지는 못 죽는다고 매번 말씀하셨는데. 메르는 자기한테 마지막 반려견이니까 메르를 두고 죽을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입원 안 하시겠다고 끝까지 고집 부리신 것도 결국은 메르가 외로워할까봐 그러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옹고집 겐지 할아버지다운, 서툰 상냥함.
여기 있는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겐지 집에 모여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새벽.
“……어이 ……유지(優治)야.”
거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장남 유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헉 하고 잠에서 깼다.
“아버지! 네, 저 유지예요. 제 말 들리세요?”
곁에서 담요를 둘둘 말고 있던 둘째 아들도 벌떡 일어난다.
겐지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몇 번 호흡을 가다듬은 뒤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제끼리…… 사이좋게 잘 살아야 한다…….”
두 사람은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겐지를 향해 몇 번이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르 ……를 불러줘…….”
유지가 고개를 들자 메르는 이미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르야, 이리 와.”
메르가 천천히 다가온다.
“아버지, 여기 메르! 메르 여깄어요!”
메르를 품에 안고 겐지 얼굴로 가져다 댄다.

“미안하……다. 한 발 먼저…… 여보, 어디야……금방 갈게.”
메르가 겐지의 이마를 핥는다. 그 감촉을 느꼈는지 겐지가 조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토……가, 약속, 지켜줄 거야…….”
하고 남긴 유언이 무슨 뜻인지 두 아들은 몰랐다.
“유토가 누구예요? 약속이라니? 아버지! 제 말 들려요?!”
허나 그 대답은 이미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겐지가 숨을 거둔 뒤로 메르는 한시도 그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메르를 방 한구석으로 데려가도 조금 지나면 다시 겐지에게 다가가 몸을 기댔다. 그리고 겐지 손을 코끝으로 몇 번이고 들어 올리며 겐지를 깨우려고 했다. 그런 메르의 모습에 눈물을 참지 못하고 방에서 나가는 이도 있었다.
결국 경야(通夜)에 찾아온 조문객이 조금씩 조금씩 방문하기 시작했기에 큰며느리가 결국 메르를 안아들고 다른 방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 순간, 메르는 품 안에서 엄청난 힘으로 몸을 뒤틀며 반항하고 짖었다.

“컹컹! 컹컹!”
듣고 있던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는 것 같은 슬픔 목소리.
“됐어! 그냥 메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고. 아버지도 그러기를 바라실 거야. ……메르야 괜찮아. 여기 있어. 미안하다.”
장남이 바닥에 메르를 놓아주자 메르는 단숨에 겐지에게 달려가 곁에 엎드렸다. 마치 자기가 겐지가 느끼는 몸의 아픔을 빨아들이면 다시 눈을 뜰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겐지의 장례가 끝난 지 며칠 뒤.
큰며느리가 겐지 집을 청소하고 있는데 남자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온 부모가 향을 올리게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유토’라고 이름을 밝힌 그 남자아이는 겐지와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겐지와 약속을 하나 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혹시 겐지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제가 겐지 할아버지 대신 메르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메르를 맞이하려고……. 아빠도 엄마도 메르를 키우는 데 동의하셨어요.”

무릎을 꿇고 앉아(正座) 말하는 유토의 모습은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긴장해서인지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꼭 쥐고 있다. 때때로 목이 막히면서도 최선을 다해 자기 스스로 생각한 말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니 혹시 메르가 쓸쓸해하고 있으면 저희 집에서 키우게 허락해주지 않으시겠어요? 메르는 제가 꼭 잘 돌봐주겠습니다. 겐지 할아버지가 없어도 쓸쓸해하지 않게.”
유토의 아버지가 뒤를 이어 말했다.

“저희들도 아들한테 사정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쪽 사정을 모르는데 그렇게 고집 부리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겐지 할아버지와 한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울면서 계속 뜻을 굽히지 않아서요. 그래서 폐를 끼치는 것은 빤히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고인께서 돌아가신 일로 가족 친지 분들 상심이 크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유토가 많은 신세를 진 겐지 할아버지께 저희도 어른으로서 예를 표하고 싶어서 조문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인다. 이를 본 유토도 다급히 흉내 내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이고, 그러셨군요. 일단 메르 문제는 오늘 밤 중에 남편에게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유토……였지? 이름이. 맞니?”
“아, 네!”
유토가 등줄기를 곧게 편다.
“겐지 할아버지와 한 약속 지켜줘서 고맙구나. 분명 천국에서 할아버지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해. 할아버지 대신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싶구나. 하지만 메르는 지금 아줌마네 집에 있단다. 유토가 한 약속 꼭 전해줄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렴.”
유토는 꾸벅하고 고개를 주억인 뒤 어물어물 겐지의 제단을 보았다.
겐지와 한 약속을 지킬 때까지 유토는 제단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많은 꽃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겐지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내가 아는 겐지 할아버지가 훨씬 더 상냥한 얼굴이셨던 것 같은데…….
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그날 밤.
아내로부터 사정을 들은 장남은 겐지가 마지막 남긴 유언의 의미를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그랬구나……. 그 말은 그런 뜻이었구나……!”
“메르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메르도 이제 나이가 많은데 정말 맡겨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제대로 돌봐줄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괜찮겠지. 그 고집 세고 완고한 옹고집 영감이 믿고 맡기겠다고 한 아이니까. 일단은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게다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인데 안 지킬 수도 없는 것 아냐……. 그렇지? 메르야?”
소파에 엎드려 있던 메르가 자기 이름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아주 좋아하는 유토 모습이 비치고 있는 듯했다.

(1)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기 전에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 관 옆에서 밤을 새워 지키는 일. 일본어로 ’쓰야(通夜)’, 우리나라에서는 ‘경야(經夜)’라고 부른다.


(2)주로 벌을 받을 때 무릎을 꿇고 앉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격식을 차리는 자세로 여겨지고 있다. ‘세이자(正座)’ 혹은 단정한 자세라는 의미로 ‘탄자(端座)’라고 부르며, 대비되는 ‘아구라(胡座)’는 우리나라에서 ‘양반다리’라고 부르는 자세로 편안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세로 여겨진다. ‘胡座’는 본래 귀족이 앉는 높은 단이나 외래문명인 의자를 뜻하는 단어였고 아구라가 본래 격식을 갖춘 자세였으나, 에도시대부터 다도가 널리 퍼지면서 의미가 역전되어 세이자가 격식을 갖춘 자세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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