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기로운 독서생활-소유의 문제
요즘 마음이 심란하여 요 책을 커다란 독서대 위에 올리고 맘에 드는 이야기를 잠이 올 때 까지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며 책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
책을 소유함에 대한 이야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요녀석이다.
제목과 다르게(점잖지 못하게) 사람의 책에 대한 소유욕이 얼마나 이상한 짓 까지 저지를 수 있게 만드는 지를 총 망라한 책이라고 하겠다. 저 책에 의하면 도적질 정도는 아주 귀여운 수준이다.
예전에 미쳤네 미쳤어 하면서 낄낄대면서 읽었는데 요즘은 책의 소유에 대한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햄릿과 오셀로를 이상한 케릭터가 눈을 부라리게 그려진 알록달록 표지와 명조체를 가장한 궁서체로 써진 하오체 버전으로는 절!대!로! 읽고 싶지 않다.
나는 특히나 요 전집을 애정하는데, 번역이 최신 번역에 가까운 것은 물론이요, 이 두껍고 무거운 책이 시원하고 맘에 쏙드는 푸른색의 단단하기 그지없는 단색 커버에서 스륵 빠져나오는 감각과 커다란 독서대 위에 책을 올리고 페이지가 성경책 만큼이나 얇아 넘길 때 마다 나는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청량감 넘치는 소리를 귀로 느끼며, 책을 읽는 것을 매우 즐긴다.
이 묵직함덕에 책은 책상 앞에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커다란 백색의 사기포트에 연변에서 온 보이차를 한 껏 구수하게 우려내고 그에 어울리는 순백색의 잔입술이 얇디 얇은 잔에 차를 뽀로록소리가 나도록 흥건하게 담아 호록호록 차를 홀짝이며 책을 읽는 맛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이북리더기 혹은 얇은 책을 침대에서 방만하게 뒹굴러가며 읽는 맛과는 다른 맛이라고 하겠다.
책 속엔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에 대비해서 중년에 해당하는 나이의 사람들의 고뇌가 담겨있고, 사람들은 죽거나 죽이거나 미치거나를 반복해댄다.
이번에 읽으면서 느꼈다. 이 중년을 죽거나 미치지 않고 지나면 천수를 누린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동일 하구나 라고 말이다.
중년의 위기는 이 시대나 저 시대나 매우 위험한 것이었던 게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나는 물론 잘 견뎌 낼 수 있을 게다.
2. 슬기로운 독서 생활-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기대
이중인격을 가진 한 인간의 사랑에 관한 일기다.
쓰고 나니 웃긴데 이거 진짜 사랑 이야기다.
여자를 위해 낚시대를 광란의 몸 짓으로 마구 마구 휙휙 휘두르는데 그게 사랑이 아니고 뭐겠는가 말이다.
아주 잘 계산 된 글자수로 중년의 교양을 가장한 나와 미친 내면의 아이의 나의 이야기가 말 그대로 번갈아 가면서 진행이 되는데 우와 이작가 진짜 잘 쓰네 라는 감탄을 했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매 이야기 마다 화자가 바뀌는 수림.
'수림'과 '교양과 광기에 관한 일기'가 작가 백민석이 소설적 글쓰기에서의 형식에 대한 이렇게도 쓸수 있지롱 이라는 놀라움이였다면 이번 플라스틱 맨은 소설가적 상상력이 현실을 어찌 뒤집으며, 'IF' 즉 '만약'이 소설에서 어찌 동작하는 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역사 속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지만 만약 이 역사가 다르게 진행 되었다면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국내작가들의 이야기에 선 눈을 씻고 찾아 볼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보니 내가 얼마나 반가웠는지말이다.
때문에 이 번 책 플라스틱 맨에서 갑자기 우리가 잘 아는 그 사건이 다르게 휙 진행 될 때 나는 외쳤다.
"이거지! 소설가란 사람이면 이 정도 상상력은 보여줘야지" 라고 소리내어 외쳤단 말이다.
그 지점 부터 바로 작가 백민석의 소설가로서의 평행우주가 세상의 또 다른 레어가 쫙 펼쳐지고 작가가 세상을 어찌 바라보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었다고 하겠다.
나는 이 작가의 책을 구매함에 내 지갑을 여는 것에 전혀 아까움이 없다.
이번에도 엄지 척!
언능 제대로 된 독후감을 한 편 써야 할 텐데 말이야.
그리고 말이다 이번에도 어휴 저 표지 디자인 어쩔꺼야... 으... 작가님 표지 디자인 좀.
세 권을 나란히 봐도 표지 디자인 좀 봐... 아 제발....
3. 슬기로운 독서생활-작가의 언어
정주민족과 유목민족 간의 투쟁과 협동은 인류 문명사의 큰 흐름이었다.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인류 문명이 최초로 발흥한 수메르 우르에서 아브라함이 이주하면서 탄생한 것이 셈족의 종교이다. 그 무렵 수메르 북쪽 코카서스 초원에는 인도유럽어족의 원류인 쿠르간 초원문화가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 뒤 두 세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류 문명사 전면에 등장한다. --- p.4
이것은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의 언어다.
김훈 저 |
초는 수 많은 유목 부족을 통합하면서 나하(奈河) 북쪽의 대륙을 차지했다. 초는 싸우기 전에 투항하는 부족들을 거두어 노예로 삼았고, 맞서는 무리는 모조리 죽이고 묻었다. 부족들은 멸족을 각오하지 않으면 초에 대항할 수 없었다, -p12
기루가루족이 강남의 여러 부족을 부수고 합쳐져 단나라를 세우는 데 이백년이 걸렸다. 기루가루족은 백산 동쪽 언저리에 터를 잡아서 수백 년을 이어왔는데, 농사의 편안함에 맛들여서 사냥질을 버리고 평야로 내려와서 또 수 백년이 흘렀다. -P31
이 것은 소설을 쓰는 자의 언어다.
하아~ 멋지지 아니한가 말이다.
역사를 쓰는 자의 언어에서 지식을 얻어 소설을 쓰는 자의 글을 읽으며 세상을 머리 속에 그린다. 정보의 양이 많을 수록 이 상상의 그림은 더욱 선명해지고 이야기속에 푹 빠져들게 되는데, 이 것이 내가 소설을 즐기는 방법이다.
즉, 깊게 읽기 위해서 넓게 읽는 것.
왕자오라버니의 글에서 읽은 글 처럼 요즘의 어떤 책들은 정말이지 스타벅스 한구석에서 커피나 홀짝이며 아무런 지식과 고민 없이 손꾸락 장난질로 뽑아낸 듯 한 글 들을 읽노라면 정말이지 책 산 돈이 아까워서 심히 분노해 미칠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런 책은 누가 줏어다 읽거나 팔까봐 박박 찢어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즘 글이라는 글 빨만 휘양찬란한 고민없는 글들에 저주를 퍼부으며, 정말 읽을 글이 없다 푸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