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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도서]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저/권혁준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신간코너를 뒤적이다 최신 번역으로 나온 듯 하여 사 읽었음.

역시 고전도 최신 번역으로 읽어야 매끄럽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 했다. 

매끄럽게 읽히니 생각도 매끄럽게 흘러 헤세는 참으로 꼰대스럽구나 라는 확!실한! 결론 또한 얻었지 말이다. 

헤세가 이 책을 쓴 나이가 50 이다. 

50이 넘어서도 이 양반은 어찌 여자를 묘사함에 딱 3가지 유형(완벽한 가이아 스러운 어머니, 척척박사의 팜므파탈, 날 잡슈쇼 스타일의 모르쇠 수동적 남성 맞춤형 여성상) 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세상 이리 밋밋하고도 존재 불가능한 여상상을 고집할 수 있는지 세상 오래 산다고 혜안이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라 하겠다. 말년의 걸작이라고 하는 유리알 유희를 읽는 중인데.... 더 이상 말을 말 지어다. 

 나는 소설을 읽고 싶지 헤세의 이상형 대잔치를 읽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근데 비단 이것이 헤세의 글 만의 문제는 아니고 소위 말하는 고전이라는 작품들 속 여성상 들 중 많은 수가 위에 언급한 여상상 안에서 그려지는 걸 보면 자라면서 고전만 주구장창 읽어대는 남성 동지들에게 슬그머니 연민의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저런 텍스들만 읽다 테스나 제인에어를 읽으면 얼마나 충격일 꼬... ...

 그러다가 세상에 나와 진짜 여성동지들을 만나면 얼마나 더! 쇼크일까... ... 

 이래서 세상을 책으로 배우는 건 위험하다는 거다. 

 아! 이 문장은, 내가 남말 할 처지가 아닌데... ...

 정말 입체적이고 쌔끈한(이건 선악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매력적인(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악인을 더욱 선호 하는 편이긴 하다) 여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고 싶고나. 


 같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 처음에 내가 고전을 파보겠네 했던 처음 읽었을 때의 마음 가짐은 온데간데 없고 다른 여러 면으로 책을 요모조모 따지게 되는데, 나의 경우 고전을 다시 읽으면 좋은 말로 하면 비판적 읽기요 쉬운 말로 하면 뒷 담화 까기 스킬이 마구마구 발동 하는 걸 느낀다. 

 앞서 이야기한 헤세가 그려내는 한결 같은 여상상에 대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세대갈등도 그 중 하나인데,  황야의 이리에도 1차 세계대전 직 후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세대 갈등을 엿 볼 수 있다. 

내겐 교수- 하리- 파블로 이 세명의 대화를 지켜 보는 것이 이번 재독의 묘한 재미였다. 

 하리에게 교수는 전쟁광의 국수주의자 꼰대로 보였을 것이고, 파블로는 자유로운 영혼의 (저 근본 없는 나라)미국 재즈에나 흠뻑 빠진 덜 떨어진 생각 없는 젊은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리가 뒤로 갈 수록 파블로와의 화해를 위해 노력 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이건 (내 기준)꼰대 하리의 나는 이 정도로 너거를 이해 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보적 식자층입네 하면서 용쓰는 걸로 보여 아주 재미난 관전 포인트로 읽었다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잊지 말 것! 황야의 이리를 많은 사람들이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면서 이리 하리를 헤세로 보는데 이견이 없다.  

 그리고 말이다. 하리는 분명 파블로를 여러 면에서 질투 하고 있었다. 하하.

 그리고 이제 나도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다. 

아직은 정말 가끔이지만 나도 젊음이 부럽고 질투 날 때가 있고 이 감정이 당황스럽고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다.  


 책의 초입에 하리가 다락방 어스름한 불 빛 아래서 괴테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책의 제목이 안 나오는데 읽다 보면 아마도 그 책은 '파우스트' 였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여러모로 파우스트에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인데, 헤르미네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로 치환을 해서 보기 시작하면 더욱 이런 확신을 가지기에 충분 할 테다. 

 파우스트에서 나와 헤세식의 자기 성찰로 이르는 길의 여정으로도 읽힐 정도로 내게 황야의 이리는 파우스트의 흔적을 여러방면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퍽이나 좋아 하는 포인트가 딱 한가지가 있는데. 이리 하리를 보면서 이 세기나 저 세기에나 어디에서나 '반골'의 기질을 지닌 사람들은 늘 존재 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해서 나타 날 꺼란 확신을 가지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반골들아 너무 외로워 하지 말자. 

 어디에건 우리는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 할 게다. 화이팅들 하시라. 


덧말. 

책에는 하리의 한량 같은 생활이 유지되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을 해준다. 

이 양반이 투자를 잘 해서 은행 예금이 넉넉해서 이자를 받아 생활한다는 이유가 나온다. 

역시 사람이 돈이 있어야 여유도 생기고, 허세도 부릴 수 있는거다. 

난 지금 피터린치의 월가의 영웅을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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