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식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나의 유전자가 내 자식에게 전해지기에
내 자식의 나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자손을 보며 우리는 연속성을 느낀다.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나는 여기서 끝나지만
연속해서 살아갈 나의 후손을 위해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환경 문제도 크게 느껴진다.
우리 자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줘야 할텐데.
하지만 확실히 따져볼 문제는
우리의 자손으로 인한 것도
결국 불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식은 내가 아니다.
앞의 생존, 부활, 영혼에서도 봤듯이
유전자가 똑같아도 완전히 나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온전한 객체로
우리의 후배를 존중해야 한다.
결국 4가지 불멸에 관한 논의는
삶에 대한 의미를 계속 찾게 한다.
왜 잘 살아야 하지?
무엇을 남기는 것이지?
불멸은 결국 지혜의 영역으로 넘어 가는 것이다.
죽음을 아는 사람이,
삶을 아는 사람이 결국 지혜로운 사람이다.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인지하고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바로 삶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종착지에는 지혜가 기다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