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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도서]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메리 매콜리프 저/최애리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제목 :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작가 : 메리 매콜리프

번역 : 최애리

출판사 : 현암사

읽은날 : 2020/05/22 - 2020/06/13


파리의 벨 에포크 시절의 역사를 다룬 2번째 책..

1권 다음시절부터 1차세계대전까지의 파리의 역사가 씌여있다.

처음 출발은 피카소...

미술을 볼 줄 모르는 나에게 피카소가 이정도로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피카소는 자식에 대한 애정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아 자식의 인생을 망친 비정한 아버지로만 알고 있는데, 이 책은 예술적 부분을 중심으로 쓰다보니 피카소의 예술적 위대성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또하나 관심가는 인물은 퀴리부인...

퀴리부인은 동화책에서 단편적으로 알만한 분이 아니다. 

탁월함뿐만 아니라, 그 성취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과 그 성취, 성차별적인 파리에서 여성으로서 그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 등 어느 하나 존경하지 않을 부분이 없다. 

마리 퀴리에게 급관심이 쏠린다.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따로 그 생애를 살펴봐야겠다.

 저자와 내가 생각이 다른 또 한사람이 로댕이다.

나에게 로뎅은 연인을 정신병자로 만들만큼 탐욕적이고 자신만 아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오히려 로뎅이 주변 여자들에게 당한것으로 쓰고 있다. 

이래서 역사책은 여러 종류를 두루 읽어봐야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은 1차 세계대전에 집중되어 있다. 1차세계대전이 이정도로 처참한 전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발달되기 시작한 비행기나 포를 이용해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다니...

호모 사피엔스는 확실히 잔인함에는 타에 추종을 불허한다. 

파리에 모이는 예술가들을 보며 파리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무엇인지 좀더 생각하게 한다. 

이제 마지막 3권을 읽을 차례다.. 개정판을 만든다면 제발 그림좀...


P13 1860년대와 1870년대의 극빈한 예술가들과 사업가들 중 상당수자, 세기가 바뀔 무렵 파리에서 명성과 부를 거머쥐었다 

P30 라벨의 작곡 선생이던 유명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는 라벨의 재능을 이해하고 따뜻이 지지해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P35 그의 형제 장워스는 현대성에 양보하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송로버섯만 고수하는 최고급 식당과도 같아"라고 가스통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감자튀김 부서를 만들 필요가 있지" 

P41 피카소는 겨우 열아홉의 나이에 그 유명한 장소를 그림으로써 이미 명성을 얻은 화가들에게 도전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P45 에릭 사티는 발라동에게 실연한 후 평생 다른 어떤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르누아르며 그 밖의 화가들과도 연애했고, 그중 한 사람의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모리스 위트릴로이다 

P89 그러는 동안에도 로댕의 충실한 정부 로즈 뵈레는 여전히 파리 교외 뫼동의 초라하고 불편한 집에서 요리를 비롯한 허드렛일을 계속했다 

P100 그러면서 내외 모두 연구에 매진했으니, 그 끝없는 중노동을 그들은 난방도 편의 시설도 없는 목조 창고에서 내가갔다. 그러는 한편 어린 딸 이렌을 키우는 데도 그 못지낳은 열의를 쏟고 있었다 

P113 "우리 퇴폐적인 인간들은 왜 우리의 퇴폐성을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고 그는 은근히 꼬집었다 

P132 졸라는 아내에게나 정부에게나 재정적으로 안락하게 살 만한 형편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평생 많은 작품을 써내며 큰돈을 벌었지만 씀씀이가 벌이보다 더 컸다 

P136 그중 처음은 런던의 왕립 학회로부터 데이비 메달을 수상한 것이었다. 그때는 마리가 병중이라, 피에르가 두 사람의 대표로 가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묵직한 메달을 가져왔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그는 그것은 여섯 살 난 딸에게 주었고, 아이는 곧 그것을 장난감으로 삼았다 

P144 "그걸 내놓고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내 예술적 죽음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P153 코티는 최초의 선전에 성공했고, 그 일이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그와 그의 향수는 뜨기 시작했으니까 

P162 모네의 외양은 로뎅과 다소 비슷했지만, "작고 떡 벌어진 체형에, 거의 새하얗게 센 수염을 풍성히 길렀으며, 깊고 솔직한 갈색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네에게는 로댕의 눈에서 번득이는 교활한 빛이 전혀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P181 사라가 격심한 무릎 통증 말고도 끔찍한 무대 공포증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P187 로뎅은 자신에게 봉사하는 이들에게 폭군처럼 군림하는 데 익숙해 있었고, 섬세한 릴케는 곧 "기분파에 귀족적인 거인과 가까이서 지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P200 그 힘든 시기에 이사도라는 크레이그에게 한 번만 와달라고, 원한다면 여자를 데려와도 좋다고까지 애원했다 

P202 그녀는 이 남자 저 남자를 가볍게 상대해 넘기는 한편, 피카소의 관심에는 설레면서도 질투를 두려워하며 그의 동거 요구를 물리치고 있었다. 

P209 적어도 파리에서는, 폭동이 대부분 극우파에 의해 선동되었다 

P233 다년간에 걸친 일련의 피카소 작품들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주제를 변주한 모색을 보여준다 

P237 거트루드는 "원고에 쓰인 모든 것은 그렇게 쓰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며, 출판사에서 할 일은 인쇄하는 것뿐,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라고 답했다 

P242 전에도 그렇게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는 짧은 쪽지만 보내왔고 실제로도 그녀를 원치 않았다. 

P262 "공중에서 줄을 타려면 먼저 땅위에서 제대로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먼저 데생하는 법을 가르쳤고여러 달 동안 물감은 쓰지 못하게 했다 

P274 벨 에포크 기간 내내 절망적인 가난이 이어졌으니파리의 빈민들에게 벨 에포크는 결코 황금기가 아니었다 

P276 세기 전환기에 요리사 및 주방 노동자들은 광부들보다도 더 심한 직업병에 시달렸다오래 서서 무거운 것을 나르고 더러운 공기를 마시는 데다주방 노동자로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향실조에 걸려 있었던 탓이다 

P292 그는 어디에 가든 혼자 가는 법이 없었고바토 라부아르 시절부터도 "피카소 패거리", "피카소 도당"이라 불리곤 했다남자고 여자고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지만여자들(아마도 거트루드 스타인을 제외하고는)은 그의 삶에서 대단찮은 지위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P303 아버지 에르네스트 블랑제가 1836년에 탔던 그 상은 어떤 여학생도 탄 적이 없었다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꼭 그 상을 타리라 다짐했다 

P322 마침내 친구들이 협상을 주선하여마리 퀴리와 폴xxx  

P323 드뷔시는 자신의 요구가 삶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위선과 압박을 탓하곤 했다 

P330 그녀는 싱어의 청혼을 망설임 없이 거절하고는 그의 이름 없이 자기 이름만으로 출생신고서를 제출했다. "나는 내 모든 정신력을 다해 결혼에 맞섰다당시에도 그렇게 말했고지금도 결혼이란 부조리하고 예속적인 제도라고 믿는다" 

P338 "당신이 낙원에 가봤습니까?" 박스트가 묻자 드뷔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소하지만 모르는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않소" 

P339 적들의 분노를 한층 부채질한 것은마리 퀴리가 연구를 위해 남편과 아이를 버리는 대신 힘겨운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학문을 병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P355 불행히도 이번에는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것이 사티의 원곡이 아니라 드뷔시의 편곡이었으므로 사티는 서글프게 푸념했다. "왜 그는 내게 자기 그늘의 작은 구석도 남겨주려 하지 않을까나는 그의 햇빛을 빼앗을 마음이 전혀 없는데" 

P368 포도송이로 생식기를 가린 의상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시사적이었지만목신이 떠너가는 한 님프의 베일과 나누는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마지막 장면은 일대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P391 피카소는몽파르나스에서 좀 더 많으 시간을 보내게 되기는 했어도여전히 몽마르트르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었다그는 아파트 외에도 바토 라부아르에 또 다른 작업실을 얻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바람을 피웠다 

P394 상드라르는 샤갈에게 "저 잘난 큐비스트들"에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며 그를 안심시켰다상드라르에게 힘입어 샤갈을 큐비스트들의 그림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저 사람들은 세모난 테이블에서 네모난 배를 먹으라지!" 

P401 물론 음악은 어려워서복잡하고 빠르게 바뀌는 리듬과 날카로운 불협화음 때문에 부주의한 연주자들은 곧잘 틀린 음을 내곤 했다 

p437 그 모든 것을 몸소 겪은 역사가 쥘 베르토의 회상에 따르면, "저녁이 되자파리는 좀 더 침착하고 진중해졌다가게들은 셔터를 내렸고많은 경우 그 셔터는 향후 4년 동안 올라가지 않을 것이었다" 

P448 프랑스에서는 전시 검열이 엄격하여적에게 유용할만한 군사정보는 물론 민간인의 사기를 떨어뜨릴 만한 어떤 정보도 일제 차단되었다 

P454 드골은 아라스로다시 파리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다회복하는 동안 그는 디낭 전투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이런 극적인 결론을 내렸으니그것은 그에게 전면적인 전향점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용기와 기백으로도 총포에는 이길 수 없다" 

P462 파리처럼 변덕스러운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는 놀랍게도, "가장 파멸적인 재난조차도 묵묵히아무런 시위 없이 받아들여졌다" 

P465 많은 경쟁 사업자들과 달리 시트로엔은 노동자 복지에도 힘썼는데이것이 생산을 안정시킨 주된 요인이었다특히 그는 여성 노동저들을 위한 지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임신과 출산육아 기간의 유급휴가직장 내 탁아소 및 유치원 시설 등을 확보했다 

P480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그녀의 출연에 전혀 감명받지 ㅇ낳았던 3천여 명의 젊은이들을 앞에 놓고자신이 항상 해왔던 일을 다시금 해냈다. 즉,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P481 그녀는 아무데서나 먹고 잘 수 있었으며그렇게 했다신장 손상으로 약해졌을 때만 잠시 쉬었을 뿐, 전쟁 내내 전선이나 프랑스와 벨기에의 병원 300-400개소 중 어딘가에 나가 있었다 

P498 1916년, "파리는 전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이없게도 환락의 수도가 되어 있었다" 

P503 하지만 이번에는 그도 그러지 않았다이사도라 덩컨과 파리스 싱어 사이의 길고 파란만장한 관계가 끝난 것이었다 

P510 예쁜 여자에게 약한 병든 노인이 된 로댕은 "손쉬운 먹이"였다그는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었지만그래도 작품의 복제권을 비롯해서 여전히 떨어질 고물이 많았던 것이다 

P521 장군들은 이런 사태를 사회주의혁명가들 탓으로 돌리며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인터내셔널가> 들려온 사건들을 지적했다장군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그런 봉기가 순전히 그들 자신의 무능함과 잘못된 전쟁 수행방식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운동이었다는 사실이었다 

P525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1 세계대전 동안 군사 업무에 여성을 참여시키지 않았다애덤은 심지어 프랑스 병동에서 젊은 여성의 근무를 배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보게  광경이 양갓집 규수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것이 이유였다 

P535 르누아르의 마지막   동안 사람은 각자의 작업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고 서로의 그림을 품평하며 자신들의 차이점을 탐구하는 가운데 점점  서로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그것은 르누아르의 만년에 기쁜 선물이었고마티스에게는 축복이었다 

P542 아빠는 잠들어 계셨어요숨은 규칙적이지만 아주 얕았어요 10시까지 그렇게 계속 주무시다가 천사처럼 조용히영원히 잠드셨어요그녀는 울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참아요"라고 썼다 

P561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프랑스는 거의 150만명을 잃었고, 300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그중 많은 사람들은 심한 부상으로 다시는 정상적으로 일하거나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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