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미호코의 흔적을 발견한 미즈타니는 흥분과 떨림 속에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냅니다. 30년 전,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던 신부 미호코는 영원히 종적을 감췄고, 영문도 모른 채 망연자실했던 신랑 미즈타니는 끝내 그녀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날아든 미호코의 답장. 이후 두 사람은 30년 전 대학 연극부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미처 털어놓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메시지가 거듭될수록 상상도 못했던 비밀과 거짓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30년 전 결혼식 당일에 사라진 신부를 페이스북에서 뒤늦게 발견한 50대 중년남 미즈타니와 지금까지 그날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했던 미호코가 주고받는 메시지는 마치 로맨스그레이의 그것처럼 애잔한 온기로 가득합니다. 대학 연극부에서 함께 보냈던 황금의 시간들, 이즈 바닷가에서의 열정적인 키스,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쉽지 않은 사연 등이 이제는 색이 바랜 오래된 연애편지마냥 두 사람 사이를 오갑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기묘한 러브레터’이고 미스터리 작품이란 걸 감안하면 메시지 속의 따뜻한 애정이 언젠가 기괴하게 급변할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쉽고 단순한 문장들로 이뤄진 그들의 메시지 속 어딘가 트릭이 감춰져 있을 것 같았고, 덕분에 어지간히 난해한 문장들을 읽을 때보다 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서술트릭’이라고 칭한 일본 독자의 서평이 있긴 하지만 몇몇 대목에서 주인공들의 정체와 신분을 희미하게나마 눈치 챌 수 있는 힌트와 트릭이 있을 뿐 딱히 서술트릭으로 분류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랑, 비밀과 거짓말 때문에 여기저기 생채기만 남은 사랑, 자기애와 이기심에 사로잡힌 일그러진 사랑 등 주인공뿐 아니라 여러 조연들의 다소 극단적인 감정들을 온순한 문장들 속에 교묘하게 감춰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작품은 두어 번에 걸쳐 언급되는 ‘불행의 신’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운명이라는 지극히 감성적인 테마가 ‘결혼식 당일 사라진 신부의 미스터리’와 엮이면서 미즈타니와 미호코가 주고받는 메시지는 점차 불온한 기운을 띠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과거 속 비밀과 거짓말은 격한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다가 30년 전의 진실을 폭로하며 종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었고 예상했던 것 이상의 엔딩을 즐긴 작품이긴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막강의 반전.”이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은 살짝 과장된 듯 보인 게 사실입니다. 이 카피 때문에 과도한 기대감을 건 독자라면 거꾸로 실망감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30년 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소박한 호기심으로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천천히 잠식해오는 불안감과 엔딩에 대한 궁금증이 고조되는 걸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꼭 참고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