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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살인자

[도서] 얼굴 없는 살인자

헨닝 망켈 저/박진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얼굴 없는 살인자’(1991)는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첫 작품입니다. 이후 2009불안한 남자까지 이 시리즈는 모두 11(한국에 소개된 건 8)의 작품이 출간됐습니다. 헨닝 망켈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집필한 콤비 작가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뒤를 이은 대표적인 스웨덴 작가인데 북유럽 스릴러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유일하게 읽은 작품이 시리즈 5편인 사이드트랙인데, 그 외에 그나마 최근에(2013) 출간된 작품이 하필 시리즈 마지막 편인 불안한 남자뿐이라 왠지 읽기가 꺼려졌던 게 사실입니다.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2000~2004년에 출간돼서 개정판이 나오면 읽어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뤄왔습니다.) 그러던 중 시리즈 첫 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 너무 반가웠는데, 앞으로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가 순서대로 한국에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스웨덴 남부 스코네 주의 소도시 위스타드의 형사 쿠르트 발란데르는 42살의 베테랑입니다. 뛰어난 수사력을 발휘하는 능력자지만 일반적인 스릴러 주인공들과 달리 딱 배 나온 아저씨스타일의 외모에 어딘가 살짝 허술해 보이는 인물입니다. 가정사도 만만치 않은데, 이혼을 요구하던 아내는 집을 나갔고, 19살 딸 린다 역시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조차 없으며, 발란데르가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한 시절부터 평생 그를 못 마땅히 여겨온 아버지는 아흔 살을 넘겨 치매 증세를 보입니다. 그야말로 사방이 꽉 막힌 듯한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의 유일한 위안과 안식은 오페라입니다. 젊은 시절 오페라 기획자를 꿈꿨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오페라를 듣는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여깁니다.

 

혹독한 겨울을 앞둔 어느 날 노부부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온갖 흉기가 동원된 끔찍한 고문 흔적들은 복수 또는 돈이 범행동기임을 가리키지만, 고립된 농가에 살던 그들은 적()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평범한 노인들이었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죽어가던 부인이 남긴 외국이라는 단 한마디뿐입니다. 문제는 이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자 스웨덴 도처에 머물던 난민들을 향한 테러가 시작됐으며 끝내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발란데르는 상부의 지시로 노부부 살인사건 대신 정치적 여파가 큰 난민 살인사건 해결에 전력을 쏟습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시다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내와 딸과 아버지 때문에 발란데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합니다. 또 새로 부임한 매력적인 여검사 아네테 브롤린과의 미묘한 관계까지 겹쳐져 발란데르는 롤러코스터 같은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경찰 초년병 시절 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살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법이야.”라는 주문을 외워온 발란데르로서는 일과 가족 때문에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지자 지금이 과연 살 때인지 죽을 때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의 머릿속엔 벗어나기, 달아나기, 사라지기, 새 삶을 시작하기.”라는 욕구만 가득합니다.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위기를 헤쳐나갈 현명한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닌 발란데르가 자기 앞에 놓인 여러 개의 폭탄들 때문에 쩔쩔 매는 모습은 분명 매력적인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훨씬 더 인간미가 느껴진 것 역시 사실입니다.

 

몇 차례의 헛발질 때문에 수사는 장기화되고 한때 발란데르는 사건에서 손을 뗄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결국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과 뛰어난 추리력으로 범인을 특정하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렇지만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발란데르에겐 불편하고 무거운 여운만 남을 뿐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새로운 경찰을 요구하는 시대의 변화입니다. 대도시에나 어울리는 범죄가 소도시에 만연하기 시작한데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수사방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발란데르는 자신이 서있을 자리에 대해 회의에 빠집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모든 살인사건의 배경에 놓인 스웨덴의 난민 문제입니다. 인종주의자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난민을 받아들이는 정부 정책에 발란데르는 반감을 느낍니다. 어쩌면 자신이 어렵게 해결한 끔찍한 살인사건들의 근원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의 산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What went wrong with Swedish society?”, 즉 스웨덴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읽은 사이드트랙의 서평을 찾아보니 복지국가 스웨덴의 민낯이라든가, 까마득히 벌어진 빈부 격차, 지독한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빚어낸 폭력을 묘사한다.”라고 돼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시리즈는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작품 외적인 얘기를 잠깐만 하자면...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는 한국에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작품을 출간한 피니스아프리카에 앞서서 2000년부터 좋은책만들기, , 웅진지식하우스 등 세 곳의 출판사가, 그것도 (시리즈 첫 편은 외면한 채) 원작 순서와 무관하게 중구난방으로 시리즈를 출간했는데, 심지어 작가의 이름마저도 헤닝 만켈, 헨닝 만켈, 헨닝 망켈 등 제각각으로 표기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리즈 첫 편을 출간한 피니스아프리카에서 앞으로 순서대로, 또 일관성 있게 출간해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북유럽 스릴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중년형사 발란데르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고 싶기도 하고,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1990년대의 아날로그 정서도 그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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