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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통행증

[도서] 영혼 통행증

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담을 다룬 미야베 월드 2에는 여러 시리즈와 주인공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현재진행형이며 가장 매력적인 건 주머니가게 미시마야의 흑백의 방에서 벌어지는 괴담 들어주기를 그린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입니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라는 흑백의 방의 유일한 규칙 덕분에 손님인 화자(話者)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내밀하고 믿기 힘든 괴담을 편한 마음으로 털어놓습니다. 그 괴담들은 때론 안타깝기도, 때론 감동적이기도, 또 때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털어놓음으로써 오랜 시간 가슴 한쪽을 묵직하게 짓누르던 바위덩어리를 치워버리거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게 됩니다.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영혼 통행증까지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출간됐는데, 그중 앞의 네 편은 17살 소녀 오치카가 괴담을 듣는 역할을 맡았고, 5편인 금빛 눈의 고양이에서는 미시마야의 차남이자 오치카의 사촌인 도미지로가 함께 괴담을 들었으며, 오치카가 결혼한 뒤인 6눈물점부터는 도미지로가 단독으로 그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눈물점서평에도 썼던 내용이지만 도미지로는 오치카보다 나이는 몇 살 더 많지만 다소 미덥지 못한 인물입니다. 몸도 약하고 심지도 굳건하지 않은데다 밥벌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딘가 나사 하나쯤 풀린 것 같아 손님들이 털어놓는 괴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눈물점에서 단독 데뷔전(?)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도미지로는 아직 초보 티가 여전합니다. 괴담을 들려줄 손님이 등장하면 바짝 긴장하기도 하고, 간혹 앞질러 이야기를 예단하다가 당황하기도 하며, 손님이 돌아간 뒤에는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쏟기도 합니다. 하지만 약간이긴 해도 도미지로가 분명히 성장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더는 오치카의 도움이 간절할 정도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든든한 두 하녀 오카쓰와 오시마에게 기대지도 않습니다. 나름 쌓은 노하우로 대화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능력도 갖추기 시작했고, 들은 괴담을 바탕으로 그리는 그림 역시 꽤 진지한 구상과 고민을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제법 청자(聽者)로서 틀이 잡혀 간다고 할까요?

 

모두 세 편의 괴담이 실려 있는데, 산 속 용암 연못에 기거하는 터주의 은혜 덕분에 화기(火氣)를 제압할 수 있는 신비한 큰북 님을 갖게 된 오카지 번의 이야기(‘화염 큰북’), 맛있는 꼬치경단을 파는 소녀 오미요의 안타까운 가족사(‘한결같은 마음’),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한 영혼의 비극적인 사연과 그 영혼을 돌보며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뱃사람의 애틋한 기행(‘영혼 통행증’) 등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이 비교적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그린 반면, ‘화염 큰북영혼 통행증은 괴담의 미덕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화염 큰북의 경우 용암 속에 살던 생물이 산 속 연못에서 터주로 추앙받으며 불기운을 좌지우지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 터주에 얽힌 놀라운 반전은 괴담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충격과 감동을 전합니다. ‘영혼 통행증은 전형적인 한 맺힌 귀신 이야기같지만 영혼을 안내하는 뱃사람과 영혼을 볼 수 있는 15살 소년이 가세하면서 색다른 귀신 이야기로 장식됩니다.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클라이맥스는 카타르시스의 힘까지 담고 있어서 통쾌함과 애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줍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수작 원더풀 라이프를 떠올리게도 했는데, 이야기의 결은 전혀 다르지만 영혼을 안내하는 자의 성실함과 진정성이란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세 편밖에 수록되지 않아 기대보다 홀쭉했던 분량입니다. ‘편집자의 덧붙임을 읽어보니 애초 여섯 편이 수록될 예정이었지만 분량이 너무 과도해지고 출간시기가 많이 늦어질 수 있어서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세 편의 연재가 일본에서 마무리됐고 한국에도 곧 소개될 예정이라니 저의 아쉬움은 그런대로 풀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년 봄쯤에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 1. 미시마야의 흑백의 방의 괴담 자리가 3년 전에 시작됐다는 서문을 읽고 깜짝 놀랐는데, 저의 체감으로는 족히 10년은 된 듯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게, 찾아보니 시리즈 첫 작품인 흑백이 한국에 소개된 게 2012년 봄,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미시마야에 또다시 3년의 시간이 흐르려면 앞으로 10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요? 부디 절반 정도로라도 줄여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족 2. 미미 여사는 이 시리즈를 통해 모두 99편의 괴담을 선보이겠다고 예고한 바 있는데, (편집자의 설명에 따르면) ‘영혼 통행증까지 34편이 완성됐습니다. 1/3 지점인데, 그저 미미 여사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남은 65편의 괴담을 빠짐없이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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