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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바다

[도서] 봄날의 바다

김재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12살에 서울을 떠나 엄마와 동생과 제주도 애월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희영은 불과 10년 만에 쫓기듯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동생 준수가 잔혹한 살인범으로 체포된 뒤 구치소에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10년간 희영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가해자의 가족이란 사실이 드러날까 봐 세상과 담을 쌓았고,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 때문에 소소하게 웃는 것조차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준수의 무죄를 주장하던 엄마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뒤 희영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 하나 때문에 충격에 빠집니다. 제주도 애월에서 10년 전과 꼭 닮은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어쩌면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일지도 모른다며 유력한 용의자 후보까지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준수의 무고함을 밝힐 수 있다고 믿은 희영은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가해자의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고통받아온 희영이 동생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진범을 찾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영이 탐정처럼 활약하는 이야기 혹은 반전을 거듭하는 팽팽한 미스터리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장르물과 장르물의 경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미묘한 작품입니다.

그런 점에서 죽은 자와 감옥에 갇힌 자, 그리고 고통의 심연에서 웅크리고 숨죽인,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은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가해자와 그 가족, 피해자의 유족, 그들의 친구와 이웃, 그리고 담당 형사와 프로파일러 등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1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개의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는다기보다는 그 비극들을 각자의 처지에 따라 극과 극의 형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역할에 더 충실합니다. , 회한에 잠기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사악하게 이용하거나 또는 완벽하게 은폐하려 하는 등 비극에 대처하는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가 진범 찾기못잖게 묵직하게 그려집니다.

 

애월에 내려온 희영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오로지 그 범인이 10년 전 (준수가 범인으로 지목됐던) 사건의 범인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근 벌어진 여대생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려 애씁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10년 만에 만난 학창시절의 절친과 가족,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와 프로파일러, 그리고 10년 전 살해된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희영은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사건 관련자들의 사연에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학교폭력, 왕따, 가정폭력, 충동조절장애, 시기와 질투, 누명과 복수와 용서 등 예상치도 못한 코드들이 희영의 진실 찾기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애월의 오름과 바다는 희영에게 두 개의 살인사건은 물론 거기에서 파생된 비극까지 떠안긴 것입니다.

 

마지막에 두 살인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긴 하지만, 독자는 누가 범인?”보다는 희영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몸과 마음에 새로 새겨진 상처들, 그리고 그 상처들이 앞으로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한 종장은 그래서 더 길고 짙은 여운을 독자의 기억 속에 남겨놓습니다.

 

사실, 김재희의 작품은 저와는 코드가 잘 안 맞는 편입니다. 서평을 남긴 건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의 초기작인 , 짓하다이웃이 같은 사람들뿐이고, 대표작인 경성 시리즈는 첫 편 초반까지밖에 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봄날의 바다곳곳에서도 저와 잘 안 맞는 신호들이 발견됐는데, 의도와 다르게 역효과가 난 인용들(영화나 책이나 제주의 전설), 희영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됐지만 작위적으로 보인 조연들의 사연들(게스트하우스 사람들, 희영의 절친 등), 상식적이지 않았던 몇몇 장면(특히 프로파일러 관련)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와 캐릭터, 이야기의 묵직함이 잘 어우러진 덕분에 이번에도 안 맞으면 더는 읽지 않겠다.”던 저의 오만한 예단은 일단은 꼬리를 내려야만 했습니다. 특히 독자의 기대를 배신한(?) 막판의 진실과 엔딩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는데, 이야기에 걸맞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비극성을 도드라지게 만든 봄날의 바다라는 제목과 함께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만든 1등 공신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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