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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삼킨 여자

[도서] 꽃을 삼킨 여자

김재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설희연은 픽업아티스트입니다. 목표로 삼은 남자가 자신의 성적 매력과 따뜻한 미소에 넘어오면 두어 번의 짧은 만남을 통해 그를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그리곤 소액의 돈을 빌린뒤 연락을 차단하고 종적을 감춥니다. 그녀는 1년에 단 두 달, 성적 매력을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는 여름에만 활동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피스텔의 1년 치 월세가 전부. 10여 명의 남자에게 각각 1백만 원 안팎만 받아낼 뿐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한참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피살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그녀이기 때문입니다. 특채로 프로파일러가 된 후 현장실습 차 송파서에 파견돼있던 강아람이 10년 선배 서선익과 함께 설희연을 쫓기 시작합니다.

 

픽업아티스트의 세계를 그렸다는 소개글을 보고 새로 생긴 직업인가,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특정 상대를 목표로 섹스나 금전적인 이득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기꾼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단어.”라고 나옵니다. 20세기의 제비족과 꽃뱀의 활동무대가 오프라인밖에 없었다면 21세기의 픽업아티스트는 온라인에까지 진출하여 이른바 로맨스 스캠이라는 신종 사업(?)을 벌이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설희연은 고전적인 오프라인 플레이만 고집합니다. 왁싱클럽, 워터파크, 카페 등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촉으로 선택한 목표물에게 접근하여 호감을 얻은 뒤 잘 해야 1~2백만 원의 소소한 사기를 친 뒤 종적을 감춥니다. 미스터리 속 주연급 악녀치곤 잡범에 가까운 소박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희연의 도피 과정과 과거사를 그린 챕터들은 이 작품이 단순히 범인 찾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합니다. 어린 시절, 개차반인 부모로부터 도망친 뒤 가출팸과 보도방을 전전하며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끝에 누군가와 길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희연이 왜, 어떤 식으로 픽업아티스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1년에 달랑 두 달, 그것도 큰돈도 아니고 낡은 오피스텔의 1년 치 월세만 손에 쥐고 물러나는 건지 그 내밀한 사연들을 조금씩 풀어놓습니다.

희연은 언뜻 생계형 범죄자처럼 보이는데, 그 문제를 놓고 경찰 주인공인 서선익과 강아람이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범행에서 악의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며, 오로지 먹고 사는 것 이상의 목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성()을 파는 것 외엔 달리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었던 희연의 과거사는 단순히 그녀를 생계형 범죄자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착잡함을 불러일으킵니다.

 

희연이 사람의 감정을 제멋대로 갖고 놀다가 야비하게 큰돈을 뜯어내는 악녀 캐릭터였다면 이야기는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겠지만, 평생 막다른 궁지에 몰린 채 살아온 그녀의 처지와 그녀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픽업아티스트 사이의 모순 아닌 모순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할 여지를 남겨줬습니다. 명백한 범죄자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랄까요?

다만, 그런 희연의 캐릭터 때문에 다 읽은 뒤 “So What?”이라는 조금은 맥 빠진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독자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작가가 희연에게서 악녀의 향기가 일체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어떻게든 그녀에게 구원의 여지를 남겨주려고 일부러 애썼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경찰 주인공인 송파경찰서 서선익과 강아람은 실은 수사보다는 젠더 이슈를 위해 투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름 베테랑이라는 서선익은 전혀 베테랑처럼 보이지 않았고, 강아람 역시 프로파일러나 형사로서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두 사람은 밥을 먹을 때나, 잠복을 할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남자와 여자이야기를 꺼내는데,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상투적인 논쟁이라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 (작가의 전작 봄날의 바다에서 만났던 뼛속까지 속물 프로파일러감건호와 생계형 프로파일러여현정은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들 역시 주된 역할은 서선익-강아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색다른 범죄와 범죄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여성의 성 상품화와 섹슈얼리티, 그리고 젠더 이슈를 다룬 작품이란 소개글이 던진 기대감에 다소 못 미친 점, 그리고 독한 양념이 살짝 추가됐더라면, 또 서선익과 강아람이 조금만 더 진지한 태도로 사건 자체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더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은 끝내 피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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