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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밤

[도서] 절벽의 밤

미치오 슈스케 저/김은모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미치오 슈스케는 제겐 참 애매한 작가입니다.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은 외눈박이 원숭이가 유일하고, 그 외엔 다소 난해(랫맨, 스켈리튼 키, 투명 카멜레온) 혹은 중도포기(수상한 중고상점 =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등 대부분 쉽게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장에 꽂혀있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광매화등 그의 대표작을 아직 못 읽어서 타율이 저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선입견 비슷한 게 생겨버린 바람에 그의 작품들에 쉽게 손이 안 나가는 게 사실입니다.

 

(개정판과 앤솔로지를 제외하고) 한국에 출간된 그의 21번째 작품인 절벽의 밤은 제 기준으로 분류하면 흥미진진다소 난해의 딱 중간쯤 되는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히지만 왠지 엷은 우유막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모호함이 작품 전반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 자체는 그리 복잡하거나 난이도가 높진 않아도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깊고 어두운 감정들이 작품 전반에 도사리고 있는데다, 진상이 밝혀져도 깔끔함이나 통쾌함과는 거리가 먼 여운들이 기다리고 있고, 특히 독자를 최대한 객관적인 위치에 머물게 하려는 건조하고 무심한 듯한 문장들 역시 우유막의 일부분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점들이 미치오 슈스케의 특기이자 장점이기도 하지만 저처럼 그를 애매한 작가로 여기는 독자라면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는데, 일단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이니 미리 예단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서로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요 인물들이 비중을 달리 하며 여러 수록작에 교차 등장하기 때문에 연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앞의 세 작품이 서로 다른 살인사건들을 다루고 있고 마지막 작품에서 이른바 종합편처럼 마무리되는데, 흥미로운 건 작가가 미스터리의 진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수록작 모두 그래서 마지막에 도대체 어떻게 됐다는 거야?”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데, 그 해답은 각 수록작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 실려 있습니다. 문제는 독자에 따라 그 사진을 아무리 봐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인데, 그래선지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독자들이 해설을 요청하거나 직접 해설을 게재하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킨 소설이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론 네 개의 사진 중 한 개는 결국 옮긴이의 말을 읽고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애매한 미스터리 때문에 답답함이 치밀더라도 마지막에 실린 사진들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으니 절대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자살 명소로 유명한 유미나게 절벽입니다. 자살 외에도 뺑소니 사고, 자살을 위장한 살인 등 여러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오명이 더욱 심각해졌지만, 마지막 수록작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평화로운 공원으로 탈바꿈한 채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수록작에게 거리의 평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을 단 건 무척 아이러니한 일인데, 겉모습만 평화롭게 바뀌었을 뿐 실은 그 아래에 감춰진 불행과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섬뜩한 경고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공원에서 자신들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자백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때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있다.”라는 씁쓸함을 남겨서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올봄에만 개정판을 포함하여 미치오 슈스케의 세 작품이 출간됐습니다. 매번 다음에는 반드시 책장에 갇혀 있는 그의 대표작들을 읽을 테야!”라고 다짐하고도 금세 까먹거나 의도적으로 피해오곤 했는데, 아무래도 다음에 읽을 작품 역시 신간인 용서받지 못한 밤이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올해 안에 그의 대표작 한 권쯤은 책장에서 꼭 구해주도록 애써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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