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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2월 29일

[도서] 여섯 번째 2월 29일

송경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29일에 태어나 4년마다 생일을 맞이하는 수현. 20대 초반 전역한 그를 기다린 건 엄청난 빚과 간경화로 투병 중인 어머니뿐입니다. 불법 콜택시, 일명 콜때기로 호구지책을 마련하지만 수현은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죽지 않을 이유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생일인 229, 도박사이트를 통해 자신과 생일이 같은 현채를 알게 된 수현은 그녀와 함께 충동적으로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뺑소니를 당한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을 갖고 있던 현채가 엉겁결에 은행원을 쏴 죽이고 맙니다. 급한 나머지 현금을 나눠가진 뒤 4년 후 자신들의 생일인 229일에 다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하지만 이후 229일은 수현에게 4년마다 되풀이되는 끔찍한 지옥도를 펼쳐 보입니다.

 

살아갈 이유조차 없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돈이 필요한 수현과 평범하고 모자람 없어 보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큰돈이 필요하다는 현채. 더구나 우연히 손에 넣은 총까지 지닌 두 사람이 아무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하다가 은행원을 죽이는 대목까지만 해도 영원한 고전 보니&클라이드’(한국 개봉 제목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비슷한 전개를 예상했던 게 사실입니다. 현금 탈취 4년 후 자신들의 생일날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두 번째 한탕을 저지르며 희대의 2인조로 진화하는 액션 스릴러의 향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의 4년이 흐르는 동안 수현과 현채는 초반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극적인 반전과 함께 피비린내와 긴장감이 작열하는 치명적인 관계가 되고 맙니다.

 

사실 여섯 번째 229은 서평을 쓰기가 참 난감한 작품입니다. 229일이 돌아올 때마다 점점 더 짙고 불온한 악의에 휩싸이는 수현과 현채의 비밀을 설명하지 않곤 초반 이후의 줄거리를 소개할 방법이 없는데, 대략 1/3쯤 공개되긴 하지만 제가 볼 땐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라 함부로 언급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공이 어떤 종류의 갈등을 벌이는지, 각자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는지, 궁극의 목표는 무엇인지조차 소개할 수 없으니 인상비평 수준의 다소 모호한 서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드보일드는 특성상 누아르와 결합하기 쉽지만, 언제나 누아르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범죄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이야기의 주체일 때 건조함과 비극성이 극대화되기도 한다.”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수현과 현채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실은 과거도 미래도 온통 감당하기 힘든 비극으로 채워진 심연 같은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파국이 예정된 두 사람의 행보는 최대한 절제된, 그래서 오히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하드보일드 스타일대로 묘사되는데, 특히 어딘가 공감 능력이 결여된 듯한 수현의 캐릭터와 차분한 미소와 낮은 목소리 속에 섬뜩한 냉기를 품고 있는 현채의 캐릭터는 작가가 구사하는 건조한 문장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수현과 현채의 잔혹한 이야기는 다섯 번의 229, 그러니까 16년에 걸쳐 느리지만 위험하게 끓어오르다가 극적으로 폭발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맞이하는 여섯 번째 229일은 독자에게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그 누구도 편들어 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선사합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하드보일드 스타일 엔딩이라고 할까요?

 

이 작품은 송경혁의 첫 장편이라고 합니다.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신인작가들을 여럿 만났는데, 송경혁 역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대단한 유망주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하드보일드 혹은 누아르 스타일을 고수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좀더 그쪽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강점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매력적일 여섯 번째 229이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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