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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

[도서] 설원

다이몬 타케아키 저/남소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1993년 교토. 유망한 법대생 야기누마 신이치가 친구인 남녀 두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10년이 넘는 긴 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은 신이치는 수기까지 발표하며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버지 에츠시를 포함하여 그 누구와의 면회도 결단코 거부합니다. 전단지까지 돌리며 아들의 무죄를 호소하던 에츠시는 어느 날 충격적인 전화를 받습니다. 자신을 메로스라고 칭한 자가 신이치는 무죄이며 진범은 자신.”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더구나 자수의 대가로 5천만 엔이라는 거금을 요구하자 에츠시는 혼란에 휩싸입니다.

 

올해(2022) 초 출간된 다이몬 타케아키의 완전무죄를 무척 흥미롭게 읽어서 2009년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과 TV도쿄상을 수상한 설원의 출간을 고대해왔습니다. 원죄(?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와 진범 찾기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완전무죄와 마찬가지로 설원은 사형제도의 문제를 진범 찾기 서사 속에 잘 녹여낸 사회파 미스터리입니다. “원통함을 씻어준다”(雪寃)는 뜻의 제목만 봐도 이 작품의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 신이치의 무죄를 확신하는 전직 변호사 에츠시가 이야기를 이끄는 가운데 신이치에게 사랑하는 언니를 빼앗긴 임상심리사 나츠미, 선대 변호사의 뒤를 이어 신이치의 변호를 맡은 이사와, 무슨 이유에선지 에츠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듯한 길거리 뮤지션 모치다 등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 인물들이 진실 찾기 공방을 벌이며 동시에 사형제도의 문제에 관한 격렬한 논쟁을 벌입니다. 과연 신이치는 누명을 쓴 것인가? 전화를 걸어온 자는 진짜 범인인가? 그렇다면 그가 두 명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죄를 신이치에게 뒤집어씌운 건 애초부터 계획했던 것인가? 등 여러 겹의 이야기가 빠르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됩니다.

 

일반적으로 사형제도 논쟁은 응징이 필요하다.”는 찬성론과 원죄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폐지론으로 갈립니다. 하지만 설원의 주인공인 에츠시의 입장은 좀 독특합니다. 존치(찬성)론자들이 피해자 유족의 원통한 마음을 근거로 드는 건 치사한 짓이야. 누명을 쓰고 잡혀 들어간 사람들의 억울함을 폐지론의 근거로 삼는 것도 마찬가지야.”라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말하자면 사형 역시 살인행위란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런 에츠시조차 진범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그 자를 찾아내 죽이고 말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남의 일로만, 혹은 논쟁거리로만 여겼던 사형제도가 자신의 일이 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에츠시 외에도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한 여러 의견을 소개하는데, 정답 없는 어려운 논쟁이긴 하지만 이만큼 다양한 관점을 접한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작품엔 여러 차례 큰 변곡점이 등장하는데, 각 변곡점들이 모두 대형 스포일러라 더 이상 자세한 내용 소개는 곤란합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이 지극히 짧게 초반부만 소개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다만 독자의 예상이나 기대를 매번 엇나가게 하는 의외의 전개 덕분에 마지막까지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좀처럼 추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작인 완전무죄와 마찬가지로 한 번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형제도에 관한 논쟁이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 점이 부담스러웠는데, 주요 인물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사형제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설정된 탓으로 보입니다. 더 아쉬웠던 건 막판에 밝혀진 진실이 어떻게 봐도 현실감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진범으로 드러난 인물의 정체도 정체지만, 과연 저런 생각과 행동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과 함께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밖에 보이지 않은 엔딩은 독자에 따라 앞서 읽은 이야기들을 다소 허무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 그중에서도 원죄에 관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서 한국에 소개된 다이몬 타케아키의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일본에서 펴낸 것만 30여 편에 이르는 그의 나머지 작품들이 좀더 많이 한국에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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