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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도서] 시그니처

박영광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전남 영광경찰서에서 희대의 연쇄납치살해범을 체포한 공으로 광주 광역수사대로 발령받은 하태석 형사는 어느 날 옛 연인인 최지선이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을 알게 됩니다. 정치인이던 그녀 아버지의 반대로 불행한 이별을 겪어야만 했던 하태석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관할서와의 충돌을 무릅쓰고 수사에 참여하려 애씁니다. 그러던 중 범인이 체포되고 최지선 뿐 아니라 10여 명의 희생자가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하태석은 뚜렷한 증거가 없는데도 최지선을 공격했다고 자백한 범인에게 의심을 품습니다. , 최지선을 공격한 진범은 따로 있으며 그 진범과 이미 체포된 범인 사이엔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태석 시리즈라고도 부를 수 있는 나비사냥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현직 형사가 집필한 범죄 스릴러로 소문이 났지만 워낙 묘사가 사실적이고 잔혹해서 독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허약한 서사에 묘사만 잔혹한 이야기라고 예단하곤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우연히 읽은 시리즈 첫 편 나비사냥에서 기대 이상의 매력을 맛본 덕분에 내쳐 두 번째 작품까지 읽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좌천돼 고향인 전남 영광경찰서로 돌아온 하태석이 동료들의 무시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쇄납치살해범을 체포하는 이야기가 나비사냥이라면, ‘시그니처는 범인을 체포하고 기자회견까지 연 관할서의 수사결과에 반발한 하태석이 1주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진범을 찾아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태석은 범인뿐 아니라 내부의 적과도 직()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비사냥에서 막판에 하태석을 폭발시킨 게 사랑하는 가족이 범인의 목표물이 된 점이라면, ‘시그니처에선 한때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불행하게 헤어져야만 했던 옛 연인이 연쇄살인마에게 공격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점입니다. 가공할 연쇄살인마와의 대결, 자신을 짓누르는 내부의 적과의 충돌,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범죄 피해자가 된 점 등 두 작품은 큰 얼개에서 무척 닮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태석은 일반인이 익히 상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 형사입니다.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의 방식은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입니다. 예리한 촉을 갖고 있긴 하지만 수시로 단순무식한 스타일로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동료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관할서나 상부와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독불장군이지만 심성 하나는 아주 따뜻한 인물입니다. 그래선지 명탐정이나 대단한 형사가 주인공인 스릴러와 비교할 때 다소 답답하기도 하고 둔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압도적인 리얼리티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막판에 진범을 체포하는 과정은 독자에 따라 약간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슈퍼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한국 형사의 사실감 넘치는 진면목을 보여준 것 같아 훨씬 더 매력적으로 읽혔습니다.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희대의 살인마와 그의 범행 시그니처를 따라하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 엑스. 두 명의 사이코패스가 살인경쟁을 시작한다.”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이 작품엔 두 명의 연쇄살인마가 등장합니다. 먼저 체포된 범인이 최지선 살해미수까지 자백하지만 하태석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몇몇 단서 때문에 진범이 따로 있음을 확신합니다. 사실 관할서에서 기자회견까지 연 마당에 광역수사대 형사가 진범은 따로 있다.”라고 주장하는 건 경찰 입장에서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닙니다. 결국 하태석에게 허락된 건 이미 체포된 범인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까지의 단 1주일. 하지만 범행수법을 수시로 바꾸는데다 흔적 하나 안 남기는 진범을 찾는 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다름 아닙니다. 옛 연인을 잔인하게 공격한 진범을 쫓는 동시에 관할서와 경찰 상부의 지독한 견제까지 감내해야 하는 하태석의 행보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작에 비해 서사와 갈등 구조는 훨씬 더 풍부해졌고, 두 명의 연쇄살인마의 행각을 꽤나 잔혹하게 묘사한 대목도 흥미롭게 읽혔지만, 딱 한 가지 아쉬움을 남긴 건 의식불명에 빠진 옛 연인 최지선과 하태석 사이의 애틋한 사연이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한 점입니다. 아무래도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슷한 장면을 거듭 배치한 것 같은데, 그런 탓에 전작인 나비사냥보다 무려 120여 페이지가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대목마다 다소 느슨하고 지루함을 느낀 건 다른 독자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시그니처이후 5년만인 올해(2022),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소녀가 사라지던 밤이 출간됐습니다. 700페이지가 훌쩍 넘어 1~2권으로 분권됐는데, 늘어난 분량만큼 캐릭터나 사건 등 모든 것이 풍성해졌겠지만 본론 외의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매력적인 한국 형사하태석의 이야기를 놓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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