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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1

[도서] 무죄추정 1

스콧 터로 저/한정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재작년 쯤 스콧 터로의 이노센트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소개글을 보니 앞서 출간된 무죄추정20년 뒤 이야기라는 설명이 있어서

무죄추정부터 순서대로 읽어야겠네, 해놓곤 2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야 읽게 됐습니다.

 

한때 법정 스릴러에 푹 빠졌던 취향 탓도 있지만,

분권된 660여 페이지를 읽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정도로 페이지는 거침없이 넘어갔고,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존 그리샴의 걸출한 작품들을 연상시킬 만큼

정교한 짜임새, 적절한 선정성과 폭력성,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긴장감 등

완성도 높은 법정물의 미덕을 골고루 갖춘 작품이었습니다.

 

● ● ●

 

킨들 군()의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그 재능을 인정받은 검사 러스티는

매력적인 여검사 캐롤린의 피살 사건을 수사하던 중 오히려 용의자로 몰리고 맙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 때문에 결국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러스티는

한때 자신과 대결을 벌였던 변호사 스턴의 도움을 받아 무고함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검찰 내에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러스티와 라이벌 관계였던 검사 니코와 몰토는

물증, 정황 증거, 목격자 등을 총동원하여 러스티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유부남인 에이스 검사의 불륜녀 살해라는 타이틀 덕분에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지만

공판은 검사나 변호사는 물론 배심원들도 전혀 예상 못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여검사 캐롤린의 죽음에 관한 진짜 비밀이 차츰 그 진상을 드러냅니다.

 

● ● ●

 

스콧 터로의 문장들은 거침없이 흐르는 커다란 강물처럼 느껴집니다.

사건의 배경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소()에서는 묵직하고 도도하게 흐르다가,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법정, 즉 여울에 이르면 그야말로 잔혹한 전쟁터를 연상시킵니다.

속도의 완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독자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물론

억지로 주제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표현과 묘사를 통해 설득력을 확보합니다.

특히, 적당히 비틀고, 적당히 웃기고, 적절하게 비유를 끌어내면서

불필요한 사족 없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대단한 필력을 곳곳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는 번역 덕분이었습니다.

 

무죄추정의 재미를 배가시켜준 것은 거미줄처럼 얽힌 등장인물 간의 관계입니다.

우선, 배신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킨들 군의 정치판에 대한 묘사는

사건 못잖게 독하고 리얼하게 이뤄져 있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정치적 갈등이 용서할 수 없는 혐오감으로 진화하는가 하면

추악한 욕망과 이긴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로 똘똘 뭉친 악당들의 악의는

진실 같은 건 개나 주라는 식의 비정하고 살벌한 면모를 거듭 강조합니다.

그런 믿을 놈 하나 없는 개판의 한가운데 던져진 러스티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의심과 충돌, 타협과 화해 등 끔찍한 정치적 결정을 강요받게 됩니다.

 

정치판보다 더 적나라한 묘사가 넘쳐나는 곳은

살해된 캐롤린과 주인공 러스티의 짧지만 불꽃같았던 불륜일지(?)

그로 인해 해체 직전에 이른 러스티 부부의 갈등 장면입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캐롤린을 향한 러스티의 금지됐지만 정열적이었던 감정은

10대의 그것에 버금갈 정도로 과격하고 통제 불능한 상태로 묘사되고,

불륜이 폭로된 후 러스티가 아내 바바라와 갈등을 겪은 환란의 시기는

마치 직접 그 상황에 놓인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표현됩니다.

살인범으로 몰린 에이스 검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법정물이지만,

중년 부부의 권태와 일탈에 대한 욕망, 그로 인한 치명적인 위기에 관해서도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 덕분에 불륜 소설의 한 챕터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법정물의 교과서 같은 미덕과 불륜 소설의 끈적끈적한 매력이 합쳐진 듯한 무죄추정

진범을 찾고 누명을 벗는 본래의 임무 외에 사랑, 증오, 배신, 탐욕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노골적이면서 깊이 있는 묘사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작가가 쓰면서 자가발전한 게 아닌가 의심되는 감정묘사의 과잉이나

재판과정이나 불륜관계 설명에 있어 거듭된 동어반복이 옥의 티처럼 느껴지지만,

큰 그림으로 볼 때 작품 전체의 미덕을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후속작 이노센트무죄추정’ 20년 후의 이야기라면

주인공 러스티가 거의 60세가 다 된 시점이란 뜻인데,

과연 그가 어떤 모습으로 첫 페이지에 등장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더불어 품절된 사형판결 1,2’가 러스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아니지만

역시 킨들 군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 작품이라고 하니

중고로라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잘 짜인 법정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 읽어도 매력적인 장르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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