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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예술도 사랑도 너무 극단적이다결혼이 소원이었던 고흐의 연애가 모조리 실패로 끝난 이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평생 독신이었다. 예술가인 고흐. 왜 고흐의 연애는 성취되지 못했을까. 평론가인 나가야마 야스오씨는 [고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쉽게 빠진다. 생활비도 벌지 않은 채, 기묘한 연애를 반복했다]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

 

 


 

[이 기사 사진 보기]

 

 

본고는, 나가야마 야스오 씨 독신 위인전(신조신서)의 일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실연, 고독에서 종교로 기울어지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 또 행동이 괴상했던 화가는, 인상파에서 에꼴 드 파리에 걸쳐 많이 있었지만, 결혼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던 예술가라고하면, 먼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이 떠오릅니다.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즌데르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소년시절은 학교에 정들지 못하고, 친구도 없어서 고립되어 우울한 날들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15세 때에 국립중학을 중퇴.

 

 

그 다음에 세인트 백부(본명은 고흐와 같은 빈센트)의 도움으로, 파리에 본점이 있는 큰 미술상 구필 상회 헤이그 지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세인트 백부는 구필 상회의 경영진으로,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조카가 뒤를 이어줄 것을 기대하여, 73년에는 고흐의 동생 테오(테오돌스)도 입사시킵니다.

 

 

고흐는 처음에, 화랑 일에도 소극적이었지만, 근처에 있던 미술관에서 램브란트나 페르메이르 에 접촉하는 중에, 차츰 미술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 무렵, 20세의 고흐는, 기록에 남는 최초의 사랑을 하게 됩니다. 상대는 먼 친척이었던 캐롤리나 하네벡입니다. 빈센트는 용기를 내서 고백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라고 깨끗이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결혼.

 

 

이때,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그녀를 포기했다고 알리고,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도 썼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정열가 고흐입니다.

 

 

그 직후에 런던 지점으로 전근했지만, 그 때는 하숙집의 딸 유지니 루아예를 사랑해서,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미 혼약했으니까]라는 말을 들으며 실연. 다시 고독감에 가라앉은 고흐는, 종교로 심하게 기울어져 갑니다.

 

 

이 무렵부터 일에도 열중하지 않고, 1875년에는 파리 본점에 근무하게 되었지만, 이 이동은 주체할 수 없었던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미술에 눈을 뜬 그는, 구필 상회의 돈벌이 지상주의에 불만으로, 근무 태도가 좋지 않아, 무단결근도 했기 때문에, 764, 결국 해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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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작년에 읽은 반 고흐 책에 나온 내용들이라 반갑네요. ^^ 반 고흐가 미술상에서 평범하게 계속 근무를 했다면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할 수도 있었을테지만, 그랬다면 반 고흐의 명작들을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겠죠.
    이번 주 내내 춥네요. 건강 잘 챙기시구요. 다가오는 금토일 행복하게 보내세요. 모나리자님.^^

    2022.01.13 23: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모나리자

      네, 저도 뉴스기사 살펴보다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선택했어요.ㅎ 아무래도 돈이 우선인 화랑에서는 고흐에게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거기에서 일하면서 그림도 보고 화가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지요. 오늘날까지 불멸의 예술가가 되었으니까요.
      주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추억책방님.^^

      2022.01.14 15:21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