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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

어린이도서연구회 누리집에서 ‘교과서 문학성’ 이야기가 오간다. 여러 이야기를 가만히 읽다가 한 가지가 빠졌다고 느낀다. 바로 어린이 눈높이에서 ‘교과서 말씨가 얼마나 쉬운가?’이다. 어도연 누리집에 다음처럼 글을 띄웠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구한말 적 것부터 2001년에 새로 나온 것까지 두루 보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구한말 적은 세로로 쓰고 있으며 한문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는 ‘한글로만 쓴다’는 틀이 있어요. 그나저나 요즈음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문학성도 문제로 나무랄 대목이 많지만 저는 이런 대목에다가 ‘말’이 참 어렵구나 하고 느낍니다. 게다가 ‘말’이 지나치게 많기도 해요.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선 아이들이 1학년부터 6학년으로 가는 동안 ‘배우고 알아야 할 말’이 너무 많더군요. 고작 여덟 살인 어린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맞이한 그해에 이천도 넘는 낱말을 다 외우도록 알고 쓰도록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교과서를 엮는 분은 이 대목을 거의 안 헤아린 듯합니다. 이와 더불어 말이 안 쉬운데다가 우리 삶이나 살림자리에서 널리 즐겁게 쓸 낱말이 빠지기도 하더군요. 초등학생이 보는 한국말사전에도 빠진 낱말이 있다 하지만, 들어가서는 안 될 만한 말이 들어가기도 해요. 아마, 교과서를 엮거나 어린이사전을 엮는 분들, 어른들로서는 ‘그런 어렵거나 삶하고 동떨어진 낱말도 사회에 몸을 붙이려면 알아두어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말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익혀도 늦지 않아요. 어린이 때에는 차츰 크는 몸나이에 걸맞게 마음나이를 헤아려서 낱말을 차근차근 짚어 줄 노릇입니다. 이를테면, 일자리에 얽힌 말을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에 얽힌 낱말은 많이 들어가네요. 그러나 우리 삶자리 곳곳에서 보람차게 일하는 사람들이 쓰거나 이분들을 가리키는 ‘여러 갈래 일말이나 살림말’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교과서에 실린 낱말을 다 살펴보았고 2학기 교과서를 한창 살펴보는데요, 1학기 교과서에 실린 낱말이 1455이더군요. 이 낱말을 살피면, 누구나 쉽게 쓸 만한 낱말이 아니라, 굳이 ‘안 쉽고 아이한테 낯설 한자말’을 겹겹으로 집어넣기도 해요. 사회에서는 그런 한자말을 쓴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교과서에 나오는 꽃이름도 오랜 텃꽃을 다루기보다는 그저 이쁘장해 보인다는 서양꽃을 지나치게 많이 다룹니다. 짐승이름도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짐승을 다루지 않고,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짐승을 너무 많이 다루더군요. 더군다나 교과서는 거의 ‘도시 아이들 삶’을 한복판에 놓다 보니 이런 교과서로서는 아이들이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삶과 삶터를 느낄 수 없겠구나 싶고, 아이들한테 너른 꿈을 심도록 북돋우는 길하고도 멀구나 싶어요. 말을 말답게 다스리면서 아이들이 저마다 생각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스스로 가도록 이끄는 틀하고도 꽤 멀구나 싶습니다.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는 틀림없이 문학성도 뒤떨어졌을 텐데, 말은 말대로 한참 뒤떨어진 채 그림만 곱게 꾸미려고 하는 겉치레라고 느낍니다. 구한말 교과서는 50쪽도 안 되지만, 이 작은 교과서에도 모든 교과를 담아내지만 아주 훌륭하고 알뜰하게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1960년대 첫머리에 나온 교과서는 “철수야 놀자. 영희야 같이 놀자” 하는 “온통 놀자판”이기는 해도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우는 걸음’를 깊이 살핀 자취를 엿볼 수 있어요. 교과서를 어떻게 엮어야 할까요? 교과서는 참으로 문학, 그러니까 노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만, 문학이라는 노래를 어떤 말로 담는 그릇이어야 할까요? 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말로 저마다 다른 생각을 꿈으로 지피도록 이끄는 교과서는 언제쯤 우리 손으로 빚어서 아이들한테 건네줄 수 있을까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즐겁게 배우고 스스로 익혀서 활짝 피어나는 길을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헤아리는 셈일까요? 수십 수백만 어린이가 모두 ‘똑같은 교과서’를 받아서 보아야 하는데 그 똑같은 교과서가 그야말로 아이들이 아름답고 힘차며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밑거름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앞길은 어떻게 될까요?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문학성도 문학성일 테지만 말은 얼마나 말답게 엮은 길잡이책 노릇을 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교과서는 ‘똑같은 기계로 싹둑싹둑 맹장을 잘라버리는 의료기계’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람은 다 다르지만 기계처럼 모조리 똑같은 가위질을 일삼는 굴레는 아닐까요? 초등학교 교과서는 너무 어렵습니다. 실린 말부터 너무 많고 어려운 말도 너무 많습니다. 초등학교 여섯 해를 살아야 할 아이들은, 배움길이 아닌 배움짐을 온몸에 무겁게 짊어져야 할 판입니다. 숨막히고 짓눌려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아야겠어요. 차라리 교과서를 몽땅 없애면 좋겠어요. 졸업장을 주는 학교가 아니라, 부디 살림을 가르치고 배우는 나눔터가 되면 좋겠어요.” 2001.5.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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